불법 파견-비정규직의 역사, 뉴코아에서 아리셀까지 17년
[권미정]
"저는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철회! 아웃소싱. 반대! 일방적 계약해지."
2007년 5월 9일. 뉴코아강남 킴스클럽 매장 안에서 1인 시위가 시작되었다. 1인 시위를 시작한 여성은 뉴코아가 직접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였다.
2007년 뉴코아 직접고용 계산업무를 외주화
2007년 4월,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관리자가 불렀다. 갑자기 계약 해지 날짜를 말해주고는 면담이 끝났다. 그런데 그들 중 몇 명의 계약서는 처음과 다른 모습이었다. 근로계약서에 적혀있던 계약만료 날짜가 수정액으로 지워져 있고, 회사가 제시하는 날짜로 적혀 있거나, 계약만료 날짜가 아예 적혀 있지 않았던 근로계약서에 날짜가 쓰여 있었다.
1998년 매장 오픈멤버로 들어와 일한 지 당시 8년 차가 되었던 그는 협력업체 판매사원으로 뉴코아에서 7년을 더 근무한 적이 있다. 언제나 형식적인 계약서에 이름 쓰고 주소, 연락처만 쓰고 싸인만 했다. 그런데 회사가 그에게 사직서를 내라고 했다. 그가 회사가 부당하게 계약해지한 것이라 사직서는 제출할 수 없다고 했더니 회사는 사직서를 내야 퇴직금이 정산된다고 했다.
2005년에 계산원으로 뉴코아 계산원이 된 그는 2007년 5월 말까지 5차례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마지막 계약서에서는 계약종료일이 언제인지 적혀있지 않았고 회사는 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5월 말쯤 비정규직을 자를 수밖에 없다며 그만두라고 하더니, 한 달짜리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그는 거부했고,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계약만료일 5월 31일이 지나 6월에도 출근했다. 회사는 하루짜리 계약서를 들고 왔다.
5월 9일, 그들 중 한 명이 1인 시위를 시작했고 문제가 커지자 회사는 그를 원래의 근무지로 복귀시켰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6월 4일을 시작으로 뉴코아 킴스클럽 매장의 계산대를 둘러싼 싸움이 시작됐다. 회사는 직접고용 비정규직들을 자르고 용역 도급업체 직원을 계산대로 밀어 넣었다. 애초에 정규직이 하던 업무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하게 되고, 비정규직법이 통과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도급이라는 이름의 간접고용으로 외주화하려는 시도였다.
노동자들은 계산대를 몸으로 지켜냈다. 비정규직이고, 80만 원의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이었지만 몇 년동안 근무한 직장이었다. 회사는 직접고용 비정규직들을 모아놓고 용역회사로 가면 좋은 점을 설명했다. 일단 임금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리고 서러운 비정규직이 아니라 용역회사의 정규직이라고 했다. 지금보다 근로조건도 좋아지게 하겠다고 했다.
일부에게는 용역회사 직원들끼리 근무하니까 거기서 조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흘렸다. 용역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용역회사의 말을 믿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와 맞서야 한다는 부담과 두려움이 가장 컸다. 다른 사업장을 가도 비정규직이라면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힘든 상황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자신을 걸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
|
| ▲ 참사 1년이 훌쩍 넘긴 2025년 7월 4일 진행된 "아리셀 참사로 본 제조업 근로자공급사업과 불법파견 문제" 토론회 |
| ⓒ 김용균재단 |
2024년 6월 24일,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전곡단지 아리셀 공장의 배터리 폭발 화재 사고를 통해 '메이셀, 한신다이아'라는 업체 이름도 한 번 쯤 기사에서 봤을 수 있다. 아리셀은 2020년에 회사를 설립한 후 도급 업체를 계속 활용해왔다. '이솔'이란 업체와 가장 먼저 도급 계약을 했다가 도급 업체를 바꾸게 된다. 그때부터 '한신다이아, 메이셀'이 등장한다.
아리셀은 재판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불법 파견'을 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초 도급계약을 했던 '이솔'이라는 업체는 업무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3동 2층의 후공정 업무만을 담당했다. 업무가 분리되어 있었고 다른 업무를 맡기거나 지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리셀은 이 점이 불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명의 노동자를 여러 공정에 필요 시마다 투입하는 게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직접 고용하면 되는 일이다. 그건 회사가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지니까 싫었던 것일까.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직접 지시도 편하게 하고, 업무를 맡길 수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없다고 해도 간접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가입하지 않던 4대보험도 들어야 하고, 복지도 신경써야 하고, 상시근무자 수가 늘어나기 적용받는 법도 많아지고, 회사가 지켜야 할 안전보건의무 사항도 늘어난다.
|
|
| ▲ 8월 21일부터 김충현 대책위는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중단과 직접고용을 외치며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 사진 |
| ⓒ 김충현대책위 |
어떤 노동이라고 비정규직이어야 할 이유가 있겠냐만 특히 합법을 가장한 불법 고용 형태들은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2025년 6월 2일 태안화력발전소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 사고로 우린 다시 2018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를 돌아보게 됐다.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사망사고 이후 발전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제기되었고 논의되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전환의 근거는 많았다. 김용균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사건을 만들어낸 근본적 원인의 하나가 원하청 구조였다. 비정규직이어서 위험한 일을 했다는 당연한 말이 아니라, 원하청 구조 속의 노동이 가져온 현실적 위험을 김용균의 죽음으로 확인했다. 7년 동안 죽음으로 확인한 '잘못된 외주화'의 위험성을 개선할 시간이 있었지만 바뀌지 않았다.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원청인 한전KPS 직원들과 같이 팀을 맞춰 일을 하고 지시를 받고 카톡을 통해 보고했다. 도급이니 업무범위가 제한되어 있어야 하지만 '기타 업무'가 많았다. 업무 계약을 넘어선 작업도 해야 했고, 도급업체는 자주 바뀌지만 노동자들은 20년 동안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계속 근무해왔다. 한전KPS직원처럼 일을 했지만 업체는 달랐다.
하는 일은 같고 같이 일하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그 하나의 사실이 김용균을 죽게 했고, 김충현의 죽음을 가져온 이유다. 이제 한전KPS 사내하도급업체 노동자들로부터 다시 시작하자. 태안화력발전소 38명, 공공 석탄화력발전소 370여 명, 한전KPS 하도급 노동자 680여 명, 더 나아가 발전소 사내하도급 6천 여명까지 상시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는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하자.
그 시작이 8월 28일 서울중앙지법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선고 결과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2년 한전KPS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 소송으로 시작되어 3년 만에 1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불법파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많고도 많다. 이번 한전KPS 비정규직들에 대한 판결 결과는 정규직 전환의 근거가 될 수 있고 대표 소송인 만큼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확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판결이 없다 해도 우리는 '고용의 기본은 정규직'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8월 28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는 판결이 우리 사회 고용의 기본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자 불법을 시정하는 결과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미정님은 김용균재단 활동가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