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균형 성장’…문제는 ‘돈’이다
이재명정부가 향후 5년 국정운영 청사진을 공개했다. 잠재성장률 3% 달성,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 국력 세계 5강 진입, 인구 위기 대응, 균형성장 등이 핵심 과제로 담겼다. 이를 위해 오는 2030년까지 5년간 총 210조원을 추가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70년대 경부고속도로처럼…AI·에너지망 구축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진짜 성장’을 슬로건으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방점을 찍었다. 저성장 고착화로 국가 성장동력이 꺼지고 있다는 문제 인식 아래, ‘기술 선도 성장’을 대안으로 난국을 타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가 앞세운 키워드는 예상대로 AI다. 산업·지역의 AI 대전환을 이끌기 위한 AI 고속도로 구축을 핵심 국정 과제로 반영했다. AI 고속도로는 전국 AI 데이터센터를 연계한 ‘망 인프라’다. 이를 기반으로 제조 생산성을 혁신하고 산적한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으로 산업화의 밑거름을 대고 디지털 전환을 견인했다. 이처럼 AI·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해 새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게 국정기획위 구상이다.
연구개발(R&D) 투자도 강화한다. 지난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초·원천 분야를 강화하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과학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AI·바이오헬스·재생에너지 등 국가 핵심 산업 규제는 대거 걷어낸다. 규제 제로화와 네거티브 규제 전환을 추진하고 메가 특구 도입을 통해 지역 혁신을 견인한다는 목표다.
이 대통령 공약인 10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미래 전략 산업 투자도 본격화한다. 민간성장펀드는 AI·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바이오·미래차·로봇·방산 등 첨단 전략 산업이나 국가 전략 기술 관련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정기획위에 따르면,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해 제·개정이 필요한 법령은 951건. 이 중 법률의 87%(634/731건)를 내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하위법령의 81%(178/220건)를 내년까지 정비 완료할 계획이다. 국정 과제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국가미래전략위원회(가칭)·대통령실·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국정 과제 이행 상황을 지속 점검하고 조정·보완하는 체계도 구축한다.

성패는 돈…자체 재원 마련에 대통령도 ‘글쎄’
89페이지에 달하는 프레젠테이션에는 대한민국 미래를 밝힐 희망적인 단어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안이 명쾌하지가 않다. ‘꿈의 청사진’을 현실로 이뤄낼 돈이다.
국정기획위는 AI 3대 강국·에너지 전환 등 54조원, 지역 균형 성장 60조원, 재난·인구위기 대응 57조원, 외교·안보 분야 6조5000억원 등 큰 틀의 투자 계획만 제시했다. 세입 확충, 강도 높은 지출 효율화 등을 통해 5년간 210조원의 재원을 조달해 추가 재정 부담 없이 이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정태호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장은 “윤석열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세입 기반이 크게 훼손됐다”며 “세제 개편, 성장을 통한 세수 증대, 세외 수입 등 세입 확충 방안을 마련하고 지출 효율화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녹록지 않다. 국정기획위는 94조원 세입 확충과 116조원 지출 절감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목표을 내세웠다. 이를 달성하려면 매년 세입은 19조원 늘리고 지출은 23조원씩 줄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이재명정부 첫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 실시하는 세제 개편으로 향후 5년간 증가할 세수 규모는 고작 36조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출 구조조정으로 매년 23조원을 줄이는 일 또한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국정기획위가 보고한 210조원 규모의 재정투자 계획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기획위가 세입 확충과 지출 절감 방안 등 세부 예산안을 보고했지만 이 대통령은 세수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구체적 수치를 발표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국정기획위가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재원 설계를 공개하지 않았던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이 국민보고대회 모두 발언에서 “국정기획위 안은 정부의 확정된 정책안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국정기획위 발표에서 세부 실천 과제가 전부 빠지며 국정기획위 계획안은 사실상 이 대통령 대선 공약을 반복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 “할 일 많은데 돈 없다”…국채 발행 암시
국민의힘 “올해만 두 차례 추경…재정 건전성 무시”
이 대통령은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지출을 조정해 가용 자원을 확보하고, 비효율적 예산 지출을 효율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빠듯한 현 재정 상태로는 국정 과제 이행 등에 필요한 대규모 예산 투입이 어렵다고 보고 고강도 지출 조정을 지시한 것. 이와 함께 채권 발행을 통한 재정 확보 의지도 드러냈다.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한다”며 “옆집에서 씨앗을 빌려오려 하니 ‘왜 빌려오느냐, 있는 살림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 살림을 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이 없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은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무려 210조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데 구체적 계획을 모른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2000페이지에 달하는 세부 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핵심 정보를 감춘다면 정책은 신뢰를 잃고 국정 운영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며 “민주주의는 투명성과 공개 위에서만 작동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재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정기획위는 국정 과제에 필요한 210조원은 세입 세출 조정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같은 날 대통령은 딴소리를 한다. ‘씨앗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뿌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궤변이자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미 국가 채무는 1300조원, 연간 GDP 대비 약 50%에 육박한다”며 “올해만 두 차례 추경으로 45조원의 빚을 떠안고서도 또다시 국채 발행을 거론하는 것은 사실상 재정 건전성 포기 선언”이라고 압박했다.

금융권 압박해 자금 모으나…나눠 먹기식 소멸 경계
국정기획위가 내놓은 100조원 ‘국민성장펀드’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투자 대상 선정이나 자금 조달 방식이 과거 정부와 별다를 게 없어서다. 국정기획위는 산업은행의 첨단산업전략기금을 활용해 50조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이는 이미 전임 정부에서도 추진해온 내용이다. 투자 대상 역시 AI뿐 아니라 미래차·2차전지·반도체·로봇·방위 산업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투자 대상도 이전 정부에서 발표한 것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건 ‘미래성장펀드’다. 펀드를 상장해 일반 국민 자금도 모으겠다는 구상인데, 기본적으로 금융권과 연기금 등이 출자금을 대는 형태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상 당장 돈 나올 데가 은행권이라 금융당국이 앞장서 압박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여당이 주창한 생산적 금융을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자마자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연계해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벤처 기업 관계자는 “100조원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전 세계적인 기술 투자 흐름을 생각하면 그렇게 큰돈도 아니다”라며 “핵심은 100조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라고 강조했다. 이어 “100조원이 정권 초기 구색 맞추기용이나,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나눠 먹기식 돈이 돼선 안 된다”며 “실질적으로 유니콘을 키워낼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원자력’ 산업에 대한 비전을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크게 흔들렸던 업계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원전 산업 관련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K-원전이 미국 진출을 노리며 겨우 생기를 찾은 상황인데 정부 계획에서조차 원전 관련 언급이 생략된 점이 아쉽다는 반응이다.
과거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강조해온 이 대통령은, 전환 과정에서 보조 역할로서 원전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자력은 대한민국이 외면할 산업이 아니다. 올 초 세계원자력협회는 2035년까지 글로벌 원전 시장 규모가 1653조원대로 불어나리라 예상했다. 전 세계에 걸쳐 잠정 건설 계획 중인 신규 원전은 344기에 이른다. 이 가운데 15년 내 건설 계획 중인 원전만 해도 88기에 달한다(국제원자력기구 분석). 현재 원전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한국 등 5개국뿐이다. 그중 중국·러시아는 미국·유럽과의 갈등으로 수출에 제약을 받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과 안전성을 자랑하는 한국 원전 산업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4호 (2025.08.27~09.02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똑같은 GPT 사용하는데…“왜 내 AI만 멍청할까”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똑같은 GPT 사용하는데…“왜 내 AI만 멍청할까”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포스코이앤씨 사태 일파만파...‘산업재해포비아’- 매경ECONOMY
- HD현대重-미포 합병…덩치 키워 ‘마스가’ 선점- 매경ECONOMY
- 과일 가게·곰탕집·태닝숍·탁구장…어느 날, 직원이 사라졌다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젠슨황, 이재용과 뜨거운 포옹…최태원과는 비즈니스 담판?- 매경ECONOMY
- 1호 초격차 특례상장 노리는 난치병 킬러 [IPO 기업 대해부]- 매경ECONOMY
- 철공소 부지에 아파트촌…‘굿모닝’ 문래동- 매경ECONOMY
- 2.5억짜리 1억 낙찰…지식산업센터의 굴욕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매경ECONOMY
- 창업 4년 만에…벌써 ADC 차세대 주자 [내일은 천억클럽]- 매경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