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그룹] "병어조림 노포 가자" 내게는 미식가 친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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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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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가 초대한 병어조림 저녁이 새삼 고맙고 동병상련하면서 서로 자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 ⓒ 이혁진 |
정성 어린 식당 고르기
친구 제안을 아내에게 전하니 환영했다. 친구와 나는 은퇴한 이후 더 자주 만나는데 부인들도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라 동석하는 자리를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병어조림을 콕 찍어 초대한 것은 특이했다. 친구가 '강추'하니 좋다고 했지만, 나는 음식보다 친구 보는 게 더 즐겁다.
친구가 추천하는 식당은 알고 보니 지역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노포'였다. 병어조림만 먹으러 오는 손님이 꽤 많았다. 식당 주인이나 다름없는 종업원은 동창이 이곳에 몇 번 온 것을 기억하는지 우리 일행에게 친절했다. 갈치조림도 이 집이 내세우는 메뉴지만 친구는 이야기한 대로 병어조림을 주문했다.
조림은 주방에서 끓였는지 식탁에서 조금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병어조림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냄비에 가득한 매콤한 병어조림이 먹음직스러웠다. 손바닥만 한 병어가 생각보다 컸다. 부드러운 병어살을 발라 먹느라 나는 머리를 박다시피 했다. 동창은 우리 부부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흐뭇해 했다. 친구 부인은 병어를 퍼주기 바빴다. 염치 없이 주는 대로 받았다.
오랜만에 병어 맛과 풍미를 즐겼지만 사실 친구의 초대하는 솜씨가 더 마음에 끌렸다. 그는 사전에 자신이 먹어보고 검증한 돼지고기 삼합, 삼겹살 등 두세 가지 식사 메뉴를 추천하면서 그중 병어 조림을 골랐다. 맛있는 밥 한 끼 권하는 그 정성이라니.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을지로 인쇄업계에 들어가 수십 년 잔뼈가 굵었다. 식사 시간이 불규칙한 자영업을 오래 하다 보니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단골 식당을 자주 찾게 되고 여기서 '미식가' 별명도 얻었다. 지금은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뒷선으로 물러났지만, 심심하면 아직도 을지로 골목을 배회하며 자신의 찬란한 삶을 일궈주던 터전을 회고할 겸 자주 가던 식당에서 가끔 '혼밥'을 한단다.
동병상련의 우정
친구와 나는 동창이지만 대학 때 활동하던 동아리 모임을 지금까지 수십년 째 돌아가며 이어 봉사해온 동지이기도 하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이해한다고 할까.
그런데 동창은 몇 년 전부터 심장벽이 두꺼워 숨쉬기 어려운 '심장비대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산소포화도가 낮으면 순간 졸도하면서 낙상하는 매우 위험한 질병이다. 친구의 병은 금방 낫는 것이 아니다. 무리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멀리해야 하는 질환이다.
병을 얻기 전 그는 사람들 만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모임을 주선하고 베풀기도 잘해 깐깐한 성격에도 주변에 그를 따르는 선후배가 많았다. 그러나 점차 예후가 심각해지자 외출을 꺼리더니 최근에는 급기야 부인을 대동하지 않으면 모임도 잘 나타나지 않을 정도다. 여러모로 마음이 짠했다.
사실 나도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 친구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동병상련이랄까. 서로 아픔을 위로하며 만나는 시간은 늘 기다려진다. 그날 저녁도 그런 기분이었다. 또 우리들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건 부인들이 동석해 주기 때문이다. 무미건조한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때로는 자극을 주면서 만남의 의미를 새롭게 해준다.
친구는 구순의 아버지가 드실 병어조림도 따로 포장했다. 그 마음 또한 새삼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말했다.
"당신 친구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었어요. 다음 모임은 언제 잡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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