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석화, 감축 대신 '운영기술 수출'로 답하라

소범준 2025. 8. 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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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기술인력은 해외로, 청년 인재는 국내 신사업으로... 산업 구조를 바꾸는 기회

[소범준 기자]

 조선소 골리앗 크레인 이미지
ⓒ chatGPT
1980년대 스웨덴이 조선업 쇠퇴기에 상징이었던 거대 크레인을 우리에게 단돈 1달러에 넘겼을 때, 사람들은 단순한 중고 설비 수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력이 주도하는 산업 성장의 서막이었다. 당시 조선소를 살린 것은 크레인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우리의 인력과 운영 노하우였다. 철을 옮기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기술과 운영 표준을 수출하는 시대다. 현재 위기에 처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이 새로운 흐름에 준비되어 있는가?

한국 석유화학의 구조적 위기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본질적으로 원가 열위 구조를 안고 있다. 직접 채굴할 수 있는 원유나 셰일가스와 같은 자원이 없기에, 원료비 부담은 경쟁국 대비 절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초저가 에탄을 확보했고, 중동은 원유-정유-화학을 통합한 일체형 공정으로 원가경쟁력을 극대화했으며, 중국은 석탄(MTO/CTO) 기반의 화학공정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원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불균형에 있다. 현재 국내 석화 산업은 납사 중심의 단일 원료 편중 구조에 갇혀 있으며, 낡은 설비는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 측면에서도 글로벌 규제를 충족하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글로벌 ESG 규범 강화, ISCC+ 인증 확대 요구 등 환경 규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국내에서 범용 제품 중심의 저수익 구조를 지속하는 한,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모두를 확보하긴 어렵다.
 구조조정 경고등이 들어온 석유화학업계
ⓒ chatGPT
감축을 넘어선 투트랙 전략

이런 현실에서 단순한 셧다운은 불가피한 조치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감축은 출혈을 멈추는 수단이지 미래를 여는 전략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트랙 전략이다. 하나는 국내 구조개편, 또 하나는 해외 확장이다.

국내에서는 낡은 설비를 정리하고 스페셜티 제품, 리사이클/바이오 기반 고부가 제품군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는 납사 크래커 20% 안팎 감축에 합의했지만, 단순 감축을 넘어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공장별 에너지 효율, 탄소 배출량, 유지보수 비용, 제품 수익성을 종합 평가하여 '생존 점수'를 산정하고, 하위 시설은 과감히 정리한다.

동시에 폐쇄 부지는 신사업 테스트베드로 전환하고, 고용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재교육 프로그램과 전직 매칭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울산과 여수 산업단지의 폐쇄 부지를 바이오케미칼 테스트베드로 전환하고, 지역 폴리텍과 연계한 청년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 활성화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
 한국의 석유화학 운영기술과 노하우를 산업화에 목마른 산유국에 수출한다
ⓒ chatGPT
무형자산 수출의 해외 확장 전략

해외 진출에서는 산유국과의 전략적 합작이 핵심이다. 사우디, UAE, 카타르 등은 원료는 풍부하지만 석화 단지 운영에 필요한 고도화된 역량과 안전관리 체계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들과의 합작투자(JV) 모델은 한국 석유화학이 가진 무형의 경쟁력—운영기술, 디지털 트윈, AI 기반 운영·정비(O&M) 표준—을 수출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다. 우리 기업들은 공정 안전관리, 설비 예지보수, 초기 시운전 안정화, 공급망 품질관리 등 다방면에서 글로벌 최상위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사우디의 사다라 케미칼(Sadara Chemical)은 대규모 설비의 안정적 운영을, UAE의 보루지(Borouge)는 고부가 제품 생산을 위한 정밀한 공정 관리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화재 제로 운영 기록, 빠른 램프업 기술, AI 기반 예지 보수 시스템은 이들 글로벌 프로젝트에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사다라 프로젝트는 초기 시운전에서 반복되는 셧다운 이슈로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었고, 보루지는 고도화된 생산 기술과 숙련된 운영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구독형 운영 모델과 인력 전략

이러한 운영 시스템은 단순히 기술을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장기적 구독모델(SaaS)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공정 운영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예측 AI, 에너지 절감 솔루션 등은 현지 공장에 적용되어도 지속적으로 라이선스 수익과 데이터 분석료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의 중장년 기술 인력이 초기 파견 교육단으로 현지에 진출하고, 2~3년간의 파견 근무를 통해 현지 인력을 육성하는 구조는 고용 구조 조정과 기술 전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이 전략은 한국의 역피라미드형 인력 구조 해소에도 기여한다. 고령화된 기술 인력을 해외로 파견하여 현지 노하우 전수를 담당하게 하고, 국내에는 청년 신규 채용을 통해 생산·연구 라인을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국내 일자리는 오히려 질적으로 개선되며, 청년의 지역 일자리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산업단지 재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토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한국은 석화단지는 석유화학 글로벌 연구센터로 거듭난다
ⓒ chatGPT
리스크 관리와 성공 조건

물론 리스크도 있다. 기술 유출 가능성, 현지화 정치 리스크, JV 분쟁, ESG 규제 충돌, 금융 조달 불안정 등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약서 수준에서 운영 KPI와 지분, 보상 조항, 기술 보호를 명확히 하고, 수출금융(ECA), 국부펀드, 글로벌 투자은행들과의 파트너십을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해외 합작 계약에는 현지 고용 목표와 안전 표준, 톤당 탄소배출(tCO₂e)과 플레어링 강도 같은 탄소 KPI를 명확히 담아야 한다. 특히 현지 정부와의 초기 신뢰 구축을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 인허가 패스트트랙, 공동 인증체계 도입은 JV 안정성의 핵심이다.

새로운 국가 전략의 출발점

한국 석유화학은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 원가경쟁력이 아니라 운영역량으로 승부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설비 감축과 고부가 전환, 중장기적으로는 해외 확장과 운영 표준 수출을 병행해야 한다. 과거 조선업이 철을 옮기며 글로벌로 뻗어나갔다면, 이제 석유화학은 역량과 표준이 국경을 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제조업 수출국'에서 '운영 기술을 수출하는 산업서비스 국가'로 도약해야 한다. 이 전환이 성공한다면, 석유화학은 단순한 제조 기반 산업을 넘어 고부가가치 지식·운영 수출 산업으로 진화할 것이다. 위기는 분명하지만, 그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선택은 지금 우리에게 달려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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