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10·19 없는 제주 4·3 평화공원, 반쪽의 기억

정병진 2025. 8. 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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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여순 10·19 사건을 언급한 전시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

[정병진 기자]

지난 22일 제주 4·3 평화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11월에 방문했을 때보다 전시물이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제주 4.3 학살 유적지인 다랑쉬굴을 재현해 놓은 코너, 2층의 세계 주요 인종 청소(제노사이드) 역사를 다룬 전시, 그리고 유해와 고문 장면을 조각한 전시물들이 새롭게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평화공원을 둘러보면서 한 가지 크게 아쉽고 속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긴밀히 연결된 여순 10·19 사건을 언급한 전시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유일하게 '여순사건'이 표기된 곳은, 당시 진압에 투입되었던 제2연대 투입을 설명한 문구가 전부였습니다. 이 밖에 여순 10·19 사건을 언급한 전시는 전혀 없었습니다.
▲ 제주 4.3 평화기념관 제주 4.3 평화기념관
ⓒ 정병진
물론 "제주 4·3 평화공원인데 여순 사건을 굳이 다루어야 하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공원이 오직 제주 도민이 겪은 고통만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제주 4·3 전시관에 해당 사건 위주의 전시물이 설치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전시실을 둘러보면 그 내용이 제주 4·3 사건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광복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활동, 미군정기의 혼란, 한국전쟁기의 보도연맹 학살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설명합니다. 더 나아가 세계사 속 민간인 학살을 다룬 전시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캄보디아 킬링필드, 코소보 내전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주 4·3 사건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여순 10·19 사건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 각명비 4.3 희생자의 성명과 나이를 새겨 놓은 각명비
ⓒ 정병진
사실 지난 2024년 11월까지만 해도 평화공원에는 여순 사건을 다룬 코너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에서 방영되는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해설자가 여순 사건을 설명하며 '반란'이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여수 14연대를 '반란군'이라고 거듭 지칭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4·3 평화전시관의 전시물을 살펴보면, 당시 친일 경찰과 서북청년회에 맞서 봉기한 시민들을 '무장대'라 칭하지, 결코 '반란 민병대'나 '반란군'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주 동포 학살' 명령을 거부하며 봉기한 여순 사건의 제14연대만은 '반란'으로 규정하고, '반란군'이라 낙인찍은 것입니다. 여순사건의 아픔에 가장 크게 공감해야 할 제주 4·3 평화전시관에서 그런 명칭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웠습니다.

여순 사건은 제주도민 학살을 위해 출병 명령을 받은 여수 제14연대 병사들이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며 봉기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주 4·3 평화공원은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반란군'이라며 적대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즐겨 쓰이던 멸칭 '여순반란사건'을 문제 의식 없이 쓴 것입니다. 이 명칭은 전남 동부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국정교과서에서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바뀐 지 이미 30년이 지났습니다.
▲ 여순사건 다룬 영상 작년 11월 제주 4.3 평화전시관에 들렀을 때 보았던 여순사건 관련 영상. 해당 영상의 나레이션은 "전남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반란군으로 돌변한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반란'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한다.
ⓒ 정병진
저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명칭 수정을 요청했고, 제주 4·3 평화공원 측은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을 사과한다"며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또한 문제가 된 영상은 개관 당시 방송용 자료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며, 내레이션은 음소거 처리하고 향후 새 영상으로 대체하겠다고 했습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여순 사건 전시물에도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약속도 덧붙였습니다.

그런 답변이 있었기에 이번 방문에서는 과연 어떻게 수정했을지 기대하며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여순 관련 전시물의 제거였습니다.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혹시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확인하고자 평화공원 측에 문의했습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4·3평화재단이 평화공원을 관리한다"며 "예산 문제로 전시물을 매번 바꿀 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고 예산 반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자체마다 자기 지역의 사건에만 매몰되어, 긴밀히 연결된 역사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요? 제주 4·3 사건과 여순 10·19 사건은 쌍생아처럼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두 사건 중 하나만 말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대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와 인권이 깃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겨자씨신문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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