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기를 포기했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우현주 기자]
"엄마, 아빠, 내일 금강산에 간다."
아들과 통화하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동했다.
"예?"
놀란 아들이 되물었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북한에 가는 건 아니고…."
당연히 정말 북한에 간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북한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는 거긴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강원도 고성, 남한의 최북단이었다. 심지어 고성은 한때 진짜 북한 땅이기도 했다. 지금은 휴전선이 남북을 가르고 있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이 한반도를 갈랐다. 그때는 개성은 남한 땅이었고 철원과 고성은 북한 땅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한때이긴 하지만 북한 땅에 간다는 말이 영 틀린 건 아닌 셈이었다.
고성에서 시작하는 금강산 1코스
고성 여행은 처음이었다. 이 여행 전까지 고성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았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동해안을 돌 때 화진포까지 간 적은 있지만 너무 희미한 기억이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성은 먼 곳이었다. 거리상으로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멀었다.
고성의 가장 대표적인 볼거리를 검색하면 '통일전망대'라고 나왔다. 한자로 '고성'이라는 지명은 '높을 고(高)'자를 쓴다. 즉, '고성(高城)'은 '높은 곳에 있는 고을'을 뜻한다. 하지만 나는 '고성'의 '고'자를 멋대로 '외로울 고(孤)'자라고 상상했다. 그만큼 고성은 나에게 멀고 춥고 외로운 고장이었다.
가장 최근에 고성이라는 이름을 들었던 건 몇 년 전 아들 유치원 동창이 고성에 있는 수색 부대로 차출되어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그때 아들은 고성이 최전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몇 달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금강산 1코스가 고성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금강산을 남한 땅에서 갈 수 있다고?'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침 남편과 여름 휴가지를 찾던 중이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당장 고성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출발 전날까지, 아니 가는 내내 남편은 몇 번이나 말했다.
"내가 살아서 금강산을 밟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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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 화암사 금강산 화암사. 수능 기원을 담은 작은 연등들이 경내에 가득했다. |
| ⓒ 우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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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 화암사에서 바라 본 수바위 '화암사'라는 명칭은 '화암' 바위에서 따 왔다고 한다. '화암'은 벼 화자를 쓴다. 즉, 쌀바위라는 말이다. 정식명칭은 '수바위'이다. 바위 위에 물이 솟아나는 곳이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
| ⓒ 우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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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암사 전망대에서 바라 본 풍경 화암사 전망대에서 바라 본 풍경. 저 멀리 속초 시내와 그 너머 동해가 보인다. |
| ⓒ 우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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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암사 미륵불 금강산 화암사 미륵전의 미륵불. 전망대를 지나면 미륵전이 나온다. 푸른 하늘에 쉴 새없이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고요히 서 있는 미륵불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
| ⓒ 우현주 |
드디어 신선대에서 조망한 울산바위
하지만 우리에게는 갈 곳이 있었다. 금강산에 오르는 길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미륵불의 차분한 미소를 마음에 새긴 채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금강산 1코스는 쉬운 코스로 통한다. 거리도 짧고 길도 험하지 않아 올라가는 데 기껏해야 1시간 30분, 설렁설렁 가도 1시간 4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말이다.
남편과 나처럼 산을 타는 것보다는 보는 걸 더 좋아하고, 산이래야 기껏 계절이 바뀔 때 한번 가는 게 고작인 사람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게다가 우리가 출발한 시각도 이미오전 11시가 넘은 때였다. 제대로 산을 탄다면 오르는 게 아니라 이미 내려왔어야 하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왕 마음먹은 것,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더웠다. 역대급이라는 7월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여름 정오의 온도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 화암사가 이름을 따 온 수바위까지는 금방이라 별문제 없었지만, 시루떡 바위, 그리고 이어지는 신선대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가팔랐다. 1시간 반 안에 오르기는 진작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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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선대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 금강산 신선대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이렇게 환상적인 울산바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 ⓒ 우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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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바위 '바위'라기엔 위풍당당한 '울산바위'. 구름이 만드는 하늘 그림자가 바위에 시시각각 다른 무늬를 아로새기고 있다. |
| ⓒ 우현주 |
그러니까 울산바위는 감히 금강산의 봉우리를 꿈꿀 정도로 웅장하고 수려했다는 이야기다. 다르게 말하자면 금강산에는 이 위풍당당한 울산바위조차 봉우리가 아니라 바위로 보이게 할 정도로 수려한 봉우리들이 일만 이천 개나 된다는 소리도 된다. 그러니 금강산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
어느 순간 나는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모든 모습을 다 담기란 불가능했다. 대신 울산바위를 바라봤다. 지긋이 바라보며 그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 햇볕은 온몸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지만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찬 바람 때문에 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은 다른 세계였다. 신화와 현실이 겹치는 곳, 현실과 비현실이 맞물리는 곳. 신라가 멸망했을 때 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마의태자는 결국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금강산의 끝자락에 서 있던 그 순간에는 그 전설도 어쩐지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남한의 금강산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사랑받고 가장 친근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곳. 그 금강산에 나는 서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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