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하철 첫 차 끝칸에 타는 어르신의 울컥한 다짐
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글쓰기 수업을 합니다. 수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어요. <기자말>
[최은영 기자]
시니어 글쓰기 강사인 나는 매주 어르신 수강생을 만난다. 오시는 분의 대부분이 글을 써오신다. 써온 글의 낭독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본인 글을 낭독한 어르신들은 꼭 덧붙일 말이 생긴다. 오직 글로만 독자를 이해시킬 수 있는 게 좋은 글인 건 알지만 어르신 수업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없었다(관련기사 : 시니어 글쓰기, 최선을 다해 고치면 다 도망간다 https://omn.kr/2e733).
대신 수업 이름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그대로 글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보니 글을 안 써온 분께 '푸는' 시간을 드리는 건 쉽지 않다. 어르신들은 쓰신 글보다 풀어야 할 말이 더 많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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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빼곡하게 글을 써오신 어르신 |
| ⓒ 최은영 |
"지난주에는 시간을 보면서 내 차례까지 안 오겠구나 하고 안심했는데 오늘은 시간이 남아서 불안했어요. 혹시 나 시키면 어쩌나, 나 아무것도 안 해서 선생님한테 맨날 미안해요."
내가 전생에 쌓은 복이 많은가 보다. 어떻게 이런 수강생을 만날까. 기껏 아침부터 준비해 나왔는데 한 마디도 못하는 날이 있으면 이유야 어찌됐든 짜증날 거 같은데 오히려 내게 미안하다 하시니 말이다. 나는 그런 소리 마시라며 타자 칠 준비를 했다. 어르신이 '내 인생 풀면' 나는 속기사처럼 어미만 바꿔서 받아적는다. 그날은 이렇게 받아적었다.
나는 아침마다 A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맨날 아프니 맨날 움직이기 싫다. 날짜를 정해놓고 그 다음부터 안 아프다고 하면 즐겁게 기다리겠는데 기약없이 아프니 한없이 우울하다.
산책마저 안 하면 어쩌나 싶어 첫 차 타고 맨날 간다. 그 공원에 가려면 지하철 제일 끝칸에 탄다. 매일 첫 차 끝 칸에 타면 나같은 노인들을 본다.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같이 공원에 간 적이 많아서 얼굴이 눈에 익었다.
그러다 안 보이는 사람이 생기면 궁금해진다. 궁금한 사람이 되면 만나지 못한다. 나는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또 새벽 산책을 나간다.
이제껏 본 적 없는 '궁금함'의 다른 이름
세상은 궁금증을 자극하는 기술로 가득하다. 제목에 빈칸을 남기고, 정작 본문에는 없는 이야기를 예고해 사람들을 붙잡아둔다. 한번이라도 더 클릭하게 만들고, 시선을 오래 묶어두는 것이 능력처럼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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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또 새벽 산책을 나간다. |
| ⓒ sobalc on Unsplash |
"아무것도 안 써오셔도 절대 미안해하지 마시고요. 우리반에서 그저 끝까지 안 궁금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서서히 마모되다가 소멸하는 사람의 육체는 자연의 섭리다. 그저 돌봄을 통해서만 간신히 지연할 수 있다. 시니어 글쓰기 수업 역시 일종의 돌봄이다. 내 낭독을,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줄 때 피어나는 다정함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서다.
끝나지 않는 통증으로 삶이 우울해지는 K님에게 이 강의실이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정함의 중첩 때문일 것이다. 그 중첩은 어르신 뿐 아니라 내게도 선물같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서사를 가질 수도 있다는 걸 다른 데서 절대 알 수 없었을 거다.
막연히 이분들과 수업을 오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K님 덕에 그 바람이 더 구체적으로 정리됐다. 나는 어르신들과 오래오래 서로 '안' 궁금한 사이로 남고 싶다. 다음주에도 궁금한 분이 없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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