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약속의 공간 '정병욱 가옥'을가다
[현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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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병욱 가옥 정병욱 가옥과 가옥 뒤편 옹벽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 일부가 써져있다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산 23번지) |
| ⓒ 현은빈 |
정병욱 가옥은 면적 176.5㎡ 규모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한 공간이다. 1925년 정병욱 교수의 부친 정남섭씨가 지었다. 정남섭씨는 경상남도 남해 지역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다. 이곳에서 정병욱 교수와 그의 가족들에 의해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보존되었다. 2007년 문화재 제341호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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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병욱 가옥 내부 모습, 정병욱 교수의 발간 서적들도 전시되고 있다 |
| ⓒ 현은빈 |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교수는 서로의 벗이었다.
정병욱 교수는 194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다. 이때 그는 윤동주 시인(1917~1945)과 처음 만나지만, 이전부터 서로를 인식하고 있었다. 정병욱 교수는 중학생 시절 조선일보에 실린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산문을 읽으며 그를 인식했다. 윤동주 시인은 정병욱 교수가 학교에 입학한 뒤 조선일보에 기고한 산문 <뻐꾸기의 전설>을 봤다. 이 글을 읽은 같은 학교 3학년이던 윤동주 시인은 기숙사로 정병욱 교수를 찾아온다.
나이로는 5살, 학년으로는 2학년 차이가 나지만 그들은 기숙사와 하숙집에서 2년간 함께 생활할 정도로 가까워진다. 영어성경 공부하거나 시를 함께 읽고 평해주기도 했다. 알려진 사실로 정병욱 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인 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 마지막 부분을 수정했다.
1941년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시 19편을 엮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시집을 총 3권을 만들고, 그중 하나를 정병욱 교수에게 선물했다. 그해 12월 학교를 졸업한 윤동주 시인은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1943년 그는 독립운동 혐의로 2년 형을 선고받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5년 2월 16일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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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룻바닥 밑 항아리에 보관되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전시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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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白影) 정병욱, 한국 문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다
정병욱 교수는 자신의 호를 백영(白影)으로 지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 '흰 그림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그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정병욱 교수는 1948년 졸업한다. 그리고 그해 정병욱 교수는 연희전문학교 동기 강처중과 윤동주 시인의 동생 윤일주와 함께 윤동주 시인의 유고 31편을 묶는다.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펴내며 그의 시를 세상에 알린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이 한국 문학사와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병욱 교수의 역할은 매우 크다.
정병욱 교수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 보존과 그의 문학을 널리 소개했을 뿐 아니라 한국 고전 문학 연구에도 헌신했다. 1948년 부산대학교, 1953년 연세대학교를 거쳐 1957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게다가 그는 국제 학술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해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또한 <국문학산고(1959)>, <한국고전시가론(1976)>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며, 한국 고전 소설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공로로 1967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1979년 외솔상, 1980년 3·1문화상을 수상했다. 또한 1974년 판소리 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낸다. <한국의 판소리(1981)> 저서를 발간하며 판소리 체계를 정립하는 등 판소리 연구와 진흥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정병욱 교수는 1982년 10월 12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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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책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
| ⓒ 현은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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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빛나길의 시작점, 뒤에 보이는 다리는 '별 헤는 다리'로 배알도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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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안가를 따라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일부 써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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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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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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