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온 한의사... 눈물이 먼저 납니다

월간 옥이네 2025. 8. 2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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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 마을] 주민들이 만든 회복의 공동체, 대전 서구 용촌동 정방마을

<월간 옥이네> 8월호는 '재난 이후의 공동체'를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산불과 수해를 겪은 옥천 마을들, 지난해 큰 비로 제방이 붕괴되며 수해를 입은 대전 정방마을, 올해 3월 사상 최악의 산불을 겪은 경북 의성 점곡면까지. 재난 이후 마을이 어떻게 다시 연결되고 회복되는지를 따라가 봤습니다. <편집자말>

[월간 옥이네]

 마을 입구에서 본 대전 정방마을. 2024년 7월 10일 마을이 물에 잠겨 주민들은 구명보트를 타고 마을에서 빠져나왔다.
ⓒ 월간 옥이네
2024년 7월 10일 오전 4시,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대전 서구 용촌동 정방마을 주민들의 일상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주민들은 밀려오는 물을 피해 지붕 위에서, 떠내려가는 들마루를 붙잡고 목이 터져라 "사람 살려"를 외쳤다. 보트를 띄워 간신히 오른 도로가에서 본 광경은 흙물에 잠겨 사라진 마을이었다. 저곳에 푸른 논이 있다고, 70여 년을 함께한 집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순간에 마을이 침수됐다.

1년이 지난 정방마을은 마을 곳곳에서 자라는 농작물로 푸른빛이 넘실거린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날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민들은 지금의 모습이 그냥 생긴 게 아니라고 말한다. 수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주민 의견을 모으고 시·구청 공무원을 만나 식사와 빨래 같은 일상적인 문제부터 수해 원인 규명 및 피해 복구와 보상 등을 요청했다. 행정이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을 주민들이 찾아서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수해 회복 마을 축제를 열어 마음을 보듬는 일도 스스로 하고 있다.

채홍종(65) 정방마을 수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재난에 대처하는 행정의 소극적인 모습에 지난 1년이 지난했다고 말한다. 행정은 수해복구가 끝났다고 말하지만, 마을과 주민 입장에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일. 7월 22일 채홍종 위원장과 주민들을 만나 지자체 재난 관리 체계에서 발견한 부재와 이를 채워가는 마을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소리뿐이었어"

다시 돌아온 여름, 주민들은 창문 밖을 내다보기 일쑤다. 일주일 넘게 내린 폭우로 다른 지역이 침수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부터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평소 출근하듯 마을회관에 온다는 백기순(96)씨도 침수 피해 뉴스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을에서 가장 큰 어른인 그는 73년 동안 정방마을에서 살았다. 오랜 시간 마을에서 살았지만 지난해 같은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장마로 피해를 본 적 있어도 이렇게 마을이 침수된 적은 없었는데, 참 큰일이에요. 뉴스를 보면 남 일 같지 않아요. 지금 있는 마을회관도 전등 스위치까지 물이 찼으니까.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거야."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한다는 그는 옆집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에 마당에 물이 찬 모습을 확인했다. 무슨 일인지 생각할 겨를 없이 어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웃을 따라 대피했다.

"마을회관은 이미 침수돼서 그 옆에 있는 권선필씨 집으로 갔어요. 그 집이 높은 곳에 있어서 물이 거기까지 안 닿았거든. 한참 뒤에 보트 소식을 듣고 나갔는데 길이 진흙으로 가득 차서 앞으로 안 나갔어요. 사람한테 업혀서 땅에 올랐지. 여러 사람이 도와준 덕분에 살아남았어요."

문옥남(85)씨는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한다. 집으로 들이닥치는 물에 휩쓸리지 않으려 막대기를 잡고 안간힘을 버텼다. 물이 턱 밑까지 차오를 동안 살려 달라고 힘껏 소리쳤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이동이 쉽지 않았다. 둥둥 떠다니는 들마루에 올라타 대피 장소로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막대기였는지 기억이 안 나요. 이거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권선필씨 집에 도착하니까 손이며 발이며 온몸이 벌벌 떨렸어요. 완전히 마을에서 벗어나니까 '살았구나' 싶었죠."

오전 5시면 밭에 나가는 권주옥(88)씨는 막 잠에서 깼을 때 마을 방송을 들었다. 귀가 안 좋아 자세히 들으려 밖으로 나가보니 물이 무릎까지 차 있었고 곧 '꽝'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현관문, 안채까지 물이 들어찼다. 급하게 신발장을 잡았지만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잡은 거 놓지 말고 꼭 붙들라고, 정신 놓지 말라고 소리치더라고. 죽을 힘으로 버텼지. 그리곤 아들이 지붕에 올려줬어. 올라가니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무섭고 아찔해."

대피소에서 열린 난장토론
 채홍종(65) 정방마을 수해대책위원회 위원장
ⓒ 월간 옥이네
마을이 복구되는 동안 주민들은 기성종합복지관(대전 서구)에서 생활했다. 곧바로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수해가 있던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물이 빠진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이 아주 쓰레기장이었어요. 떠밀려온 쓰레기랑 진흙부터 퍼내느라 포크레인 같은 장비들이 많이 투입됐어요. 이때 도와준 분들이 행정에서 보내준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찾아오신 분들이었죠. 그렇게 마을로 찾아와준 봉사자들이 100명이 넘었어요." (채홍종 위원장)

수해 직후 정방마을이 소속된 용촌2리 통장1이 위원장을 맡아 대책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주민들의 요구를 행정에 전달하기보다 행정의 공지를 전하는 역할에 그쳤다. 크고 작은 불만은 결국 복구 현장에서 터졌다.

"일손이 하나라도 부족한 상황에 기껏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뭘 해야할지 모르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대피소에 모여 대책위를 새로 꾸렸죠."

7월 20일 오후 8시, 종일 뻘이 된 마을을 누비느라 녹초가 됐지만, 전체 주민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방마을 주민으로 위원을 구성하고, 온 주민이 대책위원장을 투표로 선출했다. 이날 대책위원장으로 뽑힌 채홍종 위원장은 "대책위원장이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보상 논의라고 생각했는데, 빨래, 도시락, 자원봉사자 통솔 등 해결할 일이 산적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고 열악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마을 복구 때문에 고령 주민 빼고는 주민들이 다 마을에 있는데, 점심을 꼭 복지관에서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점심 잠깐 먹자고 흙투성이인 채로 차 타고 복지관 가는 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죠. 도시락으로 식사 지원해달라고 하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안된다고 하더군요. 고민하다가 서구청 재난과장을 만나서 도시락 용기만 주면 우리가 알아서 도시락 싸다니겠다고 하면서 식사 문제가 일단락됐었어요."

직접 싼 도시락을 마을에서 나눠 먹는 방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주민들과 자원봉사자가 만족하자 행정도 태도를 바꿨다. 보름 만에 점심 도시락이 지원되기 시작한 것이다. 채홍종 위원장은 "점심 도시락 문제를 해결하니, 씻는 문제, 또 빨래 문제가 터졌다"며 "일 하나를 해결해 놓으면 또 다른 문제가 발발하는 통에 매일 저녁 토론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대피소 있을 때는 매일 저녁 8시마다 주민 회의를 했어요. 주민들이 겪은 문제를 늘어놓고 각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이나 방향을 이야기했죠. 의견이 갈리면 싸우기도 했어요. 말 그대로 난장토론이었죠."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모여 토론을 한 덕분인지, 마을로 돌아온 이후에도 주민들은 종종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수해 이후 주민 관계는 더 좋아졌어요. 지금 마을회관 2층은 청년회(주민 24명 참여) 사무실인데, 정기월례회가 아니라도 토론할 게 있으면 모여서 이야기하고, 또 같이 저녁 먹으면서 좋은 일, 나쁜 일을 수시로 나누면서 지내요. 자꾸 모이니까 서로를 더 알게 되고, 그렇게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다 같이 토론하는 게 힘들어도 자꾸 하면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모두의 손길로 회복 중인 마을
 구세군교회 건물에 보관 중인 침수된 물건들
ⓒ 월간 옥이네
 구세군교회 건물에 보관 중인 침수된 물건들
ⓒ 월간 옥이네
2024년 9월, 두 달간의 대피소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마을. 백기순씨는 텅 빈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맷돌, 독도구통(절구통), 다듬이돌만 남아 있었어요. 세탁기, 냉장고 같은 것들은 나라에서 해주고 수저, 신발, 옷가지 같은 건 자식들이 사줬죠. 내가 썼던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 내 집이 아닌 것 같았어요." (백기순씨)

다른 집보다 복구가 오래 걸렸던 문옥남씨는 시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수저 한 벌을 간신히 찾았다. 집을 정리하던 이가 들고 있던 수저를 우연히 발견해 버리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거 딱 하나 찾았어요. 집이 흙으로 뒤덮였으니까 쓸 만한 물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물 빠지고 진흙 파는 데만 며칠 걸렸으니까. 그런 걸 알면서도 사라진 물건들 생각하면 속상해요."

그는 대피소에서 마을로 돌아오고서도 집 복구를 기다리며 한동안 마을회관에서 지냈다. 그 모습을 본 주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폐 끼치는 건 아닌지 주저하자 주민들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를 데려갔다.

"집이 여럿인데 왜 마을회관에서 자냐고 그러는 거예요. 오래 본 사이지만 같이 지내는 건 또 다르잖아요. 불편했을 텐데도 몸뿐인 제게 옷이며 이불이며 음식, 다 내어줬어요. 정말 주민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는 거예요."

문옥남씨는 수해의 트라우마가 담긴 꿈도 꿨다. 손가락만 한 비가 내리는 꿈. 생생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깨 밖으로 나가 주민들에게 비가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마당에 해가 들어도 꼭 주민들에게 비가 안 왔음을 확인한다.

"꿈과 현실에서 불안을 느낄 때마다 주민들이 다독여 줬어요. 그럴 때마다 그날의 충격이 이렇게 오래가는구나 싶었어요. 비가 집만 휩쓴 게 아니구나, 사람의 정신도 휩쓸어 가는구나 해요."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난다는 그는 고마운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했다. 정방마을 출신으로 대전 중구에서 흑석한의원을 운영하는 정윤기 대표다. 몇 해 전 마을을 떠났지만, 수해 소식을 듣고 바로 마을을 찾았다.

"딸과 아내랑 셋이서 일주일에 몇 번씩 한 달 넘게 왔어요. 어디가 불편한지 꼼꼼하게 봐줬죠. 침만 놔준 게 아니라 마을 복구하는 데도 열심이었어요. 먹고살기 바쁠 텐데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 고맙더라고요." (문옥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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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물에 잠기고 시작한 '이것'... 누가 알았나, 이리 변할 줄 https://omn.kr/2f0bt

월간옥이네 통권 98호(2025년 8월호)
글·사진 김혜리·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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