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일본인 목욕탕서 단번에 구별한다 [의사소통의 심리학]
간단한 실험 한번 해보겠습니다. ‘3+4=?’ 당연히 ‘7’입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해보지요. ‘29×8=?’ 시간이 조금 더 걸린 후, ‘232’라고 대답할 겁니다.
이 질문 의도는 계산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틀려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232’라고 대답할 때까지 아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대부분 사람이 계산하느라 중얼거립니다. 아주 희한한 현상입니다. 먼저 “8×9=72”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러고는 “7을 잡아놓고” 하고는 “2×8=16이고, 16+7=23이니까, 232”라고 합니다. 암산을 한다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하는 겁니다. 왜 중얼거릴까요? 도대체 누구에게 ‘7을 잡으라’고 하는 걸까요?
간단한 계산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계산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우리는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봅시다. 말은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언어는 상호작용의 수단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앞의 계산을 할 때 상대방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구에게 말을 건 걸까요? 내가 나에게 말을 한 겁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혹시라도 남이 들었을까 봐 부끄러워하며 주위를 살피게 되지요. 주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아니면 힘들거나 화났을 때입니다.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을 겪어도 중얼거립니다. 그건 바로 내 안의 내가 또 다른 나에게 “너 지금 복잡하니까, 힘드니까,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말을 거는 겁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현상입니다. 우리의 사고의 근원이 ‘타인과의 대화’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계관이 정반대가 됩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현상’을 최초로 주목한 사람은 스위스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입니다. 1920년대 초반, 젊은 심리학자 피아제는 3~7세 아동의 놀이를 관찰하다 특이한 현상에 주목합니다.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장난감을 들고 “지금, 기차가 들어간다!”고 말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옆의 아이는 나무 블록을 들고 “지금부터 문을 만들 거야! 그러려면 빨간 벽돌이 필요한데…”라며 자기 행동을 계속해서 설명합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며 함께 노는 것 같지만,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피아제는 이 현상을 ‘자기중심적 언어(egocentric speech)’라고 명명합니다. 그는 아동이 타인의 관점이나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을 때 자기중심적 언어가 나타난다고 해석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동의 인지적 능력이 미성숙할 때 나타나는 ‘자기중심성(egocentrism)’의 한 현상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아동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늘어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자기중심적 언어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봤습니다. 인지 발달 과정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리 중요한 현상은 아니라고 본 것이지요.
자기중심적 언어를 개념화하고 발달심리학적으로 그 의미를 설명한 피아제의 공로는 인정하지만, 그 해석 방식에 격하게 제동을 건 학자가 나타났습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입니다. 비고츠키는 1924년 피아제의 저서 ‘아동의 판단과 추론’을 읽은 후, 바로 피아제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비고츠키는 자신의 대표작 ‘사고와 언어’에 ‘자기중심적 언어’에 대한 견해를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이 책은 비고츠키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34년 출간되었습니다.

비고츠키는 ‘자기중심적 언어’를 퇴행적 현상으로 보며 소멸하는 것이라는 피아제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자기중심적 언어란 미성숙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아동의 사고 능력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간 단계라는 것입니다. 정반대 해석이지요. 여기서 비고츠키는 아주 혁명적인 견해를 발표합니다. 생각이란 언어가 내면화된 ‘내적 언어(inner speech)’라는 주장입니다.
피아제를 비롯한 비고츠키 이전 심리학은 ‘생각’과 ‘언어’를 서로 독립적인 과정으로 여겼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생각이란 관찰할 수 없기에 연구 대상이 아니라고 여겼고, 언어는 자극-반응의 산물로 보았습니다. 피아제는 사고와 언어를 나란히 발달하는 인지 체계의 별도 영역으로 봤습니다. 언어가 사고의 표현이며, 이 둘은 서로 영향을 끼치지만 본질적으로 분리된 기능을 갖는다는 의견입니다. 언어는 사고의 창조자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사고를 표현해주는 외적 매개체로 본 것입니다. 따라서 사고가 언어에 선행하며 언어는 인지 발달의 결과로 나타나는 표현 수단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주장했습니다.
사고와 언어에 관한 비고츠키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비고츠키는 인간의 특별한 인지 능력이 언어와 사고의 결합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언어와 사고는 처음부터 같은 것은 아니지만, 아동 발달 단계에서 어느 순간 언어와 사고가 결합되어 높은 차원의 정신 기능(문제 해결, 자기통제 등)이 가능해진다는 의견입니다.
비고츠키는 언어 발달을 3단계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사회적 언어(social speech)’입니다. 아직 주체적 사고 능력이 없는 발달의 시작 단계입니다. 엄마나 또래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외적 언어를 뜻합니다. 이때 사고는 언어와 별도로 작동합니다. 각기 다른 기원을 가진 아동의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은 2~3세가 되면 결합됩니다. 자신의 의도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언어의 사고화(intellectualization of speech)’와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한 개념, 논리 등을 이해하고 사용하기 시작하는 ‘사고의 언어화(verbalization of thought)’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략 3~7세가 되면 아동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특이한 행동을 시작합니다. 비고츠키는 이 단계를 피아제의 용어를 빌려와 ‘자기중심적 언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지만, 말하는 주된 목적은 자신의 행동과 사고의 조절입니다. 피아제는 자기중심적 언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현상이며 곧 사라진다고 주장했지만, 비고츠키는 사고의 도구로 본격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즉, ‘내적 언어’로의 진화 과정으로 본 것입니다. 같은 현상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한 거죠.
자기중심적 언어가 ‘내적 언어’로 이행하면 아동은 더 이상 소리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내적 언어는 자신의 행동, 감정을 소리 없이 조절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자기반성, 계획 수립 등과 같은 ‘고등정신기능(higher mental functions)’의 도구가 됩니다. 이제 사고는 내면화된 언어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언어에서 출발한 사고와 언어의 관계가 내적 언어로 통합되는 과정을 비고츠키는 ‘내면화(internalization)’라고 표현합니다. 이에 반해 피아제 이론은 ‘사회화(socializati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동의 자기중심적 언어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사회적 규범과 논리에 맞게 변형된다는 이야기지요.
아동의 발달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도구(언어, 상징, 규칙)를 습득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점차 개인의 내적 심리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비고츠키는 강조합니다. 따라서 발달 과정에서 문화적 맥락은 인간 사고의 내용과 방식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집니다.
반면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은 보편적 사고 능력을 갖게 되는 사회화를 전제로 하고 있어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개별 문화 차이는 자기중심적 언어처럼 발달 단계에서의 미성숙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으며, 문화적 맥락에 따른 생각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는 피아제의 보편적 인지발달이론이 주류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며 발달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 의존성을 강조하는 비고츠키 심리학이 ‘문화-역사적 심리학(cultural-historical psychology)’으로 불리며 활발하게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보편주의적 인지발달이론에서 문화·사회 맥락 의존적 발달이론으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호작용이 먼저입니다! 이건 독립된 개인에 기초한 근대적 세계관을 뒤집는 혁명적 패러다임입니다. 오늘날 이 패러다임은 네트워크적 상호작용으로 확대됩니다. 어떠한 개인도 독립된 개체가 될 수 없습니다. 촘촘한 네트워크로 얽혀 있는 그물망의 한 ‘노드(nod)’가 개인입니다.
비고츠키가 ‘inter → inner’의 세계관을 혁명적으로 주장했지만, 그가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영역이 있습니다. ‘정서적 상호작용’입니다. 정서적 상호작용은 모든 인간 상호작용의 근본입니다.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려고 애씁니다. 짧은 순간 스쳐간 사람도 ‘건방지다’, 혹은 ‘품위 있다’와 같은 평가를 내립니다. 아주 사소한 단서로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존이 각자의 몫이었던 시절, 우리는 낯선 타인이 협력적인지, 위협적인지 즉시 판단할 수 있어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수천년간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 몸에 새겨진 생존 본능 흔적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타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맞은편 사람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그저 슬쩍 지나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다양한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왜일까요?
일본 온천에 가면, 한국인과 일본인을 바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남탕의 경우입니다.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다니고, 탕에 들어갈 때 수건을 머리 위에 올리거나 이마에 묶으면 일본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자랑스럽게(?) 그냥 덜렁거리고 다니면 한국 사람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다 벗고 있지만, 안 벗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남자 목욕탕에 여자 종업원이 막 들어옵니다. 서로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다 벗고 있는 목욕탕이지만 이처럼 사소한 행동으로도 그 사람의 국적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아주 사소한 신체 활동조차 문화적으로 학습되고 사회적으로 내면화된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몸의 기법(techniques of the body)’이라는 개념입니다. 사람이 걷고, 앉고, 일어서고, 숨 쉬고, 씻는 방식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와 문화에서 익히는 실천적 기술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몸을 씻는 것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몸의 사용 방식, 즉 움직임, 리듬, 호흡, 자세는 각 사회, 시대, 계급, 성, 연령, 직업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 방식은 문화적 표기법에 따라 습득되고, 내면화됩니다. 그래서 온천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겁니다.
몸의 기법과 관련해 상호작용적 관점으로 가장 세련된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은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 다니엘 스턴입니다. 스턴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정서와 구별되는 ‘감각정서’라는 특별한 개념을 제시합니다. 감각정서는 전통적으로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정서, 즉 분노, 슬픔, 기쁨, 놀람, 혐오, 두려움과 같은 ‘범주적 정서’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심리학이 정서를 ‘내용(what)’으로만 파악하려 했기 때문에 정서심리학, 혹은 감정심리학의 내용적 발전이 인지심리학에 비해 현저히 뒤처졌습니다. 아울러 인간의 정서를 한 개인의 특성으로만 파악하려고 했기 때문에 정서심리학 내용이 빈약해졌습니다. 스턴의 감각정서는 정서를 내용이 아니라 ‘형식(how)’으로, 그리고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파악합니다. 비고츠키의 상호작용적 인지발달 이론만큼이나 혁명적인 정서 이론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4호 (2025.08.27~09.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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