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글자 넣자 빼자, 한심한 싸움에 백성은 죽어 나가고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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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산성(1872년지방지도_부분)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멀리 두물머리부터 한강의 모습과 송파, 삼전도가 단순 명료하게 표시 되었다. 남한산성 곳곳의 묘사가 사실적이고 세세하며 생생하다. |
|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남문에서 서문으로, 굴욕으로 이어진 4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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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산성(1909) 수어장대에서 본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사진 아래 가운데에 행궁이 보이고, 민가가 분지에 빼곡하다. 왼쪽 북 성벽이 하얀 줄로 보이고, 열린 동문 쪽과 그 왼편 위로 남한산 정상이 어렴풋하다.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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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문 몽매한 왕 인조가 이 문을 나서 삼전도로 향했다. 그래서인지 늘 습하고 어둡다. 남한산성 4대 문 중 서문의 홍예만 유독 작고 옹색하다. 암문인듯 착각이 일 정도다. 낮고 좁게 홍예를 올린 무슨 이유라도 있었을까?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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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전도비 옛 송파진 주변 석촌호수 가장자리에 자리한 삼전도비. 돌 거북이 둘이다. 이유는 오른쪽 거북의 모양이나 위용이 초라하다 하여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들라는 청의 강요로 둘이 되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크고 높다. 왼쪽 비석 뒤의 상단에 '대청황제공덕비'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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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성벽 북 성벽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능선을 따라 이어져 멀리 남한산 정상까지 뻗은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홍타이지의 군대가 성안으로 홍이포를 쏜 곳이 저 꼭대기 부근이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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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남위례성 남한산성 서문에서 바라 본 한성백제의 도읍지. 서문을 내려가면 마천과 가락이고, 지천으로 석촌고분을 지나면 송파와 삼전도다. 삼전도 땅바닥에 인조의 이마가 닿았다. 인조가 걸은 굴욕의 길이기도 하다. |
| ⓒ 이영천 |
1월 19일 실록은 '오랑캐가 성안에 대포를 쏘았는데, 대포 탄환이 거위알만 했으며 더러 맞아서 죽은 자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홍이포 폭탄이 이때 처음 성안에 날아들었다.
같은 달 24일 실록은 '적이 대포를 남격대 망월봉 아래에서 발사했는데, 포탄이 행궁으로 날아와 떨어지자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피하였다'한다. 망월봉은 벌봉으로 추정한다. 해발 522m 남한산 정상 북쪽이다.
다음날에도 포격이 있었다. 실록은 '대포 소리가 종일 그치지 않았는데, 성첩이 탄환에 맞아 모두 허물어졌으므로 군사들 마음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였다'라고 기록한다.
26일에서야 22일에 함락된 강화도 소식이 남한산성으로 스며든다. 홍이포 공포와 강화도 함락 소식은 이제 추위와 배고픔을 벗어날, 비겁하지만 매우 절실한 결정적인 명분으로 변신한다.
주전파와 주화파
무척 어려운 명제다. 당시도 그러했고, 지금도 난제다. 당시 주전파의 논리란 현재의 시각과는 천양지차다. 주화파의 그것도 물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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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문 남한산성의 주 출입문인 남문. 접근성이나 지형으로 보아, 도성으로 들고나는 산성의 관문이었다. |
| ⓒ 이영천 |
두 주장을 선의로 재해석해 본다. 주전파는 항복을 굴욕으로 보았다. 싸우다 죽는 게 명예롭다고 여겼다. 국격과 자존의 훼손은 물론 역사에 기록될 비겁을 두려워했음이 분명하다.
주화파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순응하고, 지배 계급의 생명과 재산이 우선이라고 여겼을 터다. 꺼져 가는 명나라를 숭상하며 소 중화 사상까지 들먹이는 허세를 견딜 수 없어했는지도 모른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정세에서 국익이 무엇인지 세세히 따져 실용적으로 대처하자는 주장이다. 21세기 남한산성에 갇힌 당신이라면 어디에 손들겠는가?
동쪽을 향해 앉은 행궁이 제법 상서롭다. 행궁 뒷산 수어장대 위용도 자못 볼 만하다. 4백 년 전 굴욕의 상황에도 저러했는진 모르겠으되, 자태만으론 당당한 행궁으로써 위용을 갖춘 셈이다.
당시 백관들은 어땠을까? 윤집과 오달제는 스스로 잡혀감으로써 주전파 의리에 충실했다. 김상헌과 정온은 실패한 자결이나마, 목숨을 내걸었다. 최명길로 상징되는 주화파 여생도 순탄치만은 못했다. 1643년 최명길이 청에 끌려가 2년간 억류 당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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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어장대 남한산성은 4방향에 각 장대를 두었다. 이곳 서문 쪽 장대를 수어장대라 하였다. 수어장대 바로 아래가 행궁이다, 산성의 공간구조와 방어, 주둔 등을 최대한 교려한 결과로 보인다. |
| ⓒ 이영천 |
산성에 갇힌 46일의 역사가, 현재를 짓누르는 듯하다. 짙은 청록의 남한산성 숲 사이로 화창하게 파고든 날카로운 햇살이, 이끼 낀 성벽을 싹둑 베어버리는 느낌이다. 씁쓸함이 더해온다. 아둔한 왕 앞에서 머릴 조아리며 싸우자, 화친하자 맹렬하게 쟁투했을 그들의 얄팍한 속내가 날 것으로 밀려 들어서다.
더불어 산성의 이런 응답도 같이 들려온다.
'모든 다툼의 바탕에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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