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신엔 태산을 무너뜨릴 힘이 있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가마쿠라 막부는 그때까지 일본을 통치하던 천황을 아무 권력이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어 교토에 머물게 하고는 실제로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의 요코하마에 가까운 가마쿠라에 사무라이 정부를 세워서 일본을 통치했다.
당시 30만이라는 일본 최강 병력을 보유한 가마쿠라 막부는 일본 내에서 절대 강자 지위를 자랑했다.
그런데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지고 140년 정도 지나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새로 즉위한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이라는 인물이 허수아비 천황 노릇을 할 수 없다면서 가마쿠라 막부에 일본의 지배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 물론 고다이고 천황의 요구는 너무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당시 천황은 군대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일본 영주들은 가마쿠라 막부의 강력한 30만 정예 병력이 두려워 천황 편에 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황당한 요구를 한 고다이고 천황은 오히려 천황 자리에서 쫓겨나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영주가 이런 고다이고 천황의 뜻을 받들어 가마쿠라 막부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켰는데 바로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라는 사람이다. 문제는 구스노키가 겨우 1000명 정도 병력밖에 없는 아주 작은 영주였다는 점이다. 구스노키가 1000명 정도 병력으로 가마쿠라 막부의 30만 정예 병력과 싸워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구스노키가 택한 방법은 현재 오사카시 작은 지역에 있던 자신의 영지에 있는 치하야성(千早城)에 들어가 농성을 하는 것뿐이었다. 가마쿠라 막부는 한줌도 안 되는 구스노키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5만명 정도 병력을 파견했다. 1333년 2월의 일이다. 5만명 정예 병력으로 1천명 정도 지방군을 공격하면 전투를 바로 끝낼 것이라고 모두 예상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구스노키는 100일 넘게 치하야성을 지키면서 가마쿠라 막부군을 막아냈다.
일본 최강 가마쿠라 정예군 5만명이 겨우 1000명의 구스노키 반란군에 쉽게 승리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됐다.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 각 지방 작은 영주들이 “가마쿠라 정예 병력이 생각보다 전혀 강하지 않아서 우리도 싸우면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지방 영주들이 하나둘씩 참여해 반군 숫자가 늘어났는데 기록에 따르면, 70만명 가까운 병력이 모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반란군은 가마쿠라 막부로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같은 해인 1333년 5월에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했고 귀양을 갔던 고다이고 천황이 돌아와 일본은 다시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로 잠시 돌아온다.
당시 일본인에게는 아마도 1333년이 마치 마술에 걸린 듯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2월까지만 해도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마쿠라 막부가 불과 100여일 만에 완전히 사라졌으니 말이다.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데, 바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89년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바로 전까지도 많은 이가 미국과 더불어 세계 2대 초강대국인 소련이 멸망할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테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독일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망치를 들고 몰려가 베를린 장벽을 허물더니 동독과 소련이 차례로 사라져 버렸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베를린 장벽을 허물게 된 것이 동독 공보 담당자 귄터 샤보프스키(Gunter Schabowski)라는 사람의 말실수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동독 정부는 동독 국민이 다른 국가로의 여행을 완전히 통제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다소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하도록 허용해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래서 이전에는 거의 발급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여권도 비교적 쉽게 발행해주고 타국으로의 여행도 훨씬 자유롭게 허용하겠다는 발표를 정부 공보 담당자가 하던 중, 기자가 언제부터 이 정책이 시행되는지를 묻자 실수로 “당장”이라고 답했다. 방송을 보고 있던 동독 주민들은 “당장”이라는 말을 듣고 베를린 장벽을 당장 넘어 서독으로 갈 수 있다고 오해했고, 베를린 장벽을 지키던 동독 군인들은 많은 베를린 시민이 몰려오자 발포를 해야 하는지 아닌지 우물쭈물하던 중 장벽이 허물어졌다.
가마쿠라 막부와 동독 정부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현상은 경제학자 입장에서 보면 은행이 하루 아침에 도산하는 뱅크런(bank run)을 연상시킨다.
경제학자인 더글라스 다이아몬드 (Douglas W. Diamond), 필립 디비그(Philip H. Dybvig), 벤 버냉키 (Ben S. Bernanke)는 뱅크런에 대한 연구로 202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세 경제학자는 은행 기능을 분석하면서 재산가들이 직접 자신의 돈을 기업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직접 투자보다는 은행을 통한 간접 투자가 더 이익이라고 판단하기에 은행에 자신의 돈을 맡겨 대신 투자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직접 투자는 실패해서 돈을 모두 날릴 확률도 있을 뿐 아니라 투자한 기업이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기간 돈을 회수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은행이 투자한 기업이 부실하더라도 은행이 내 돈을 갚아줄 것이며 은행에 오늘 맡긴 돈을 갑자기 내일 찾는다 해도 은행이 아무런 불만 없이 내 돈을 돌려줄 것이므로 필요할 때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은행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받는 이자는 직접 기업에 투자해서 받는 이익보다 낮지만. 즉 은행이 모든 위험을 대신 감수해준다고 생각해 직접 투자인 주식이나 채권보다 수익률이 낮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안전한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안전하다고 생각한 은행에 아주 작은 불안한 징조라도 보인다면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기 시작하고, 그러면 은행은 순식간에 도산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뱅크런이다. 세 경제학자가 확인한 것은 은행과 같이 믿고 자신의 재산을 맡기는 상황에는 항시 작은 불신에도 믿음이 무너지는 뱅크런의 위험이 공존한다는 것이었다.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것도 비슷한 면이 있다. 정부가 만든 제도가 불편하더라도 이를 지키고 따르는 이유는 그 정부가 영원할 것이며 권력도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하지만 국민이 차라리 이런 형편없는 정부의 보호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면 정부의 뱅크런이 일어난다.
작은 치하야성을 막부군이 바로 함락시키지 못했다든지, 동독 국민의 자유 여행에 관한 정책 발표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정도의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실수가 일어나면서 정부 안정성에 의심을 갖게 됐고, 그래서 영원해보이던 정부가 모래성 위에 지은 집처럼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막부를 지지하던 지방 영주들이 갑자기 막부의 적이 되고 베를린 장벽을 지키던 동독 군인들이 갑자기 장벽에 접근하는 시민을 막지 않은 것은 이런 정부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믿는 은행이나 정부 책임자들이 작은 실수로 한순간에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도록 매일 밤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4호 (2025.08.27~09.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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