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지 말 것", 생추어리는 동물 해방의 끝이 아니다

혜리·시옷·구황 2025. 8. 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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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탈시설사회 6] 두 번째 탈시설을 꿈꾸다

'모두를위한탈시설행동연대'는 아동·청소년·장애인·홈리스·노인·이주민·동물 등 집단수용시설에 수용된 존재들의 탈시설 및 지역사회의 주거권과 성원권 보장을 위해 연대해 온 단체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역사회 돌봄이 가능한 정책을 구체화하는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존재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법령 제정과 접근 가능한 주거를 포함한 지역사회의 자원을 만들기 위한 8화의 연속기고를 기획했다. <기자말>

[혜리·시옷·구황 기자]

 호박을 먹는 새벽
ⓒ 새벽이생추어리
'새벽이생추어리'는 2019년 7월, 공개 구조(open rescue)된 돼지 '새벽'을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새벽이 구조된 장소는 엄마 돼지가 출산 후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는 공간이었다. 생후 2주 차였던 새벽은 이미 마취 없이 꼬리와 이빨이 잘리고 거세된 상태였다.

또 다른 거주 동물인 잔디는 실험동물이었다. 잔디가 어떤 곳에서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생명으로서 온전히 살 수 없는 공간에서 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공장식 축사와 실험실이라는 시설을 벗어난 새벽과 잔디는 현재 '그믐달'이라고 부르는 보금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코로 땅을 파헤치고, 더운 날엔 물웅덩이에 몸을 담근다. 두 돼지는 봄에는 쑥을, 가을엔 낙엽을 먹으며 산을 누비고 들풀을 먹는다. 이런 모습에 생추어리는 대중에게 유토피아로 생각되기도 한다.

"살리는 시설"에서 보이는 동물의 권리
 잔디와 더덕
ⓒ 새벽이생추어리
새벽이생추어리는 거주 동물들의 일상을 통해 기본적인 생존권을 박탈당한 다른 수많은 비인간 동물들의 빼앗긴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새벽과 잔디가 코로 흙을 파고 진흙 목욕을 즐기는 모습은 돼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습성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표현하는 그들의 모습은 동물 또한 감정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드러낸다.

동물권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곳에 있다 보면 동물은 갇히거나 묶여서는 안 되며, 자신의 삶에 대한 권리를 지닌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벽과 잔디는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산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인간들은 울타리 문을 잠그고 외부인을 경계한다. '피난처'라는 뜻의 생추어리조차 완전히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강화도에서는 반려동물로 불리던 돼지가, 2023년에는 이탈리아의 한 생추어리에서 돼지가 살처분됐다. 국가가 살처분을 정책으로 강제할 때, 우리는 이를 막을 실질적인 힘이 없다.

새벽이 구조된 곳은 전형적인 공장식 축산업의 돈사였다. 그곳은 이윤을 위해 생명을 가두고 죽이는 곳이었다. 살이 잘 찌지 않거나 많은 새끼를 출산하지 못하면 '도태'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아기 돼지들은 생후 6개월 차에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향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 사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나 구제역과 같은 제1종 가축전염병에 감염되거나 직접 감염되지 않더라도 인근에서 확산되면 국가의 명령에 따라 살처분된다.

생추어리라는 '두 번째 시설'

현재 새벽이생추어리에는 오리와 돼지가 살고 있다. 이들 모두 생추어리 밖을 나서는 순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추어리는 더 이상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후의 보금자리다.

새벽이생추어리의 공식 SNS 계정에는 최근 새벽의 처지를 동정하는 댓글이 달렸다. "불쌍하게 아직도 갇혀 살고 있구나"였다. 처음 이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이런 표현에 상처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안식처, 피난처라는 의미를 지닌 생추어리(Sanctuary) 또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새벽은 여전히 감금된 존재이며,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생추어리는 새벽이 구조된 돈사와는 다른 의미의 시설이다. '살리는 시설', '돌보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사실은 생추어리가 지닌 사회적 가치와 반드시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 갇힌 공간에서 평화롭게 보이는 돼지로만 그려진다면 '돼지니까', '동물이니까' 저 정도 삶이어도 괜찮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이들은 원하는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없다. 두 번째 시설인 생추어리에서도 인간의 보호 아래 자율성이 침해되고 통제되고 있다.

보금자리 선언
 잔디와 새벽
ⓒ 새벽이생추어리
2024년 10월, 동물해방물결, 새벽이생추어리,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카라 네 단체가 함께 만든 '보금자리 선언'에는 이러한 권리 침해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다. 생추어리가 가진 문제를 감추지 않고, 그러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거주 동물에 대한 시혜적 언어를 지양하고, 인간의 언어에 서린 권리 침해적 성격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의 용어 사용은 폭력적 인간-동물 관계를 감추기보다 드러내는 쪽을 향한다."

거주 동물을 곁에서 돌보는 활동가들은 인간이 가하는 '통제의 부정의함'을 가장 예민하게 느낀다. 산책에 나서는 잔디를 울타리 안에서 바라보는 새벽도, 그에게 산책을 허용할 수 없는 활동가도 모두가 원하지 않는 현실 속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조금이나마 다채로운 삶을 살길 바라며 나무를 심고, 풀을 베어오고, 열매를 채집한다. 동물 해방은 멀고, 새벽과 잔디의 시간은 인간보다 빠르게 흐른다. 새벽이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울타리 밖을 나가지 못할까 봐 조급하다.

"돌봄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은 돌봄 현장의 특징적인 성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 있는 병리가 구체적인 형태로 돌봄 현장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무라세 다카오 <돌봄, 동기화, 자유>

다음은 보금자리 선언문의 마지막 단락이다.

"이 선언은 거주 동물의 이상적 공간을 추구하지만, 보금자리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구획한 인위적이고 제한된 공간이다. 동물을 감금하는 구조, 제한적 자원, 다양한 가치의 충돌 등 우리는 매일 현실에서 타협해야 하는 일과 마주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력해지지 않고, 계속 고민하며, 거주 동물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이윤을 위해 어떤 존재도 가두지 않는 사회"
 아픈 잔디를 돌보는 활동가
ⓒ 새벽이생추어리
'모두를 위한 탈시설 행동 연대'는 지난 5월 20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동, 청소년, 노인, 이주민, 정신장애, 신체장애, 홈리스, 동물 등 어떤 존재도 이윤을 위해 가두지 말 것을 요구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요구안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생추어리 거주 동물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생추어리는 극악한 동물 착취 산업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피해 생존자가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임에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 최후의 피난처가 안전하지 않다면, 피난처 밖 동물들에게로 권리가 확산되는 일 역시 요원할 것이다.

둘째, 동물의 지역사회 주거권을 보장하라. 사회가 가축으로 규정한 종이든, 가축이 아닌 존재이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동물 착취 산업 내 동물의 1차적 탈시설 확산, 산업 감금 시설에서 벗어나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죽이는 시설에 갇히지 않는 존재가 늘어나고,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양한 인권 단체들 사이에 나란히 동물 단체가 함께 "이윤을 위해 어떤 존재도 가두지 않는 사회"를 외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새벽이생추어리가 모든 동물을 대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무수히 많은 동물의 세계 중 아주 좁은 부분을 맡고 있을 뿐이다.

아동, 청소년, 노인, 이주민, 정신 장애, 신체 장애, 홈리스 등 인권이 세분되어 각각의 요구안이 다르듯 동물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정신 장애가 있는 동물, 신체 장애가 있는 동물, 집이 없는 동물, 나이가 많은 동물, 이주해 온 동물, 아동·청소년기의 동물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다르다. 또한 강제 구금 및 추방, 살처분, 강제 노동 등 동물이 겪는 다양한 부정의한 상황에 대해서도 각각의 상황에 맞는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

두 번째 탈시설을 꿈꾸다
 새벽
ⓒ 새벽이생추어리
동물도 동물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일 수 없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시설인 이상 거주 동물들의 개별적인 욕구가 충분히 고려되기 어렵다.

생추어리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환경에서 거주 동물의 일상은 권리로서 보장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이 누리는 돌봄의 질과 하루의 만족도는 그들과 연대하는 활동가들의 마음과 의지에 달려 있다.

이렇게 시설로서 가지는 한계에도 활동가들은 생추어리라는 공간을 통해 무수한 질문을 마주하고, 그것에 답을 해나가며, 우리가 동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앞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동물과 맺어 온 일방적이고 통제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생추어리도 거대한 시설 사회의 일부로 포섭될 것이다.

'시설에서 나가다.'

이 문장의 주어에 동물을 넣으면 어떤 세상이 될까? 대부분 바로 포획되어 다시 돌아가 감금될 테니, 지금의 탈시설은 생추어리 없이 성공하기 어렵다.

생추어리가 동물 탈시설의 과도기적 형태라면 2차 탈시설, 즉 동물들이 생추어리에서 나간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길을 걷다가 돼지를 만나는 세상, 사람이 다른 종에게 잡아먹히거나 공격당할 가능성이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비인간 동물이 완전히 시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에는 생추어리의 울타리 문이 열리려면 사람과 동물이 섞여 사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생추어리는 첫 시설보다 훨씬 낫다. 그럼에도 생추어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는, 생추어리를 벗어나면 온갖 폭력에 노출되기 때문에 보호를 위한 감금을 할 수밖에 없다.

생추어리는 보호와 감금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초점은 울타리를 잠그는 '행위자'가 아니라 울타리를 잠글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의 부정의한 관습과 이념으로 향해야 바람직하다.

나아가 동물은 '가두지 않는 사회'에 그치지 않고 '묶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시설 밖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목줄, 몸줄, 입마개와 같은 장치를 해야 하는 '조건부 탈시설'에 그치지 않을 때, '갇히지 않은 삶'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생추어리는 해방의 끝은 아니지만, 인간과 비인간이 맺어온 적 없는 새로운 관계를 상상해보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 혜리, 시옷, 구황이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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