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동생인데 형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요?

김민석 2025. 8. 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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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장례이야기] 동생이 형의 사망진단서를 발급 받지 못한 이유

[김민석 기자]

 병원 입원실. 자료사진.
ⓒ 연합=OGQ
얼마 전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한 자치구의 '무연고 사망자' 주무관이 병원으로부터 난감한 요청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문의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용은 이랬습니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환자가 사망했고, 환자의 동생이 나타나 본인이 장례를 치를 것이니 사망진단서를 발급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문제는 병원이 생전에 파악한 환자의 가족관계에 자녀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병원은 자녀가 있기 때문에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타나지 않는 자녀 때문에 형제더러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로 만들라고 할 수도 없었지요. 그러니 자치구에 해결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해결 방법을 몰랐던 자치구는 상담센터에 전화한 것이고요.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정확히 짚어보려면 두 가지 법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입니다. 장사법 제2조 16호에는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의 범위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혈연의 범위는 배우자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이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니까 장사법에 따르면 동생은 형의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가 있는 사람인 겁니다. 물론 배우자와 자녀가 선순위의 연고자이기에 우선권을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건 연고자 간의 분쟁이니까 병원과 자치구가 끼어들 문제는 아니지요.

문제는 '의료법'에서 발생합니다. 의료법 제17조의 괄호 안에는 누가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사망자의 직계 존비속(부모, 자녀), 배우자, 심지어 배우자의 직계 존속(배우자의 부모)도 사망진단서를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는 앞서 언급된 사람이 모두 '없는' 경우에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고요. 이 '없는' 경우라는 단서가 상황을 골치 아프게 만듭니다.

다시 처음 사례로 돌아오겠습니다. 고인은 자녀와 사이가 소원했고, 자녀는 고인이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병원비 납부와 간호는 동생의 몫이었고요. 고인이 살아있었을 땐 그런 상황이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망한 뒤 장례를 치를 때엔 문제가 되고 맙니다. 고인을 화장하기 위해 발인을 하려면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하는데, 병원은 의료법 제17조를 이유로 발급해 줄 수 없으니까요.

상황이 안타까운 것은 병원도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본인들이 의료법을 위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생에게 병원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자녀를 모셔 오셔야 합니다"뿐입니다. 모두가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해결 방법을 묻는 질문은 자치구로 넘어갔고, 결국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센터에 도착한 것입니다.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다
 서류. 자료사진.
ⓒ 연합=OGQ
하지만 상담센터라고 마땅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 조문의 '없는'이 의미하는 것은 사망했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일 테니까요. 나타나지 않고 찾을 방법이 없을 뿐이지 자녀가 있는 것이니까요.

자치구는 시신 인수 여부를 묻는 공문을 자녀에게 보낼 수는 있지만, 자녀의 주소지나 연락처를 형제에게 알려줄 수는 없습니다. 결국 동생은 제때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안치료가 쌓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동생은 '시신 처리 위임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례를 치를 능력과 의사가 있음에도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로 떠나보내고 마는 겁니다.

위의 사례가 아주 드문 일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련한 상담 요청이 매년 2~3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요청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서울시 외의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니 실제로는 상담 건수보다 많다고 예상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왜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요? 직접적인 민원의 부재가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든 병원이 끝까지 진단서 발급을 거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형제자매가 장례를 하겠다니까 인도적인 이유로 발급해 주는 경우도 있겠지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이 경우엔 해결이 되었으니 민원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만약 끝까지 발급받지 못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해 형제자매를 '무연고 사망자'로 보내야 했던 사별자가 저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 화장까지 하고 다 끝났잖아요. 제가 민원을 넣고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시간을 무를 수도 없고요."

고인에게 자녀가 있지만 나타나지 않을 때, 형제자매가 장례를 치르려고 해도 사망진단서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마는 일은 계속해서 있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요. 그렇게 억울한 이유로 '무연고 사망자' 통계에 숫자가 더해지는 일이 없도록 조속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인도적인 이유로 병원이 의료법을 위반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도록, 불필요하게 행정 소요를 발생시킬 필요가 없도록, 가족의 장례를 직접 치르지 못했다는 상처를 형제자매에게 남길 필요가 없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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