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잃었지만 음악을 잃지 않은" 오케스트라의 탄생
베를린의 정치 사회 문화적 풍경을 소개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을 살피며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독일 수도의 어제와 오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말>
[고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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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젠다르멘마르크트 광장에 위치한 베를린 콘서트홀에서 '유럽의 젊은 클래식 음악' 연주를 마치고 음악인들이 내려오고 있다. |
| ⓒ 고정희 |
해마다 8월이면 베를린 필하모니 등 정규 교향악단들은 순회공연을 떠난다. 그러면 그들이 비우고 간 무대는 청소년 음악가들 차지가 된다. 해마다 8월이면 베를린 콘서트홀에서 '유럽의 젊은 클래식 음악'(Young Euro Classic) 축제가 열린다. "내일의 음악인들이 오늘 연주한다"라는 모토로 25년 전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2주 반 동안 전 세계에서 선발한 최고의 청소년오케스트라들이 베를린 콘서트홀에 모인다. 말이 청소년이지 이미 궤도에 오른 10~20대 음악인들이다. 그들의 연주 실력은 기성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인기도가 올라가 올해는 관객석 점유율 평균 95%의 기록을 수립했다.
특히 중장년층 사이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위층 객석에서 내려다보면 허연 머리들이 아래층 객석을 메운 것이 보인다. 전 세계 젊은 음악인들이 내뿜는 신선한 에너지에 끌리듯 모여든 것이다.올해의 마지막 무대는 아프가니스탄 청소년오케스트라가 장식했다. 연주를 마치자,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침묵을 거부한 음악인들의 여정
현재 포르투갈에 망명 중인 아프가니스탄 청소년오케스트라(Afghan Youth Orchestra in Exile)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비전과 용기에서 시작됐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음악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온 아흐마드 사르마스트 박사.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카불에서 음악 교육을 받고 모스크바에서 음악학을 전공하고 있을 때 고향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고향으로 갈 길이 막혀버리자, 그는 호주로 망명하여 공부를 계속했다.
낯선 땅에서 힘겹게 적응하며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가 음악원을 설립하리라는 꿈을 꾸었다. 2010년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잠시 자유로웠던 시절, 교육부 장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국제적 재정지원을 받아 그해 6월 20일 카불에 아프가니스탄 국립음악원(ANIM)을 열었다.
뜻은 컸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에서 자율적으로 음악원을 설립하고 운영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세계은행과 독일 외무부의 재정지원을 받았고 그 외에도 호주와 미국의 음악재단 등에서 많은 후원금을 보냈다. 독일 악기상 전국연합은 컨테이너 두 개에 악기를 가득 채워주었고 독일 공군기가 이를 싣고 카불로 날아갔다. 학생들에게 서양클래식음악과 악기를 가르칠 교원도 여러 나라에서 초대할 수 있었다.
사르마스트 박사의 비전은 남달랐다. 성별, 종족, 종교적 배경, 사회경제적 환경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안전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과 거리에서 물건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아이들을 거두어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아프가니스탄 전통음악과 서양 클래식 음악을 모두 가르치고 일반 학교 교육도 했다. 교육부 장관은 기존 음악학교 학생들도 받아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기존 음악학교 학생들 반, 거리의 아이들 반으로 합의했다. 이 두 그룹을 한배에 태우고 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지만 어려운 상황이라 서로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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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1월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17 세계경제포럼 연례 회의 폐막 공연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 오케스트라 '조라'가 공연을 하고 있다. |
| ⓒ 세계경제포럼 |
베를린의 관심이 이들 공연에 집중되었다. 700석 객석은 바로 매진되었고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 수백 명이 줄을 서서 혹시나 입장이 가능한지 기웃거렸다. 그중에 테러범이 섞여 있을 수 있으므로 여러모로 보안이 철저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날 연주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천둥소리를 방불케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어 베를린 사람들의 가슴은 뜨거웠고, 조라의 단원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4년 뒤 2021년 악몽 같은 탈레반이 다시 나타났다. 젊은 음악인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독재 치하에서도 음악이 금지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가무를 유난히 즐겼던 조선의 연산군도 있었고 독일의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을 숭배했다. 러시아의 푸틴도 종종 음악회에 나타난다는 소식이다. 유독 탈레반만 음악이 이슬람 종교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연주를 금하고 음악원을 폐쇄하였으며 악기를 파손했다.
사전에 탈레반이 카불을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르마스트 원장은 우선 여성 단원들을 집으로 보내 숨어지내게 했다. 각자 쓰던 악기도 챙겨 주었다. 그리고 음악원 전체를 피신시킬 계획을 짰다. 300명 넘는 인원을 카불에서 무사히 데리고 나가는 일은 군사 작전을 방불케 했다. 다시금 국제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수소문한 끝에 포르투갈로부터 피난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여러 차례에 나누어 카불 공항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망명에 그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포르투갈에서 다시 피어난 음악
그들은 포르투갈의 브라가라는 작은 도시에 최종적으로 정착하여 음악원을 재건했다. 학생들이 포르투갈 학교에 다녔으므로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나라를 잃었지만 음악을 잃지 않은"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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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일(현지시간) 베를린 콘서트홀에서 연주가 끝난 뒤 서로 축하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관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
| ⓒ 고정희 |
아프가니스탄 청소년오케스트라가 이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것은 의미가 깊다. 늘 우렁찬 박수로 응원하는 관객들은 이날도 기립박수를 오래 보냈다. 그들의 기립박수는 단순한 연주 실력에 대한 찬사가 아니었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낸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이들을 초대한 주최 측은 자유를 잃은 나라에서 온(아직은!) 이들이 자유를 상징하는 유럽의 무대에서 연주함으로써, 음악이 가진 보편적 언어로서의 힘을 보여주길 바랐을 것이다. '자유, 평등, 연대'를 새삼 내건 것은 아마도 이 소중한 가치들이 지금 흔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음악가들이 오히려 베를린 시민들에게 힘을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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