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아들 잃은 엄마의 격정 토로... 판사는 1분만에 퇴장

전선정 2025. 8.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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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군 의료과실로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 "어떻게 국가 믿고 아들 맡길 수 있나"

[전선정 기자]

▲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와 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 안미자씨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홍 일병 유족의 국가배상 항소심 재판부에 항의를 마친 후 법원 동관 앞에 서 있다.
ⓒ 전선정
"판사님, 저 고 홍정기 일병 엄마입니다. 법에 감정, 양심이 있다고 하는데 법은 따뜻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군복무 중 군의 의료과실·관리부실로 사망한 아들의 어머니에게 국가배상금 800만 원을 책정한 재판부를 향해 어머니가 말했다. 판사는 법정 경위를 부르며 퇴정을 요구,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일어나 말을 시작한 지 1분만에 판사 3명 모두 나가버렸다.

박미숙씨와 군 사망사건 유가족, 군인권센터 활동가들은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1별관 304호 법정에 들어섰다. 지난 7월 23일 박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소송 항소심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가 유족 5명에게 총 1900만 원을 지급하고(부모 각 800만 원, 조부·조모·형에게 각 100만 원), 유족에게 소송비용의 80%를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직후 박씨는 "내 자식이 개값만도 못하냐"고 항의했고, 판사들은 법정에서 나갔다.

그때와 같은 판사들이 이날 오후 2시 10분 법정 안으로 들어와 다른 재판을 시작했다. 박씨와 군 사망사건 유족 등 20여 명은 '재판부 탄핵'이라고 적힌 하얀색 마스크를 입에 쓰고 방청하며 항의했다.

"제때 조치 못 해 죽은 아들...어떻게 국가 믿고 맡길 수 있나"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와 군 사망사건 유가족, 현역 장병 부모 모임, 군인권센터가 2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국가배상 항소심 재판부 탄핵 청원 개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중 박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전선정
그날과 같은 법정에서 박씨는 판사들이 나간 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약 8분간 말을 이어갔다.

"판결을 이해시켜줘야 할 거 아닙니까. 1994년 그 뜨거운 여름날에 낳은, 온 우주를 줘도 안 바꿀 아이였습니다. 20년 동안 이 나라에 쓸모 있는 인재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만 살다가 군대 갔습니다. 그렇게 보낸 군대인데, 최소한 부모가 자괴감은 안 들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왜 우리 아들 영전에 가서 아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내가 똑똑한 부모가 아니라서, 빽이 없어서 내 새끼 예우 하나 못해주는 부모로 느끼게끔 합니까.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국가를 믿고 아들을 맡길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아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태어난 운을 돌려주는 기회가 군 복무라고 생각하고 군에 입대한 아이입니다. (아들은) 아파서 죽은 게 아니고 제때 조치를 못 해줬기 때문에 죽은 겁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주셔야죠. 국가가 잘못할 때는 법정에서 국가가 잘못한 것을 짚어서 말씀해 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만 우리가 나라를 믿고 애들을 보내지, 어떻게 애들을 보내놓고 이렇게 불안에 떨게 만듭니까?"

일부 유족들은 박씨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말을 끝낸 후에도 우두커니 서있다가 주변의 요청에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박씨는 양손을 꼭 붙들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한참을 판사가 떠난 자리만 바라봤다. 박씨 뒤에 앉아있던 고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는 그에게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

304호 법정 안팎에 경위들이 점점 늘어났다. 당초 3명이었으나, 박씨가 말을 시작한 후에는 15명으로 늘었다. 잠시 후 한 법정 경위가 "법원조직법에 따라 채증하겠다"며 '재판부 탄핵'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유족들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박씨와 유족들은 꿋꿋이 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한 법정 경위가 "판사님 안 나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사무관도 들어와 "오후 재판을 다 연기했다. 여기서 계속 이러면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오후 2시 25분부터 재판부가 없는 법정에 머물렀던 유족들은 86분만인 오후 3시 51분에야 바깥으로 나왔다.

"유가족이 소송비용 대부분 부담하라는 판결 납득 어려워"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와 군 사망사건 유가족, 현역 장병 부모 모임, 군인권센터가 2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국가배상 항소심 재판부 탄핵 청원 개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선정
앞서 군인권센터와 박미숙씨는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에 고 홍정기 일병 사망사건 항소심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탄핵할 수 있는 국회 국민청원동의를 올렸다"고 밝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번 판결에 따라 결정된 배상금은 1심 재판부가 화해 권고에 담았던 배상금(2500만 원)보다도 적을 뿐더러, 국가배상법 시행령에 따른 '기준표' 상에 적시된 기준 금액보다도 미달한다"며 "홍 일병을 죽게 만든 것도 국가고, 배상 책임도 오롯이 국가에 있으며, 법률의 문제점으로 사건이 항소심에 이르게 된 것도 국가의 책임인데 유가족에게 소송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라는 판결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홍정기 일병은 2015년 8월 건강한 상태로 입대해 체력검정에서 특급을 받을 정도로 신체에 문제가 없었다. 2016년 3월 6일 처음 이상증상을 느낀 이후 구토를 하거나 몸에 멍이 드는 등 급성 골수성 백혈병 증세를 보였고 연대 의무중대와 사단 의무대에서 진료와 처방을 받았다.

같은 달 21일 민간 병원 의사는 홍 일병의 '혈액암 가능성' 소견을 밝혔으나, 군의관은 응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그를 부대로 돌려보냈다. 고통을 호소하던 홍 일병은 국군춘천병원 검사에서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016년 3월 24일 결국 숨졌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11일 해당 위자료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 [현장] "감기약만 먹다가 군에서 죽은 우리 막내아들, 법원이 정한 목숨값은 800만원" ⓒ 전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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