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최저 입찰로 하청 부추기는데… [산업 현장의 구조적 문제]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5. 8. 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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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로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급증

올 들어 네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 사태를 계기로 정부·여당이 잇따라 중대재해 관련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경찰청 등 관계기관이 50일 동안 합동 단속에 돌입하자 전국 사업장은 긴장감이 팽배하다. 이번 사태를 두고 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도 입길에 오른다. 중대재해법 도입 이후에도 건설 현장 사망자 수는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법 취지는 백번 공감하지만, 산업 현장의 복잡다단한 실태와 건설 업계 현장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단 시각이 많다.

쟁점 1 사망·부상자 수로 중대재해 판단

사업장 많은 대기업 구조적 불리

중대재해법 관련 첫 번째 논란은 ‘사망자·부상자 절대치’를 기준으로 중대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중 한 가지를 충족하면 ‘중대산업재해’로 본다. 이런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안전관리 의무라는 보편 가치를 법제화하자는 입법 취지는 백번 타당하지만, 문제는 각론이다. 중대재해법은 사망자 수가 처벌 개시 요건에 직접 포함된다. 동일한 안전 수준이라도 전국에 다수 사업장을 둔 대기업은 통계상 절대 사망자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고율이나 작업 시간 대비 사고 빈도 같은 통계 편향을 보완할 수 있는 지표는 일절 고려되지 않는다. 대규모 건설사일수록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올 1분기까지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건설업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이 기간 산업 현장 사망자는 총 1968명으로, 이 가운데 건설업에서만 절반을 넘는 99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수 상위 10개 사업장 가운데 7곳이 건설사다.

해외 사례를 들여다봐도 사망자·부상자 숫자만으로 중대산업재해 여부를 판명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 시각이다. 사망사고 여부로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지만, 처벌 판단은 안전관리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 인과관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가령, 영국은 ‘법인과실치사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을 통해 법인이 사망사고를 일으킨 경우, 기업에 매출액 대비 과징금을 부과하고 형사 처벌할 수 있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면 기업에 상한선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한다. 얼핏 우리보다 더 엄격한 듯싶지만, 결이 다소 다르다. 영국은 우리와 달리, 개인이 아닌 ‘법인’만 처벌되며 중과실 입증 요건이 까다롭다. 사망자 수 절대 수준은 양형 참작 요소일 뿐, 조직 관리 실패 여부(Management Failure)와 사고 인과관계를 파고든다. 호주, 캐나다, 미국, 일본 등도 대체로 뼈대는 비슷하다. 사망자나 부상자 숫자보단 예방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고의 중과실 입증에 주력한다.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돼야 체계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단 인식이 깔려 있다.

쟁점 2원하청 다층 구조

실질 운영·관리 주체 모호

중대재해법이 건설 현장에 뿌리 깊은 원하청 구조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다 보니 누구를 안전보건 확보·의무 주체로 봐야 하는지에 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사고 현장의 실질적 지배·운영·관리 주체가 다른 경우 이를 정의하는 기준이 없다는 비판은 법 출범 때부터 논란이 됐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건설 현장 안전사고는 대부분 ‘원·하청’ 다층 구조에서 초래된다. 발주자가 원청(종합건설사)에 공사를 맡기면, 원청은 골조·전기·설비·마감 등 세부 공정을 수십 개 하도급 업체에 나눠준다. 일부 공정은 다시 재하도급으로 쪼개진다. 현행법상 재하도급은 불법이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은 데도 이유가 있다고 건설 업계는 항변한다. 단순히 원청 건설사가 이익을 남기려는 목적에서 원하청 구조가 파생한 게 아니라, 재무·계약·발주 제도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는 게 현장 목소리다.

첫째, 재무 요인이다. 원청이 직접 인력을 고용하면 인건비·4대보험·퇴직금 등 고정비 부담이 크다. 하도급을 쓰면 프로젝트 단위 변동비 구조로 바뀐다. 수주가 없을 때 비용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부작용도 이 과정에서 초래된다.

익명을 원한 건설 업종 A애널리스트는 “원청이 모든 공정을 직접 수행하면 원가 상승·자재 지연·안전사고 등 위험을 전부 떠안는다. 하도급 계약은 위험을 계약서상 하부 업체로 이전하는 기능을 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외주화(Outsourcing) 자체가 경영 효율성과 품질 제고를 위한 수단인 만큼 그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다수 전문가 시선이다. A애널리스트는 “프로젝트별로 요구되는 기술·인력 구성이 다를 때, 외주를 활용하면 빠르게 재편할 수 있다. 외주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단가 후려치기, 지나치게 촉박한 공사 기간 설정이 하도급 구조를 위험하게 만드는 요인”이라 지적한다.

둘째, 무한 가격 경쟁으로 내모는 계약·발주 제도(최저가·종합심사낙찰제)다. 국내 공공·민간 발주 대부분이 가격 경쟁 위주다. 발주자는 최저가 입찰로 공사를 발주하고 원청은 낮은 공사비와 촉박한 공기 속 공정 압박을 견디려 하청과 재하도급을 반복한다. 국토교통부가 상반기 전국 건설 현장 1607곳을 단속한 결과, 불법 하도급이 3분의 1 이상(37.9%) 차지했다. 하청 단계가 늘수록 안전관리 책임은 희석된다. 중소 하청 업체일수록 안전 인력과 장비를 갖추기 어려워 비용과 기간 압박 속 위험한 공정을 감수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청이 낮은 낙찰가를 맞추려면 일부 공정을 더 낮은 가격에 하도급으로 넘기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 업계 관계자는 “발주처 준공 기한 요구가 촉박하면 원청이 여러 전문 업체를 병렬 투입해 공기를 단축해야 한다. 이때 각 전문 공정은 하도급·재하도급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우리 건설업 구조 전반이 이런 방식으로 진화를 해왔다”고 전했다.

결국 건설 현장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원하청 구조 속성상 중대재해법은 필연적으로 충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단 지적이 줄곧 반복됐다.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 중 사업장을 실질 운영·관리하는 주체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 ▲‘경영책임자’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 ▲안전조치 의무와 사고 책임 소재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 등 문제점은 언제든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하도급 자체를 금지하는 단선적 방식보다 발주자에 대한 정교하고 실질적인 책임 부과를 포함해 하도급 시 안전관리가 확실하게 담보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쟁점 3 원가율 비상

주택 공급 차질 우려

중대재해법을 비롯한 정부 규제가 사망사고 예방보단 처벌 일변도로 흘러가면서 단기적으론 주택 공급 위축이라는 부정적 외부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특히, 대형 건설사 면허 취소나 영업정지라는 극약 처방은 주택 공급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건설 업계와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미 각종 자재·인건비 상승으로 주택사업 평균 원가율이 90%를 웃도는 가운데 중대재해법 파장까지 겹쳐 손익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원가율은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레미콘 등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를 포함한 수치다. 한때 80%대를 유지하던 주택 사업 원가율은 2020년대 들어 90%를 크게 웃돈다. 올 1분기 기준 현대건설과 롯데건설 등 원가율은 각각 93%, 95%다.

시장에서는 이미 안전관리 비용 확대로 그렇지 않아도 악화일로를 걷던 건설업계 원가율이 재차 뜀박질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건설 업종 애널리스트는 “대형 건설사도 90%를 웃도는 원가율을 기록 중인데, 안전관리 강화로 이보다 최소 2~3%포인트 원가율 상승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종국에는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체투자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지역별 청약 수요 차이 등으로 원가 상승분을 모든 사업장에 동일하게 전가할 수는 없다. 사업성을 더욱 꼼꼼히 따지게 되면서 건설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참여가 줄고 토지 매입이나 사업 승인이 지연되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 환경 급변도 변수

외국인 급증…IT 소통 시스템 필요

산업 현장에선 가파른 고령화에 따른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증가도 안전 취약 요인으로 꼽는다. 숙련공이 떠난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면서 현장 안전이 취약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건설근로자는 약 42만명으로, 이 가운데 약 24만명(57%)이 불법체류자·비허가 인력으로 추정된다. ▲언어와 문화 장벽 ▲짧은 교육 기간 ▲낮은 숙련도가 겹쳐 사고 위험이 높단 분석이다. 특히, E-9 비자로 입국한 근로자는 입국 전 47시간, 입국 후 16시간 교육받은 뒤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대부분 중소 하청 업체에서 근무하며 현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건설 업계 관계자들 전언이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출신 국가는 다양하지만, 체감상 중국인 비율이 약 60% 정도로 가장 많다. 그 외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동남아나 동유럽 출신도 일부 있다”며 “작업 지시나 안전 수칙의 경우, 그들이 알아듣는 척은 해도 실질적으로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외국인 근로자에게 중요 업무를 맡기기 어렵고 한국인 관리자에게 지시를 내리면 그들이 다시 외국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소통이 이뤄져 작업 효율이 떨어지고 사고 위험도 올라간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산업 현장에서 IT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외국인 근로자 소통·관리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최근 IT 기술 발전으로 스마트 안전관리 시스템과 다양한 모바일 안전관리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보급되고 있다”며 “언어와 문화 장벽을 넘어 다국어·IT 기반 소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외국인 근로자 안전관리의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산업 현장 고령 근로자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1일 이상 근무한 국내 건설근로자는 총 66만5698명이다. 이 가운데 50대가 34.1%로 가장 많고 60대가 26%다. 70대 이상도 3.6%(2만3782명)다. 전체 절반 이상인 63.7%가 50세 이상 고령자다. 고령 근로자 체력 저하와 집중력 감소, 안전 불감증이 겹치면 사고 가능성이 커진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고령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반응 속도가 늦다 보니 안전 불감증이 생기기 쉽다”며 “고령 근로자들은 ‘내가 이 현장만 수십 년인데 뭐가 문제냐’라는 식으로 젊은 관리자 지시를 무시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려줬다.

전문가들은 고령 근로자 증가 등 산업현장 변화를 반영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령 근로자의 신체적 특성과 안전 의식을 반영한 맞춤형 안전교육, 시각 자료와 사례 중심 교육, 반복 학습 교육이 중요하다”며 “최신 안전장비 사용과 작업 환경의 직관적 개선, 고령자에 맞는 개인 보호구 제공도 필수”라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3호 (2025.08.20~08.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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