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으로 시작된, 두 청춘의 기묘한 첫사랑 이야기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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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 스틸컷 |
| ⓒ 영화로운형제 |
01.
(이 글의 두 주인공 이름은 '예쯔제'로 같다. 쉬운 이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남자 예쯔제를 '남쯔제', 여자 예쯔제를 '여쯔제'로 표기한다.)
동아시아권에서 로맨스 영화는 각 나라의 문화적 정서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장르로서 기능해 왔다. 가장 먼저 두드러졌던 것은 1990년대 전후의 일본. 원작에 기대어 시적인 정조를 스크린에 옮기면서도 사랑과 죽음, 상실의 관념을 상당한 수준으로 밀착시키며 그 서사를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과 서사가 함께 기억되는 것'이라는 감각을 각인시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흐름을 주도했던 한국 로맨스는 현실적 갈등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계급 차이나 가족의 반대, 사회적 조건 같은 장애물이 사랑을 시험하곤 했다. 그래서 한국 로맨스 작품에는 달콤함과 함께 씁쓸한 현실 인식이 반영되곤 했다.
한편, 중국 로맨스 영화는 상대적으로 대륙을 배경으로 한 장중한 감정선을 드러내곤 했다. 긴 시간에 걸친 인연이나 역사적 사건과 얽힌 비극, 광활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서사가 운명을 강조하는 식이다. 이들 작품에서 사랑은 개인의 감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정 시대가 반영되어 함께 호흡 되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시기적으로 가장 최근 주목되는 대만 로맨스물은 조금 다르다. 한국처럼 첨예한 현실의 장벽에 밀어 넣지도 않고, 중국처럼 거대한 운명의 비극으로 이끌지도 않는다. 오히려 소박한 청춘의 감정, 첫사랑의 서툴지만 간질거리는 느낌, 유머와 따뜻함 같은 것들이 함께 녹아 있다.
영화 <나의 아픈, 사랑 이야기>는 그런 계보 속에서 탄생한, 조금은 독특한 결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꾀병이라는 다소 엉뚱한 설정을 첫사랑의 서두로 삼는다. 오진으로 암 선고를 받은 남자와, 그를 돌보면서도 자신의 병은 숨기고 있던 여자의 이야기는 가볍게 시작하던 서두와 달리 묵직한 말미로 견인된다. 이 낯설고도 친숙한 서사는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대만 로맨스가 가진 힘,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정서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드러낸다.
02.
"선생님이 네 옆에 앉아서 챙겨주래."
남쯔제(첨회운 분)는 오진으로 암 선고를 잘못 받게 된다. 말썽만 피우며 퇴학 직전까지 내몰렸던 그는 이 상황을 이용해 편안한 학교생활을 위한 꾀병을 부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기차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부모님의 보험금을 이모가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립대에 입학해야 준다는 약속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퇴학만은 피해야만 하는 상황. 같은 반 반장으로 모범생인 여쯔제(강제 분)의 특별한 돌봄을 받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두 사람은 처음에 단순한 환자(가짜)와 보호자의 위치에 서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관계의 감정을 점차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 설정은 로맨스 장르 속에서도 흥미로운 편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로맨스는 일방적 호감이나 우연한 만남, 또는 외부적 사건에 의해 관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허위의 사건이 첫 계기가 된다. 병원의 오진이라는 오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병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화가 이후에 가져오게 될 질문, 진실된 사랑의 감정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에 대한 물음 또한 포함된다.
관객들이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면서 동시에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처음부터 '오진'의 사실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거짓 위에 세워지기 시작한 감정의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단순한 함정, 하나의 장치로 활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거짓이 불러낸 진짜 감정의 힘을 전면에 드러내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03.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설정 하나는 평행하며 나아가는 두 시간 축이다. 꾀병 행세로 시간을 보내는 남쯔제의 시간 축이 하나, 감추고 있지만 실제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쯔제의 시간 축이 또 다른 하나다. 극 중에서 남자의 시간은 졸업까지, 여자의 시간은 11월 16일까지로 설정된다. 오롯이 성인이 되어 독립할 수 있는 날과 3년의 관찰 기간이 끝나며 90% 이상의 확률로 재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로 두 사람의 시간이 극명하게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그 두 시간 안에서 남쯔제는 졸업을 기다리며 꾀병 행세로 시간을 보내고, 여쯔제는 생사의 경계에서 다시 건강을 확신할 수 있는 날짜를 기다리며 진짜 병을 견뎌낸다. 거짓으로 부풀려진 병 하나와 현실 속에서도 차마 드러내지 못한 병 하나. 이 두 가지 병과 시간의 축이 병렬적으로 놓이게 되는 순간, 관객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불균형한 조건 위에 세워지고 있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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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 스틸컷 |
| ⓒ 영화로운형제 |
한편, 극 중에는 천리(류수보 분)라는, 두 사람의 후배이자 여쯔제를 짝사랑하는, 뇌전증을 앓는 인물이 하나 더 등장한다. 그는 두 중심인물의 서사 바깥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니라, 남자의 꾀병과 여자의 실제 병 사이에 놓인 세 번째 축이자, 영화가 묻는 윤리의 초점을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다. 두 인물의 시간이 '졸업을 기다리는 시간'과 '재발이 없음을 확인할 날짜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구성된다면, 천리의 시간은 예고 없이 끊길 수 있는 현재 그 자체에 해당한다. '아픈 것처럼 보이는 삶'과 '아픈 채로 살아내는 삶' 사이의 간극을 몸소 가리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로맨스의 언어가 애틋함에 머물지 않고 책임이라는 단어를 불러오게 하는 인물.
후반부에서 천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거짓으로 시작된 사랑도 진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의 죽음은 남쯔제의 꾀병을 단순한 장난이나 유예된 청춘의 서사에서 끌어내, 타인의 고통을 가로지르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폭로한다. 동시에 여쯔제의 병과도 대비되면서, 기다림으로 겨우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의 시간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덧씌운다. 그런 이유로 천리는 비극의 기폭제이면서, 관객에게 사랑의 진실이란 결국 누군가의 고통을 얼마나 직시하고 그 시간 곁을 지키는가의 문제임을 몸으로 증언하는 인물로 자리한다. 그의 부재가 만든 공백 안에서, 남녀 주인공이 나눴던 웃음과 약속은 다시 평가되고, 영화의 멜로는 윤리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천리는 서사의 중심에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랑과 기다려주지 않는 현실을 겹치게 만드는 대상이다. 남자와 여자의 기다림이 (서로 목적지는 다르지만) 각각의 미래를 가정하는 시간이라면, 천리가 남기고 간 것은 현재를 절단하는 시간이다. 그 대비가 만들어내는 진동 속에서, 영화는 단순히 아픈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대한 책임을 그린 이야기가 된다. 그가 사라진 자리의 침묵은 그렇게, 사랑이 감정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시간을 감당하는 일이라는 교훈을 남긴다.
05.
"앞으로도 널 계속 좋아할 거야. 용서해 줄래?"
영화의 타이틀에 새겨진 '아픈'이라는 형용사는 단순히 육체적 질병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첫사랑의 본질에 내재된 감정적 고통과도 연결된다. 첫사랑은 언제나 미완성으로 남거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혹은 시간이 흐른 뒤에 후회와 상처로 회귀하곤 한다. 감독은 이 점을 정확히 짚어내며, 관객이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 속에 투사하게끔 유도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곡선은 자신을 불러내도록 만든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으나 끝내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기억, 또는 당사자만의 착각처럼 스쳐 간 관계의 잔향이다. 영화는 바로 그 기억 속의 아픔을 현재로 다시 호출한다. 이는 단순히 장르적 카타르시스가 아닌, 삶의 불가피한 순간을 되짚게 만드는 서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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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 스틸컷 |
| ⓒ 영화로운형제 |
결국 영화 <나의 아픈, 사랑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을 가진 두 인물이 만나 함께 기다리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꾀병과 실제 병이라는 불균형이 끝내 두 사람을 갈라놓지만, 그 과정에서 건져지는 웃음과 감동, 사랑에 대한 깊은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두 개의 다른 시간이 함께 흐르는 순간마다 영화가 두 인물이 공유한 감정의 진실성에 대해 묻고 또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결국 이 영화가 끝내 하고자 하는 말은, 책임을 갖고 같은 시간을 함께 기다리는 경험이 곧 사랑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첫사랑의 아픔을 넘어, 타인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은 극장을 나서는 우리에게도 꽤 오래 남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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