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자 이규경, 파브르보다 50년 앞서 매미 발성 원리 밝혀내
[박성호 기자]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매미는 청렴과 고결함을 상징하는 소재였고, 한의학에서는 매미 허물이 해열제로 쓰였다. 하지만 매미가 어떻게,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거의 없었다. 비록 정약용의 <선음삼십절구>가 존재하지만 운문 형식으로 매미의 생태를 기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산문에서 매미에 대한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린 매미 발성 메커니즘이에 대한 관찰은 파브르 곤충기 보다 50여 년 앞선 것이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과학 발전의 시작, 이성적 질문
조선 후기 성리학자 임성주(1711~1788)는 <녹문집> 21권 '선설(蟬說·매미에 관한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어보면 배에서 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내는 생물은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 왜 유독 매미는 등에서 소리가 나는 걸까?(蟬鳴而聲出於背 凡天下有聲之物 皆以口出聲 而獨蟬之出於背何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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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성리학자 임성주의 <녹문집> 21권 설(說) 중 선설(매미 이야기) |
| ⓒ 한국고전번역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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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주연 문장전산고 만불편 충어부, 蟬蝦辨證說 선하변증설 원문 선하변증설에서는 매미와 새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매미에 대한 기존 문헌도 소개하고 매미의 발성구조에 대한 관찰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
| ⓒ 한국고전번역원 |
<오주연문장전산고>는 60권 25책으로 이루어진 조선 최대의 백과사전으로, 이규경이 30여 년간 수집한 지식을 집대성한 실학의 결정체다. 후대 사람들은 '매미오덕(매미를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인용되지만, 실학서로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런 정밀한 자연 관찰 기록에 있다. 이규경에게 매미는 과학적 탐구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현대 생태학에서 말하는 매미의 발성 메커니즘과 거의 일치한다. 매미는 복부에 있는 얇은 막(진동막)을 근육으로 떨리게 해 소리를 내며, 진동막이 초당 300~500번 떨리며 작은 소리가 만들어지면 공명실 역할을 하는 텅빈 배에서 증폭되어 우렁찬 매미소리로 변하게 된다.
이규경의 관찰에서 주목할 점은 세부 묘사의 정확성이다. '색미백'(色微白, 색깔이 약간 흰색), '약대두피'(若大豆皮, 대두 껍질 같음), '중공'(中空, 속이 빔), '하유세구'(下有細口, 아래에 작은 구멍이 있음) 등의 표현은 매미를 실제로 해부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구체적인 특징들이다. 특히 '명즉고동'(鳴則鼓動, 울 때 진동한다)이라는 동적 관찰은 그가 살아있는 매미를 대상으로 발성 과정을 직접 지켜봤음을 시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약생지부황'(若笙之附簧, 생황의 금속판 같다)이라는 비유다. 생황은 대나무 관에 금속 리드를 붙인 전통 악기로, 입김으로 리드를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 이규경은 매미의 진동막이 악기의 리드처럼 진동해 공명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원리를 간파한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매미 관찰에 남달랐던 이규경
이규경의 매미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오주연문장전산고> 만물편 '선하변증설(蟬蝦辨證說)'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어릴 때 땅을 파다가 굼벵이가 매미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피부가 매미 형태로 바뀌고 날개와 다리가 생겼으나 움직이지 않아 다시 묻었으며, 며칠 후 그곳에서 풀줄기에 매달려 등과 목에 십자형 틈이 생겼고, 곧 갈라져 탈피 후 날아갔다(愚兒少時。掘地。見蠐螬化蟬如蛹。皮殼已其蟬形。翅足已生。更不蠢動。還埋之。數日後。見其埋處。草上已爲粘着。而其背與咭項。坼十字痕。少頃坼裂其痕。卽脫殼蛻飛)"
이는 매미가 땅속에서 3~7년을 보내는 유충기를 거쳐 완전변태를 한다는 현대 생태학의 지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특히 '등과 목에 십자형 틈'이라는 표현은 매미 유충이 성충으로 탈피할 때 머리와 가슴 부분이 갈라지는 모습을 정확히 묘사한 것으로, 실제 경험적 관찰 없이는 불가능한 기술이다. 이규경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매미의 생활사를 정확히 파악했던 것이다. 매미 발성기관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도 어린 시절 파악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정약용의 포괄적 매미 생태 기록
비록 운문의 형태지만 조선에서 매미 생태를 가장 포괄적으로 다룬 인물은 정약용 선생이다. <선음삼십절구> 7수엔 이렇게 나와 있다. "허리에 두른 북이 두 번 울리고, 슬픈 실과 분노한 대나무가 소리를 합하네(腰鼓鏜鏜一再鳴, 哀絲怒竹欻和聲)." 배 속에서 실이 튕켜지면 대나무 속 같은 텅빈 배에서 공명이 되어 소리가 난다라고 매미의 발성 메커니즘에 대해 이규경과 거의 같은 이해를 하고 있다.
성리학자 임성주 선생의 질문에 후대 실학자인 이규경과 정약용(1762~1836) 선생은 관찰과 해부라는 경험적 방법론을 통해 답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특히 정약용 선생의 <선음삼십절구>는 비록 운문 형식이지만, 지난 기사에서 소개한 매미의 발성 메커니즘 외에도 탈피 과정, 서식지, 천적 관계, 생존 기간 등 매미 생태에 대해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그는 <선음삼십절구>에서 매미가 "허물 벗은 빈 껍질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고, 아직도 쇠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네(委蛻空空樹杪懸, 猶然鐵爪抱持堅/3수)"라며 탈피 후에도 허물이 나무에 단단히 붙어있는 생태적 특성을 읊었다.
또한 "얕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들까치가 곁눈질하고, 바람에 깃털이 흔들리며 자주 옮겨 다닌다(淺坐偏逢野鵲窺, 風翎時復有遷移/16수)"면서, 까치가 매미의 천적이며, 매미가 이를 피해 가지를 옮겨다니는 습성을 기록했다. "비록 그 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해도, 이 몸은 오래 머물지 못하리(縱然聲滿今天地, 只是形骸不久留/27수)"라며 여름에 국한되는 매미의 짧은 성충 수명도 정확히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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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드 나무에 앉아 있는 매미 그림-월봉 김인관(1636-1706)의 유선도 조선시대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그림 중에서도 매미가 버드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경우가 있다. 이 그림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잔가지에 유유히 앉아 있는 매미를 그린 조선후기의 작품이다. |
| ⓒ 국립중앙박물관 |
정약용이나 이규경의 매미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놀라운 이유는 시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선음삼십절구가 쓰인 게 1829년, 이규경의《오주연문장전산고>는 1830년대에 쓰여진 반면, 매미에 대한 포괄적인 생태를 관찰해 체계적으로 기술한 장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는 1879년에서 1907년 사이에 출간됐다. 조선의 실학자가 서구 곤충학계보다 50여 년 앞서 매미의 생태를 밝혀낸 셈이다.
이규경은 어린 아이 시절에 파브르처럼 해부를 통해 매미의 발성 메커니즘에 대한 결론에 도달했음을 밝히고 있다. 흰색 막의 속이 빈 구조, 작은 구멍, 진동 과정 등은 매미를 해부하지 않고는 알기 힘든 지식이다. 이는 조선에서 이루어진 곤충 생물학의 결과 중 정점이라 할 만하다.
조선 과학의 한계를 넘어선 발견
조선은 세종대왕 시대의 측우기와 해시계, <동의보감>과 같은 의학서, <농사직설> 같은 농업서 등 실용적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과학적 성취를 이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도 흑산도에서 물고기 226종을 기록한 뛰어난 저작이지만, 이 역시 식량 자원 관리라는 실용적 가치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 과학이 실용성에 치우쳐 곤충생태학 같은 순수 생물학 연구가 부족했던 것은 분명한 한계였다. 유학적 사상은 매미를 도덕적 상징으로, 실용 정책은 식용·약용 자원으로만 바라봤다. 중국 고전에 대한 의존도 체계적 관찰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임성주의 질문, 이규경의 관찰, 정약용의 기록은 조선에도 분명 과학적 탐구 정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실학은 이전 시대와 달리 실용적 학문에만 그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매미 한 마리 속에 담긴 조선 실학자들의 호기심과 관찰력. 이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이자, 우리 과학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앞으로 더 많은 조선시대 과학 기록들이 재조명돼 우리 선조들의 숨은 과학적 성취가 세상에 알려지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1. 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98분, 감독 박성호
2. 한국 고전번역 DB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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