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라, 빨간 옷을 입고 [은퇴하고 산티아고]
2025년 봄, 산티아고 길을 걸었습니다. 산티아고 길은 열풍을 넘어 '산티아고 현상'이 되었음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길 위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상희 기자]
나는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좋아하지 않는다. 웰 메이드 드라마라 하더라도 마지막 편에서 명장면 명대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의외로 끝은 평범하다 못해 시시한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이 주는 무게감이란 그런 것이다.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가 다가오자 순례길의 끝을 맺는 방식도 순례자마다 달랐다. 내 친구는 곧 걷기가 끝나서 좋다고 했다. 그녀는 산티아고 도착을 '40일간의 걷기 미션의 완료와 환희'로 받아들였다. 한편 독일 하노버에서 온 순례자는 완주를 앞두니 아쉽다고 했다. 산티아고 이후 예정에도 없던 묵시아까지 며칠을 더 걸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나는 후자 쪽이었다. 산티아고에 빨리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도착을 늦추고 싶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입성하는 날은 최대한 천천히, 발걸음을 아끼면서 걷기로 했다. 또 완벽히 혼자 걷기로 했다.
|
|
| ▲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
| ⓒ 김상희 |
|
|
| ▲ 40일의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
| ⓒ 김상희 |
내 몸을 혹사시킬지 모르는 장거리 걷기 미션에 내 몸을 던져 넣었는데 다행히도 끝까지 멀쩡한 몸으로 살아남았다. 대학생 때 국토 종주했던 아들로부터 폭풍 칭찬을 들었다. '나? 환갑에 국제 공인 걷기 완주증 받은 사람이야!'
|
|
| ▲ 순례자 여권. 순례길에서 들렀던 숙소와 바에서 스탬프를 받는다. 완주증 받기 위해 제시해야 한다. |
| ⓒ 김상희 |
내 몸에 오롯이 집중하는 동안 내 속의 잡념과 타인과의 관계망을 끊어낼 수 있었다. 단절이 주는 정화 효과다. 나는 이제 포맷 상태, 리셋하면 된다. 새로 생각하고 새로 관계 맺어 보자.
땀 흘린 후의 샤워와 시원한 맥주, 길에서 먹는 복숭아 한 알, 뽀송뽀송한 신발, 지친 몸 누일 매트 한 장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했다.
|
|
| ▲ 마른 빵과 과일 한 조각으로도 행복했던 길 위의 점심 |
| ⓒ 김상희 |
"천천히 걸으라. 기왕이면 빨간색 옷을 입고!"
나는 4명이 팀이 되어 걷느라 내 속도를 잃었다. 너무 빨리 걸었다. 하루치를 걸어내고 나면 지쳐 쓰러졌고 겨우 양말 빨고 자느라 바빴다. 타인의 속도로 걸으니 길에서의 느낌과 생각이 내 속에 고일 새가 없었다. 매일 일기를 쓰고 그날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
|
| ▲ 빨간 옷은 훌륭한 모델이 된다. |
| ⓒ 김상희 |
|
|
| ▲ 사아군에서 본 순례자 벽화 |
| ⓒ 김상희 |
그가 인사를 보내왔다. "언젠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요!"
나도 회신했다. "언젠가 일본과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요!"
적고 보니 빠트렸다. 카미노에서 얻은 것, 최고는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20회에 걸친 산티아고 여행기를 종료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회영의 아내이자 동지, 우리 할머니의 '글꼴'이 나왔습니다
- [단독] 3년 전 내부 경고에도...해군, 웨딩업체에 매년 수천만 원 지급
- 죄없는 검찰파견관의 죽음과 윤석열의 살권수 투쟁
- 수의 벗고 누워 저항하는 윤석열 CCTV 영상 공개, 가능할까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압수인멸
- 서희건설 회장 요청해 김건희 참석한 '국가조찬기도회', 임원진 면면 살펴보니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윤석열 정부, 원전 수주 대가로 '50년 퍼주기' 계약 논란
-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고무된 국힘, 연일 조국 때리기
- 내 친구 김행균이 보여준 진짜 '국민주권'
- [오마이포토2025] 민주당 3대특검 종합대응특위 발의 1호 법안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