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호황' 누렸는데…"수천억 폭탄 어쩌나" 초고압 변압기 韓기업 '비상'(종합)
고객사 전가해도 가격 인하 압박 불가피
주요 기업들, '현지화 전략' 확대 등 대응
미국 정부가 철강·알루미늄 파생제품에 50% 고율관세를 부과하면서 변압기를 생산하는 국내 전력기기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설과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역대급 호황'을 누렸지만 관세 유탄을 피하지 못했다. 변압기 제조기업들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면서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도 커질 전망이다.

19일 전력 업계에 따르면 전날 발효된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파생제품 품목관세 50% 적용으로 국내 변압기 업계의 부담이 수천억 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미국 상무부는 용량 기준 1만㎸A(킬로볼트암페어)를 초과하는 유입식 변압기 및 관련 부품을 고율관세 대상으로 추가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변압기 제조에 필수적인 방향성 전기강판이다. 이 소재는 제품 원가의 30~40%를 차지하지만 미국 내 생산 기반이 취약해 국내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국무역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된 1만㎸A 초과 유입식 변압기와 관련 부품 규모는 6억달러(약 8310억원)였다. 전기강판 가격 비중을 30%로 두고 관세율 50%를 적용해 추산해보면 약 1240억~125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수출 비중이 큰 국내 주요 변압기 업체들의 부담은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선 최근 북미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라 변압기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관세 부담도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3조3223억원을 기록했고 이 가운데 북미 매출은 약 1조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에서 생산한 뒤 수출하는 비중이 60%인 점을 반영하면 약 6300억원어치다.
현지에 변압기 공장이 없어 국내 생산분으로 전량 수출하는 LS일렉트릭의 경우 8000억원, 효성중공업이 창원공장에서 북미로 수출한 금액은 3800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올해 수주·매출 변동과 고객사와의 관세 부담 협상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해당 매출 규모만큼 관세 영향권에 들어가는 셈이다.

관세는 현금 유출을 키워 수익성에 부담을 주고 완제품 가격 전가가 제한될 경우 납품가 인하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수출을 많이 하는 만큼 영향이 클 것"이라며 "제품마다 소재·부품 함량을 따져봐야 알겠지만 워낙 철강 비중이 높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북미 변압기 시장은 지난해 17조원에서 2034년 35조원 규모로 두 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 증설과 전력망 교체 수요가 겹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안심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변압기 업체 고위관계자는 "구체적인 지침이 나올 때까지 영향을 따져보긴 어렵지만 고객사에 전가할 수 있도록 협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다만 지멘스 등 현지화를 완료한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가격 인하 압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효성중공업은 관세 발표 이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시장 대응과 관세 상쇄를 위해 '현지화'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울산공장과 미국 앨라배마 공장 생산라인을 풀가동 중이며 1850억원을 투입한 미국 공장 증설을 내년 말까지 마친다는 계획이다. 증설된 공장은 2027년 가동이 목표다. 여기에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투자 동향을 모니터링하며 추가 증설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중공업은 지난해 6월부터 미국 테네시 공장의 설비 증설을 진행 중이다. 연간 100대 미만이던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160대 수준으로 키우기 위한 투자로, 4900만달러(약 700억원)를 투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북미 수주 대부분은 이미 현지 생산으로 전환한 상태"라며 "미국향 제품은 현지 생산 비중을 더욱 늘리고 소재 또한 현지 조달로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LS일렉트릭은 현지 변압기 공장을 갖추지 않아 사실상 전량 국내에서 수출하고 있다. 새로운 변압기 공장을 증설하기보다는 배전반·저압전력기기 등 주력 제품군을 중심으로 한 현지화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변압기 수요보다 향후 성장할 배전반 시장을 겨냥해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력기기 업계 관계자는 "고율관세가 부과되면 수출 비중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며 "고객사와의 가격 협상에서 쉽지 않은 줄다리기 게임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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