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의 아내이자 동지, 우리 할머니의 '글꼴'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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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기자]
우리 할머니가 독립운동가라고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나를 안아주고 업어주고 늘 따뜻하게 감싸 주기만 한 할머니였다. 억세고 강건하고 단호해야 할 수 있을 것 같은 독립운동가와 우리 할머니는 연결 지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할머니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반평생을 독립운동가로 살아온 분이다. 할아버지 우당 이회영과 가족 모두가 함께 '투쟁'한 활동을 오래 전에 책으로 냈다. 할아버지 여섯 형제 분들이 모두 가솔을 이끌고 서간도로 이주한 것부터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전개한 항일운동의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아사 하거나 고문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할아버지들, 이루 말로 다하기 어려운 비극적 가족사까지 그 책에는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것이 <서간도 시종기(이은숙 저)>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다.
최근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하나 생겼다. 할머니의 서체가 완성된 것이다. 그것은 육필원고의 글씨체를 정형화해서 만들었다. 서체의 이름은 '광복 이은숙' 글꼴이라고 붙여졌다. 할머니의 글씨는 강건한 중심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여분을 품고 있었다. 글맵시는 자유스러우면서도 깨지지 않는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할머니의 저서에 만만치 않은(?) 기여를 했다. 원고를 묶은 원본 책의 제목을 붓글씨로 내가 쓴 것이다. 제목 중에는 '할머니 자서전'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것이 나의 참여를 만방에 알리는 실마리이다. 흔쾌하게 마음먹고 쓴 것도 아닌데 할머니의 저서 덕에, 나는 책과 함께 영원히 익명의 손자로 등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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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이은숙 글씨체 소개 |
| ⓒ 광복8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
할머니는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마당 쪽 방문을 열어 놓고 글을 쓰셨다. 햇빛을 옆으로 받으며 앉아서, 무릎을 세워 책상 삼아 글을 쓰셨다. 무릎 위에 놓는 단단한 책받침은 아버지의 작품이었다. 할머니의 자세에 맞게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아버지가 직접 재단하고 만들어 드렸다.
할머니는 마치 붓글씨를 쓰듯이 펜의 중간 위를 잡고 글을 아래로 써 내려갔다. 펜 끝에 힘이 많이 들어갈 수 없는 옛 필법이었다. 그렇게 쓰면 글씨 또한 커지기 때문에 펜도, 원고지도 특수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한지류의 적당하게 부드러운 종이를 찾았다.
큰 한지를 크기에 맞춰 가지런하게 잘라 저술 용지로 묶어 드렸다. 펜은 굵은 사인펜을 사서 끝이 부드러워지도록 이겼다. 붓펜이 따로 없던 시절이어서 아버지가 이런 방법을 고안했다. 끝이 풀린 굵은 사인펜은 할머니의 손과 팔에 무리가 안 가게 했고 잉크도 적절하게 풀려 나왔다. 왜 할머니의 사인펜은 새것도 항상 헌 것처럼 끝이 이겨져 있는지 그때는 궁금했다.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던 시기에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여서 그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할머니가 무엇인가 쓰고 계셨고 그러기 위해서 늘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기억을 한다.
초겨울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 때에도 할머니는 방문을 열어 둔 채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마당을 내다보며 글을 썼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막내 손자와 가끔 눈이 마주치면 예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느 때처럼 나의 놀이에 눈길을 계속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 옛날 엄동설한의 기억 속으로 생각을 모아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잎을 거의 떨군 화단의 겨울나무들을 보는 할머니의 눈길은 그보다 훨씬 멀리, 닿지 않는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얼마를 그러다가 천천히 눈길을 되돌려 다시 사인펜의 윗부분을 잡고 붓글씨를 쓰듯 몇 줄을 술술 써 내려가곤 하셨다.
추위와 기아는 이제 옛 얘기가 됐을지 몰라도 그 겨울들에 묻혀 있는 고난의 시간을 어찌 따뜻한 온기에서 맞이할 수 있을까? 가늠할 길 없는 할머니의 눈길이 그렇게 수없이 겨울을 오가며 할머니의 과거는 뭉툭한 글씨로 하나씩 종이 위에 옮겨졌다.
할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종종 갑자를 꼽았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네 손가락의 마디를 하나씩 짚어 가며 중얼거리곤 했다. 기억을 불러오다가 다시 고쳐 되뇌고를 반복했다. 어떤 경우에는 연이어 갑자를 꼽고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기억의 정확한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또 몇 줄을 써 내려갔다.
간혹 손가락 마디를 계속 짚다가 마치 찾고자 한 것을 찾지 못한 것처럼 손을 탁탁 털고 원고용지를 접은 후 일어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한 줄도 더해지지 않았다. 나중에 그것이 시기를 기억하기 위해 갑자를 꼽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린 손자의 눈에 그것은 정말 희한한 행동이었다. 언젠가 할머니께 여쭈어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 손에 뭐가 있어?"
할머니는 웃으며 갸름한 손바닥을 보여 주셨다. 거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잔주름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주름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연을 그 당시에는 헤아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실망한 표정의 막내 손자를 안고 상기된 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다.
<서간도 시종기>는 거의 전적으로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다행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경험을 회상하고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리가 있었다. 할머니의 생신이 되면 아침부터 과거의 동지들이 할머니를 찾아왔다.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할머니 무릎에 앉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며 가며 본 장면과 소리로만 기억이 남아 있다.
해마다 생신 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어르신들이 할머니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 혁명가들이어서 그런지 노인들임에도 대체로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쾌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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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이은숙 글꼴 |
| ⓒ 광복8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
종종 이런 말씀을 여러 분이 하셨다. 그리고 때로는 씁쓸하게 혀를 차기도 하고, 때로는 껄껄 웃기도 했다. 해마다 오던 동지들 중 여러 분은 나중에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교과서에 독립운동가로 소개된 것을 보고 비로소 그분들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할머니 책의 제목을 쓴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할머니 책의 표지 제목을 나에게 붓글씨로 쓰라고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서예 특별활동이 있었는데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이 그 지도 교사였다. 좋으나 싫으나 나는 서예 연습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예 숙제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연습할 때마다 아버지가 지켜보며 칭찬해 주셨다.
처음에는 가로 획과 세로 획만 수 천 번 이상 연습했다. 글자를 쓰게 된 것은 시간이 꽤 지난 그다음이었다. 획 하나하나는 그런대로 모양을 갖춰도 획들이 모인 글자를 균형 있게 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획은 살았지만 글자는 깨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 나아가 여러 글자가 모인 글을 하나의 화선지에 정연하게 쓰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아버지가 할머니 책의 제목을 쓰라고 했을 때는 이제 막 화선지 위에서 줄 맞추랴 크기 맞추랴, 여러 글자들을 놓고 씨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자신도 없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흔쾌하게 그것이 나의 일인양 생각하며 쓰겠다고 했던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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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간도 시종기> 책표지 |
| ⓒ 일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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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당의 부인 이은숙씨가 서간도에서의 독립운동을 기록한 <서간도시종기> |
| ⓒ 우당 이회영과 6형제 전시위원회 |
굴종을 강요하는 세월에 흔들림 없이 맞서고, 또 견디며 결국 소화화고, 이겨낸 할머니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고사리 손 어린 손자도 이제 손바닥에 잔주름이 잡히고 있는 환갑쟁이가 됐다. 세월을 그렇게 먹도록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할머니께 여쭙고 싶다.
"할머니 어떻게 그렇게 사실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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