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보다 더 바보스러웠던 허대만
[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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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10월 포항남울릉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시절의 허대만. |
| ⓒ 사진 제공 : 허대만추모문집발간위원회 |
허대만은 1968년 포항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가 아홉 살 때 제철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부친이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삼 남매는 힘겹게 살아야 했고, 소년 허대만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다.
성적 우수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포항 대동고에 수석으로 입학해 3년 내내 학력은 물론 축구 등 운동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보였다. 1987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며 6·10 민주항쟁을 거리에서 온몸으로 겪은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주옥(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과 절친한 사이였고, 이원석(제45대 검찰총장), 최재원(법무법인 자연수 대표변호사), 고 이용마(MBC 기자), 종원 스님 등이 대학 동기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후에 서경석 경실련 사무총장의 강연을 들은 게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다. 점진적인 개혁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해야 하며, 구체적인 생활상의 문제를 집중해서 해결한다는 강연에 깊이 공감했다. 서울대 경실련 대학생회 대표를 맡으며 대학 경실련의 조직화에 열정을 바쳤다. 1993년 대학 졸업 후엔 고민 끝에 귀향을 택했다.
돈이 없어 생활은 어려웠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듯해서 싫었고,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도 많았지만 개인적인 성취만을 생각하는 길 같아 내키지 않았다. 무언가 과감하고 의미 있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위의 책 40페이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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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포항시의원 당선 확정 후 어머니를 업었다. |
| ⓒ 사진 제공 : 허대만추모문집발간위원회 |
청년이여 고향으로 돌아가 시장이 되자.
-위의 책 104페이지 일부
기초의원 출신 대통령이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가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위의 책 96페이지 일부
하지만 허대만의 뜻과 꿈이 꽃을 피우기에는 현실이 너무 척박했다. 1998년 경북도의원 선거부터 국회의원, 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고 말았다. 거듭된 패배로 영혼과 육체는 지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2016년 위암이 발견돼 큰 수술을 받았다. 그는 어금니를 깨물고 다시 일어섰다.
2018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해 42.41퍼센트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최고 득표율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9년 위암이 재발했지만 이듬해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또 낙선했다. 그는 더 이상 일어설 힘을 잃은 채 2022년 늦여름 숨을 거두었다. 허대만은 1998년부터 2020년까지 22년 동안 일곱 번의 선거(도의원 1회, 국회의원 4회, 시장 2회)에 출마해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허대만의 출마 이력은 무모해 보일 수밖에 없다.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으로 일컫는 포항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그럼에도 그는 왜 정치적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까?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은 대부분 지역주의 정치의 악순환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모든 개혁의 전제조건이 된다.
-위의 책 67페이지 일부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근본적인 정치개혁이 힘들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신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민주당을 탈당하라거나 지역구를 수도권으로 옮기라는 주변의 권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추모문집에 나와 있다시피 그는 '총알받이'의 심정으로 포항과 경북의 민주당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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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대만의 서울대 정치학과 동기 중에 종원 스님이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동기와 포항 친구들이 통도사에서 하안거 중인 종원 스님을 찾아갔을 때인 2015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MBC 기자였던 고 이용마. 이용마는 허대만보다 3년 먼저인 2019년 지병으로 작고했다. 이용마의 기일은 8월 21일, 허대만은 8월 22일이다. |
| ⓒ 사진 제공 : 허대만추모문집발간위원회 |
포항에서는 진영을 초월해 허대만을 '좋은 정치인'이었다고 말한다. 증오를 동력으로 상대 진영을 무차별 헐뜯는 것이 일상화 된 정치현실에서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허대만은 '좋은 정치인'이자 '좋은 사람'이었다. 1990년대 말부터 허대만과 정치개혁 운동을 함께한 김태일(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허대만의 '불굴의 용기'는 여린 심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그걸 손꼽아보니 모두 7차례 도전, 7번 패배다. '바보' 노무현도 민망해할 기록이다. 그러나 그는 늘 웃었다. 힘들어도, 좋아도,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다. (…중략) 그는 마음이 여렸다. 늘 수줍은 소년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30년 세월을 도전하고 또 도전했던 불굴의 용기는 사실 '마음 여린 자의 용기'였지 싶다.
-위의 책 289페이지 일부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 했던가. 대학 동기들(김주옥·최재원)은 허대만이 죽음 앞에서 보여준 의연한 태도에 놀랐다며 그의 죽음이 가슴 아프지만 그의 친구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허대만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른두 살 아내와 열한 살, 아홉 살, 일곱 살, 세 아이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그런 그가 53세의 나이에 아내와 3남 1녀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안민석 전 의원은 3년 전 허대만의 장례식을 지켜본 후 화장장까지 따라가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 안민석의 글은 87학번 한 정치학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헌신했던 바보 노무현보다 더 바보스러운 허대만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는 굳건한 신념으로 단 한 순간도 한눈팔지 않았고 꼼수를 부리지 않았으니 바위 같은 정치인이다. 그래서 허대만은 거룩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일찍 저 멀리 떠난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휴머니스트 정치인이 치러야 할 대가였는지 모르겠다.
-위의 책 252페이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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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대만 추모 문집 <공존의 정치 허대만>. |
| ⓒ 도서출판 BM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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