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안심'되는 마을...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오마이뉴스>와 노동-시민사회의 연대 문화 확산을 위해 만들어진 솔라시 조직위원회는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체적 현실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례로 보는 대안 정책'을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손우정 기자]
'안심마을'. 사람들은 대개 범죄, 재난, 사고 등의 사회적 위협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마을을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3년 안전행정부가 우범지역 CCTV 설치, 범죄예방, 급경사 골목길 난간대 설치, 교통사고 유발 장애물 제거 등의 사업을 위해 10개 지역을 선정한 사업 이름도 '안심마을' 시범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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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안심동 안심마을 지도 대구 안심마을의 공동체 조직을 그려 놓은 마을 지도 |
| ⓒ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
안심마을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사람들의 기억마다 다르다. 2003년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안심 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아띠'라고 이름 붙여진 어린이도서관이 문을 연 2008년이 중요한 시작점이었다는 사람도 있다. 한사랑 어린이집은 안심마을을 특징 짓는 발달장애인 사업이 본격화된 곳이고, 광역시라지만 변두리라 제대로 된 도서관이나 서점이 없을 때 아띠는 공동체적 연결망을 만드는 거점이 됐다.
안심마을은 행정이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일사불란하게 계획해 만들어진 공동체는 아니다. 뜻이 있는 부모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도서관을 열고 사서 역할도 맡다 보니, 비슷한 모임들이 조금씩, 꾸준히 만들어졌다. 주민들이 카페도 열어보고 공동육아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방과 후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으니 마을 방과후 학교도 만들었다. 행정이 지원하는 사회연대경제나 마을공동체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안심마을에서는 벌써 이런 성격의 공동체 활동이 자라나고 있었다.
먼저 마음먹은 사람이 우선 저지르고 보는 방식이 '룰'처럼 자리 잡은 안심마을 성장기는, 그래서 누가 일목요연한 설명을 요구하면 난감하다. 우리가 숲에 산다고 숲의 기원과 확산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도 마을의 당당한 주체"
그렇다고 안심마을의 특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커뮤니티 케어, 즉 공동체 돌봄이나 통합 돌봄을 설명할 때, 안심마을의 사례는 빠지지 않는다. 안심마을의 돌봄은 돌봄이나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행정과 공동체가 단순히 돕는 개념이 아니라, 돕는 이와 도움을 받는 이의 끊임없는 '순환'을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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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발달장애인 당사자 모임 대구 발달장애인들은 2022년 10월, 당사자 모임을 창립했다. |
| ⓒ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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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심마을 발달장애인 일자리 * 출처: 김영수·박남도·신미정·정현주·하윤주. 2022. "통합돌봄에서 마을돌봄의 역할 현장연구". 대구시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 34쪽. |
| ⓒ 김영수 외(2022) |
아직 마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발달장애인의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안심마을에서는 발달장애인의 네트워크가 활발하게 형성되어 있다. 고립되어 있지 않고 발달장애인간의 관계,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안심마을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런 특성은 정부 사업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주로 장애 당사자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마을에서의 지원은 '관계'를 지원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지역 발달장애인들이 안심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의외의 대답이에요. ...(중략)... 뭐냐면, '동료가 있잖아요'. ...(중략)... 그냥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술 한잔 같이 할 수 있고 뭔가 저의 민낯을 다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것이 좋은 것처럼, 그들의 삶을 봤을 때 마찬가지거든요. 그들의 삶에도 동료가 있어야만 되는 거예요."(김영수 외, "통합돌봄에서 마을돌봄의 역할 현장연구" 89쪽에서 인용)
이런 연결망은 공동체의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2020년, 신천지 집회를 계기로 코로나 팬데믹이 대구에 가장 먼저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 때, 이른바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정부는 주민번호를 토대로 요일을 나눠 마스크 배급제를 시작했지만, 합법적으로 일하기 어려운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전국의 구호품이 대구로 쏟아졌지만, 발달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함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천 마스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밤을 지새우며 만든 마스크는 발달장애인만이 아니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독거노인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팬데믹이 더 크게 확산하자, 발달장애인 모임은 대구 중구 쪽방촌으로 찾아가, 구호품을 나누는 일에 나섰다.
위기의 국면에서도 그들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공동체의 당당한 성원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네트워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각종 행사와 축제들과 얽히고설켜,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렇게 안심마을은 발달장애인을 마을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되지 않는, 그냥 '안심마을 사람들'로 통칭되는 마을이 되었다. 좋은 일이라도 오래 하면 힘들고, 같이 부딪히다 보면 서로 싸우기도 하는, 그런 마을 말이다.
안심마을의 연결망
안심마을의 사례는 공동체 활동이 어떤 모습과 형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공동체를 조직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안심마을은 다양한 복지기관과 단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 사회연대경제 조직들, 로컬푸드와 마을 카페, 주민단체 등 공동체 조직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이런 조직들이 서로의 관계망을 형성하기보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안심마을에서 돌봄, 사회연대경제, 공동체 활동 등은 서로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역할 분담일 뿐이다. 물론 그렇게 분담된 역할도 명확한 경계가 있거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단체나 조직을 만들고, 서로 도우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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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심마을축제 안심마을의 축제는 여러 단체가 함께 준비하고 개최한다. |
| ⓒ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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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심마을 공동체 출처: 이형배. 2015. "도시 속 행복한 마을살이: 대구 안심마을 사례". 《국토》. 통권 제404호. 일부 수정. |
| ⓒ 손우정 |
그렇다고 이런 안심마을의 공동체 활동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다고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안심마을의 활동 역시 다른 여러 사회연대경제나 마을공동체 조직처럼, 늘 수많은 난관에 마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난관은 역시 돈, 재정적 기반의 문제다.
물가가 오르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 협동조합도 어려움에 처한다.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기업처럼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수익이 줄거나 적자가 나면 마을 일자리 역시 위협받는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여러 사업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었지만, 대출 상환이 다가오면 목이 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지역의 자산화 사업(지역 건물 등을 공동으로 매입해 마을의 공동 자산으로 만드는 일)처럼, 안심마을의 자산화 사업도 금리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공동체적 연대망과 저력으로 웬만한 위기는 손에 손잡고 헤쳐갈 수 있다고 해도, 근본적 처방은 될 수 없다. 안심마을에서 주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20여 개에 이르고 각종 주민단체나 조직은 10여 개가 있다. 그러나 각종 조직의 총회 때가 되면 "아직 안 망하나?"하는 질문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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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심마을사람들 안심마을의 네트워크인 '안심마을사람들'이 마을 공동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 ⓒ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
마을의 공동체적 관계를 기반으로 발달장애인과 함께 상품을 만들고, 이 상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메커니즘은 간혹 작동이 안 될 때가 있다. 의미가 좋더라도 냉정한 시장 경쟁을 통해 수익이 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점차 뒷전으로 밀려난다. '십시일반'에도 한계는 있다.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게, 지속 가능한 기반이 좀 더 튼튼해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는 없을까? 대상이 아니라 관계에 지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관계가 공동체를 어떻게 바꿔 나갈 수 있을까? 안심마을의 사례는 완벽한 성공 사례라고 규정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분명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마을정책 10년 임팩트 모델 현장 사례 보고서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손우정 기자는 한국마을연합 부설 한국마을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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