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노래 부르며 걷는 강바람 숲길

문운주 2025. 8. 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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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지석천은 남정리를 지나며 화순천과 몸을 합쳐 힘을 키운다.

그렇게 길고 긴 여정을 이어온 지석천은 마침내 드들강 유원지에,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지는 쉼터를 만든다.

왕버들과 배롱나무, 소나무 숲길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숲 속으로 더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곧게 솟은 소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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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천 ③]지석천 따라 걷는 역사 생태 도보 여행

[문운주 기자]

▲ 지석천 지석천은 영산강의 지류로서, 2017년에 하천 정비와 생태 복원 사업이 함께 진행된 곳이다
ⓒ 문운주
▲ 드들강 솔밭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남석리에 자리한 드들강 솔밭 유원지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는 유원지이다
ⓒ 문운주
전남 지석천은 남정리를 지나며 화순천과 몸을 합쳐 힘을 키운다. 물길은 신덕리를 지나 천암리에 이르러 도곡천과 다시 만나고, 한층 넉넉해진 물살은 신성리와 덕곡리를 거쳐 굽이친다. 그렇게 길고 긴 여정을 이어온 지석천은 마침내 드들강 유원지에,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지는 쉼터를 만든다.

그곳이 바로 나주 드들강 솔밭 유원지다. 지석천이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삼각주에 자리한 이 숲은 수백 년을 버틴 노송의 터전이다. 숲 한편에는 조선 선조 때 세워진 탁사정이 고즈넉이 서 있고, 동요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가 안성현 선생을 기리는 노래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왕버들과 배롱나무, 소나무 숲길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단순한 유원지 아닌 생태의 터전
▲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 솔밭에 건립된 안성현작곡, 김소월 시 노래비.
ⓒ 문운주
▲ 드들강 솔밭유원지 습지가 발달해 물새와 수생 생물의 터전이 된 드들강솔밭유원지
ⓒ 문운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지난 8일, 지석천을 따라 이어진 여정의 마지막으로 이곳 드들강 솔밭 유원지를 찾았다. 강바람이 살짝 스치고, 소나무 사이로 흩 뿌려진 햇살이 길 위에 조각조각 내려앉는다. 그러던 중 불쑥 나타난 <엄마야 누나야> 시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시 속 아이의 웃음소리가 강물 위에 번져 나오는 듯, 마음속에도 잔잔한 울림이 스며든다.

숲 속으로 더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곧게 솟은 소나무다. 붉은 빛 감도는 줄기,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이 강 바람과 어울려 숲을 푸른 음악처럼 울려 퍼지게 한다. 가장자리에는 왕버들이 뿌리를 강가에 드리운 채 서 있다. 세월을 지켜온 지킴이 같다.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건 작은 풀꽃들이기도 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은 소박하고, 노란 달맞이꽃은 은은히 빛을 더한다. 강가에 서면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왜가리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단순한 유원지가 아닌 살아 있는 생태의 터전이다.

문암바위, 문다성의 전설이 깃든 곳
▲ 나주 문바위 남평문씨 시조 문다성의 탄생설화와 관련된 바위
ⓒ 문운주
▲ 문암공원 팔각정자
ⓒ 문운주
솔밭 유원지에서 북동쪽으로 1.5km쯤 향하면 장연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는 남평문씨 시조인 무성공 문다성을 비롯해 문공유, 문극겸, 문유필, 문익점 등 다섯 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고즈넉한 서원 마당에 서 있노라면, 남평의 뿌리와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서원 마당을 거닐다 보면, 특히 문익점의 자취가 유독 크게 다가온다. 그는 목화를 들여와 백성들의 삶을 바꾸었다. 덕분에 우리 민족은 값싸고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백의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한층 굳힐 수 있었다.

서원을 나와 문암공원 데크로드를 오른다. 산자락에 비각 하나가 나타난다. 그 안엔 거대한 바위가 자리한다. 사람들은 이를 '문암' 혹은 '문바위'라 부른다. 앞에서 보면 높이 6m, 폭 5m의 장대한 바위. 그러나 뒤로 가면 불과 1m 남짓이다. 각도마다 얼굴이 달라져, 전설의 신비를 더한다.

조선 영조 21년, <신해보>와 <호남읍지>에 기록된 전설은 이렇다. 어느 날 현감이 장자연못 근처 바위 위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데려다 키워 글을 가르치니 총명하고 이치를 환히 깨달았다. 현감은 그에게 성을 문(文), 이름을 다성(多成)이라 지어 주었고, 아기가 발견된 바위는 문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훗날 그 아기가 바로 남평 문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지석천을 따라 걷는 길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드들강 솔밭의 숲, 문암의 전설, 장연서원의 고즈넉한 풍경은 자연과 역사가 함께 흐르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아직 살아 숨 쉬는 생태계는 이곳이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귀한 공간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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