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어려우니 고교학점제 폐지? 가능성의 문을 닫지 말자

백승진 2025. 8. 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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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불완전함은 실패가 아니라, 교육을 진화시키는 출발점이다

고교학점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고교학점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백승진 기자]

한국의 교육과정은 국가 표준 틀과 대입 체제가 긴밀하게 맞물려 발전해 왔다. 비록 '선택' 제도가 부분적으로 도입되었으나, 실제로는 입시 구조가 학생의 선택을 제약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전교생이 동일한 공통 교과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학생의 흥미와 적성보다 대학 입시의 유불리가 우선시되었다. 수업은 지식 전달에 머물렀고, 이과 학생은 '미적분·기하·과학탐구Ⅱ' 과목을 사실상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했다. 반대로 문과 학생이 미적분을 배우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진로와 적성보다 입시 효율성을 우선한 결과였다.

2015·2022 개정 교육과정은 '선택'과 '책임'을 핵심 가치로 삼아, 학생이 스스로 학업 경로를 설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이러한 교육과정 개편의 연장선에서, 제도와 현장이 함께 변화하며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과거에는 모든 학생이 동일한 과목을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배우는' 대신 '자신의 배움을 발견해 나가는' 경험이 가능해지고 있다.
▲ 중부대학교 참학력 대학연계 공동교육과정 중부대학교(총장 이정열) 학생상담센터(센터장 김혜선)에서는 충남교육청-대학-지자체 업무협약을 통해 2025학년도 1학기 참학력 대학연계 공동교육과정 강좌를 개최하였다. (반려견 미용 컷 스타일 실습)
ⓒ 중부대학교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진로·적성 기반의 과목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경제', '창의경영', '심리학', '미적분' 등을 선택해 학문의 기초를 체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대학 진학을 위한 사전 준비를 넘어, 대학에서의 학습을 즐겁고 주체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학생은 강요된 과목 대신 '드로잉' 과목을 통해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하며, 대학 진학보다는 창작의 열정에 집중한다. 뷰티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일반고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인근 특성화고의 공동교육과정 과목을 통해 실무 역량을 키우고 있다. 이처럼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와 연결된 학습 경로를 직접 설계하고, 그 안에서 배움의 의미를 찾아가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며 다양한 실천을 시도하고 있다. 전공 적합성을 고려한 과목 선택 프로그램, 학생 주도 프로젝트 수업, 생활 중심 상담, 융합형 수업과 자기주도 학습의 활성화 등은 그 대표적 사례다. 교사의 역할 또한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넘어, 학생의 진로를 함께 설계하는 멘토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과정이 교사나 학교의 편의에 따라 획일적으로 운영되거나, 학생의 실질적인 선택권이 제약되는 현실도 존재한다. 과거처럼 진로 선택을 학생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방식은, 충분한 정보와 체계적 지원 없이 오히려 학생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고교학점제가 진정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의 진로·진학 계획과 학업 경로를 함께 설계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의 자기주도적 진로 역량이 실질적으로 성장하고, 고교학점제가 지향하는 '책임 있는 교육' 역시 구현될 수 있다.

물론 고교학점제 시행 초기의 불완전함과 현장의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실제로 많은 교사와 학부모가 준비 부족, 행정 및 평가 부담, 대입 제도와의 정합성 부족을 이유로 제도의 폐지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경청할 만한 정당한 우려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정책 시행 초기의 혼란은 제도의 결함이 아니라, 보완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단기적 어려움만을 이유로 고교학점제의 방향 자체를 되돌리는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을 철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입 제도와의 정합성 회복, 학교 여건에 맞춘 유연한 운영, 교원과 행정 인력에 대한 실질적 지원 강화 등을 통해 현장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다.

과거 혁신학교 정책의 도입 과정도 유사한 궤적을 그렸다. 초기에는 교육과정의 불안정, 평가 체계의 혼란, 교원 업무의 과중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자율성과 학생 참여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행착오와 초기의 오차는 정책을 철회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보완과 확산의 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혁신학교는 '학교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해냈다.

고교학점제 역시 현재의 불완전함을 이유로 중단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우려를 개선의 자원으로 삼아 제도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변화는 완성된 상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조정을 통해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라는 말은 때때로 정책과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지만, 종종 포기와 무력화의 변명으로 쓰인다. 이상을 포기하는 순간, 정책 설계의 이유는 사라진다. 고교학점제는 완성품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설계하고 다듬어 가야 할 살아 있는 제도다. 자연 생태계가 종(種) 간 상호작용 속에서 '공진화(共進化)'를 거듭하듯, 교육정책도 시간이 쌓이고 환경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조정과 보완을 거쳐야 진화한다. 정책은 고정된 설계도가 아니라, 실행과 피드백을 통해 성장하는 유기체다.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아래 '최성보')는 최근 고교학점제 폐지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최성보는 학점제의 핵심 가치인 '책임교육'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이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종종 추가적인 행정 부담이나 형식적인 보충 수업으로 축소·왜곡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의 전면 도입에 따른 학교 현장의 혼란과 문제 제기는 현실은 제도의 무용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운영을 뒷받침할 예산·인력 지원과 세밀한 운영 지침이 부족한 실행 기반의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도가 취지를 살리며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운영비의 현실화, 지도 교사에 대한 합리적 보상 체계 마련, 학교 여건에 맞춘 유연한 운영 지침, 그리고 낙인을 방지하는 회복 중심의 지원 구조 설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최성보는 단순히 '추가 업무'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 회복과 성장의 출발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제도의 방향은 유지하되, 실행 기반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시급하다.

이러한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장의 어려움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의 취지와 실행 양상이 어긋나는 현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려운 대입 연계 과목을 억지로 배우다 뒤처진 학생에게 재도전과 대체 이수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 학생은 결국 학교 안에서 낙오하거나 사교육에 의존해 뒤처진 학업을 보충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방치된다면 학점제는 오히려 교육격차를 심화시키는 구조가 될 위험이 있다.

앞으로의 사회는 '평생 직업'의 시대에서 '평생 학습'의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범위 안에서 진로와 학업 설계 지도를 제공하고, 학습 회복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교육청과 지역사회는 학교 밖 학점 이수 체계를 마련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다층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대비한 학습권 보장의 책무이다.

이를 위해 ▲진로 전담 교사 확충 ▲학습 코칭 튜터제 도입 ▲교육청·지자체의 평생교육 연계 학교 밖 학점 이수 체계 구축 ▲최성보 운영 시 예방·보충 지도 수업(프로그램)에 대한 교원 수당 지급 ▲최성보 전담 교사제 도입 ▲미이수 기준 완화 또는 맞춤형 운영 ▲졸업 이수 학점(192학점) 대비 졸업 가능 학점 조정 등 다양한 정책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들은 교육 거버넌스가 집단 지성을 발휘해 함께 열어 갈 수 있는 변화의 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그리고 현장의 어려움만을 근거로 고교학점제를 폐지하자는 단순한 프레임에 갇힌다면, 제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 순간 우리는 미래 교육을 향해 열려 있던 가능성의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는 셈이 된다.

덧붙이는 글 | 고교학점제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이어져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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