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고 미역국 끓이던 여성의 반전, 7분짜리 영화가 던진 질문
[김성호 평론가]
개막작 중 개막작이다. 7분짜리 짤막한 단편 <가깝지만 멀리서>를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가 첫 작품으로 상영했다. 14일 저녁 목포해양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상영된 네 편의 영화 가운데서도 첫 작품으로, 또 다음날 단편모음인 '멀리뛰기' 섹션 묶음에서도 처음으로 이 영화가 틀어졌다.
너덧 편의 영화가 묶인 단편 상영에서 그 순서는 상당히 주요한 대목이다. 무엇을 먼저 틀고 무엇을 나중 트느냐에 따라 그 섹션에 대한 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하물며 영화제랴. 개막작을 영화제의 얼굴이라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편이 주력인 올해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다. 개막작 또한 네 편의 단편으로, 각기 2025년 한국에서 상당히 주목 받고 있다는 단편들을 추렸다. 이 중 어느 작품을 보기 위해 멀리서 목포까지 걸음했다는 이를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었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첫 상영으로 <가깝지만 멀리서>를 택했다는 것, 또 다음날 묶음에서도 첫 작품으로 이 영화를 틀었다는 건 프로그래머가 기대한 바가 있었다는 뜻일 테다.
<가깝지만 멀리서>는 그럴 만한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도며 탁월함을 논하자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영화가 주는 선명한 인상이, 바꿔내는 분위기가 있다는 이야기다. 단 7분 안에,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보기 전엔 이르지 못한 생각에 다다르도록 한다. 어쩌면 영화가, 또 예술이 해야 할 기본이 그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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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깝지만 멀리서 스틸컷 |
| ⓒ NR1IFF |
여자의 이름은 영란이다. 러닝타임 7분 동안 딱히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진 않지만, 시놉시스에 그렇게 적혀 있으므로 관객은 영화 바깥에서야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다. 영란은 왜 인스턴트 미역국을 집어들었을까. 그 이유가 이 영화가 필요로 한 러닝타임 안에 들었다. 영화는 첫 장면 뒤 이어졌을 이야기를 다음 장면으로부터 짐작하게 한다. 영란의 어깨엔 장을 본 봉투가 얹혔고 그 안엔 프랑스인의 바게트 마냥 한국인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대파가 우뚝 꽂혔다. 아마도 그 안에 미역 또한 들었을 것이다.
영란은 밀집한 주택가 가파른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 집으로 향한다. 흔히 달동네라 불리는 높은 동네 다닥다닥 붙은 빌라촌 어딘가에 그녀가 사는 집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들어선 집에서 영란은 요리를 한다. 미역을 씻어 불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불린 미역을 볶는다. 물을 붓고 그 위에 다진 마늘을 넣어 휘 섞는다. 함께 사온 두부도 썰어서는 굽는다. 유부에 구운 두부를 채워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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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깝지만 멀리서 스틸컷 |
| ⓒ NR1IFF |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은 아예 흔한 요리프로그램처럼 부감 쇼트로 촬영했고, 이편에선 두부를 부치고 저편에선 유부초밥을 만드는 모습을 마치 같은 시간대인 양 겹쳐 연출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연출적으로 기교를 보인 이런 장면들이 영화를 정극이라기보단 요리행위 자체, 또 젊은 여성의 일상을 매력적으로 비춘 영상으로 여기게끔 한다. 이 모두가 공들여 쌓은 장난감 탑과 같다는 사실을 영화를 보는 이는 이후에야 알게 된다.
전환은 한 순간이다. 요리가 완성되고 상 앞에 앉은 영란이 그릇을 들어 미역국을 담을 때다. 한 그릇, 또 한 그릇, 그리고 다시 한 그릇. 그녀는 한 그릇씩 미역국을 퍼 담아서 처음 두 그릇을 제 반대편에 나란히 놓는다. 그곳에 아무도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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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포스터 |
| ⓒ NR1IFF |
<가깝지만 멀리서>는 제목 그대로 '가깝지만 멀리' 있을 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날이 영란 자신의 생일인지, 아니면 건너편 누구의 생일인지를 알 수는 없겠으나, 아마도 생일이거나 그 비슷한 기념일일 것이란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미역국 외에도 두부나 유부 또한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이다. 오늘의 한국인이 그렇듯, 영란과 영란이 온 곳에 남아 있을 그 가까운 이들 또한 우리와 비슷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다. 먹거리란 재료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한국과 북한 또한 조금 다르고 많이 닮았으리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겠다.
이쯤이면 영화가 러닝타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영란이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음식을 하는 장면을 마치 별 사연 없는 소소한 일상 브이로그처럼 연출한 까닭을 알 수 있겠다. 영화가 그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쌓아올린 만큼, 그것이 무너질 때의 전환적 충격 또한 상당하다는 것. 박세암 감독이 의도한 것이 꼭 이것이었을 테다.
2024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수는 3만 명이 조금 넘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하고, 매해 많게는 수천 명, 적게는 수백 명씩 입국하는 가운데, 하나원이라 불리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3개월간의 교육 및 지원프로그램을 거쳐 남한 사회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오늘의 한국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족을 북에 두고 대부분 홀로 내려오는 탈북민들이 마주하는 고립과 단절을, 그럴 수밖에 없도록 하는 분단의 비극이 여전히 생생한 현실로 작용하는 이들의 삶을 우리는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를 떠올린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르기보다 같은 구석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우리는 충실히 알지 못한다. 아마도 관심조차 많지 않을 것이다. <가깝지만 멀리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를 돌아보도록 이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7분의 러닝타임으로 영화적 효과를 거두는 수법과 장치가 꽤나 아기자기하여서 나는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가 이를 선봉장으로 들이민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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