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자동차 길, 섬진강

이병록 2025. 8.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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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 곡성에서 광양까지 섬진강 따라

[이병록 기자]

청춘의 강, 다시 만난 섬진강 길

보성강과 합쳐진 섬진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강변은 해마다 친구들과 하룻밤 묵는 단골 자리다. 웃고 떠드는 그 시간은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나를 고등학교 시절로 데려간다. 그 시절, 압록역 부근 모래톱에서 처음 만난 섬진강. 피 끓던 사춘기였던 나는 강물보다 여학생들의 웃음소리에 더 귀가 쏠렸다. 그 강은 푸른 물빛만이 아니라 설레는 눈길과 부끄러운 웃음을 함께 품고 있었다.

서울에서 순천으로 향하던 기차 창밖으로 무심히 스쳐 가던 강. 유홍준 박물관장은 곡성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강변 옛 국도를 "우리나라에서 단연 아름다운 자동차 길"이라 했다. 한쪽에는 강, 그 옆에는 기찻길과 마을이 나란히 달리는 길이었다. 기차와 자동차의 덜컹거림, 강물의 잔물결이 함께 달리던 길을 이제 나는 두 발로 천천히 걷는다.
▲ 섬진강 기차길, 자동차길, 물길이 사이좋게 나란히 달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길
ⓒ 이병록
강 따라, 마을 따라

곡성에서 구례구역까지는 강물과 철길, 찻길이 간섭 없이 나란히 달린다. 오래된 친구 셋이 각자 이야기를 하며 걷는 듯한 풍경이다. 예전에 4대강 사업을 찬성하던 지인이 자전거로 4대강과 섬진강을 한 바퀴 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만큼 섬진강은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드문 강이다.

곡성천을 따라 기차마을을 지나 마천목 장군길에 들어선다. 침실 습지에 다다르니 '1경 일출' 안내판이 보인다. 그러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해는 이미 떠 있었다. 2경인 상선약수 퐁퐁다리는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어 홍수에도 견딘다. 다리 위에 서니 물소리가 '퐁퐁' 울린다.

심청·도깨비·두계 마을을 차례로 지나 곡성과 구례의 경계에 선 가정마을과 출렁다리에 닿는다. 이 마을은 나중에 들러 봤다. 유곡마을은 느릅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설, 한나라 은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마을 예쁜 카페에서 전화기를 충전하며 음료를 마시는데, 구례 친구 김인천이 전화를 걸어온다. "어디냐, 곧 갈게." 곧 그는 차를 몰고 와 나를 태우고 구례에 정착한 사관학교 선배 집으로 향했다.
▲ 곡성 섬진강 침실 습지와 퐁퐁 다리
ⓒ 이병록
다음 날 아침,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이 구례 장날이니 꼭 가봐야 한다."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꾼들의 외침, 흥정하는 손짓, 갓 지진 전과 막걸리 냄새가 뒤섞인다. 곡성 친구도 "살아 있는 전통장"이라 칭찬했다. 구례장은 전남에서 두 번째로 큰 전통시장이고, 인터넷으로 확인한 결과 가장 큰 곳은 순천 아랫장이다. 순천 아랫장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시장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서려 있다.

장터를 나와 문척교를 건넜다. 마을에는 '문척교 철거 반대'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현수막이 펄럭인다. 1972년에 세워진 이 다리는 섬사람이던 주민을 육지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문척'의 문과 나루 진(津)을 따 '문진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문진정에 오르니 강 위로 왜가리가 날고, 물안개가 피어난다.

시간이 11시 32분밖에 안 되었지만, 다음 식당을 기약할 수 없어 월평마을 가게에서 라면 정식을 먹는다. 옆 금평마을은 마을 형국이 거문고 모양이고, 오른편에 있는 여섯 개 바위가 거문고의 기러기발(안족)처럼 생겨 '검덜이'라 불리다 금평이 되었다고 한다.

경계와 강, 그리고 삶

길 양쪽에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 봄이면 인산인해일 듯하다. 문척면의 오봉정사는 항일과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수달 서식지를 지나면 간전교가 나온다. 문척교 이후 유일하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여전히 징검다리 하나 없이 강 양쪽 사람들이 불편하게 오간다.

섬진강 어류생태관과 소리길을 지나면 피아골 입구가 보인다. 아픈 역사를 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숙박시설과 식당이 들어서 있다. 화개장터 하늘에는 흰 구름이 피어나고, 강물은 잔잔하게 햇빛을 머금는다.

강변 마을은 곡성·광양에서는 강 오른쪽, 구례·하동에서는 왼쪽에 자리 잡았다. 같은 강이라도 터를 잡은 쪽에 따라 삶이 다르다. 걷는 중에 사촌 형에게서 전화가 와서 "순천 가다가 차비가 떨어져 걷고 있다"라고 하니 포복절도한다.

광양 다압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서 광양시로 가는 버스는 하루 서너 대뿐이고, 하동이나 화개에서 출발한다. 도 경계이지만 하동 소속 택시가 다닌다. 강을 사이에 두고 행정상은 전남 광양이지만, 생활권은 경남 하동과 얽혀 있다. 신원 회전교차로에서 섬진교만 건너면 하동이다.

통상적으로 강과 산이 경계를 만들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그 경계를 선명하게 그으며 지역감정을 부추긴다. 강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묵묵히 흐른다. 우리도 그 강처럼, 경계 너머의 삶을 품으며 흘러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영암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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