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집안에서 연 '광복 잔치', 이게 말이 되나요?
[서부원 기자]
광복절 80주년을 뜻깊게 보내고 싶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여름방학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전북 고창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1년에 서너 차례의 답사를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탐구하는 역사 동아리다. 때가 때이니만큼 이번 주제는 '광복 후 친일파들의 행적'으로 잡았다.
전북 고창에선 친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세 명의 문제적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친일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찬반이 확연히 갈려 늘 유야무야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광복 후의 공적도 고려해야 한다거나, 친일하지 않았다면 탁월한 재능은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가 전자에 해당하고, 고은 시인이 '시의 정부(政府)'라며 극찬한 미당 서정주가 후자의 예다. 두 사람의 생가는 걸어서도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둘은 고창군을 넘어 전북특별자치도가 자랑하는 대표적 역사 인물이다.
둘은 논쟁이 곧 공부인 역사 수업의 자료로 손색이 없다. 모름지기 역사 공부란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있는 탐구와 논쟁을 통해 자신의 논리와 견해를 수립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곳 고창보다 광복절 80주년에 걸맞은 시의적절한 장소를 찾긴 어렵다.
아이들이 그들의 생가에서 찬반 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토론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예습 자료는 인터넷 등에 이미 차고도 넘친다. 교과서는 물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그들의 공과를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인촌 김성수의 생가에선 광복절 80주년 행사 준비로 북적였다. 사흘간의 연휴에다 연이은 폭염 탓에 우리 말곤 찾는 이가 아무도 없을 거라는 예상은 착각이었다. 안채 마당엔 공연을 위한 무대가 설치되었고,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찬반 토론은커녕 간단한 설명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피해 가까스로 윗집 안채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는 게 전부였다. 무엇보다도 행사 준비로 구슬땀을 흘리는 그들 앞에서 김성수의 친일 행적 등 과오에 대해 언급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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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촌 생가 입구에 내걸린 '광복 잔치' 현수막. '건국 77주년'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그 뒤로 인촌 김성수와 수당 김연수의 행적을 맹목적으로 미화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
| ⓒ 서부원 |
생가 입구와 안채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내걸렸다. 눈썰미 좋은 한 아이가 '해방 80주년' 뒤에 굳이 '건국 77주년'을 이어 붙인 의도가 무엇인지 물었다. 답변 대신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의 이름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들 중엔 인촌과 자유를 앞세운 단체들이 많았다.
애써 '건국절'을 강조하려는 듯해 뒷맛이 개운찮았지만, 더욱 황당한 건 하필 친일 논란이 여전한 이곳에서 '광복 잔치'를 벌인다는 점이다. 주관 기관이 배포한 소책자에는 인촌 김성수를 '대한민국 건국 원훈'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가 건국에 으뜸이 되는 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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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를 소개하는 소책자들이 인촌 생가의 건물마다 꽂혀 있다. 인촌 김성수의 생애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한 아이는 흡사 '종교 교리서' 같다고 말했다. |
| ⓒ 서부원 |
아전인수격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촌의 정치, 사상적 계승자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인륜적 제도와 민주공화국의 틀을 만든 정치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해방 후 토지개혁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에 이르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김일성 저리 가라다.
그의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김일성까지 끌어들인 대목도 나온다. 민족의 영원한 스승인 그를 친일파로 내모는 파렴치한 행위의 배후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끊어 놓으려는 김일성 집단의 음모가 있다는 거다. 극우 반공주의자로 잘 알려진 이철승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다는 화려한 이력으로도 그의 친일 논란을 잠재울 순 없다. 누구든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받는 게 옳다. 아이들조차 그의 생가에서 벌이는 '광복 잔치'가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친일 논란을 숨기기 위한 몸부림으로 여겨질 뿐이라고 말했다.
뼈아픈 교훈 증명하는 역사의 현장
하물며, 이곳은 그의 친동생인 수당 김연수의 생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만주국 명예 총영사까지 역임한, 대표적인 친일 기업인이다. 노골적인 친일 행각을 벌인 그는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가장 먼저 체포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생가 입구 안내판에는 수당 김연수를 '근대 공업화의 선구자요, 민족 자본 육성의 수범자'로 소개하고 있다. '공사(公事)에 헌신하여 우리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찬사까지 덧붙였다. 스스로 매판 자본가였다고 실토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곡학아세와 아첨이 놀랍기만 하다.
인촌과 수당이 나고 자란 이곳은 '역사적 성찰'의 공간이 되어야지, '광복 잔치'를 벌일 곳이 아니다. 거칠게 말해서, 이곳은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증명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잔치'라는 말이 독립운동에 대한 조롱처럼 들린다.
"탈이념도 좋고 실용도 좋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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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 삼아 박관현 열사의 생가에 들렀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동아리 선배가 열사의 동상 앞에서 그의 불꽃 같았던 생애에 대해 후배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
| ⓒ 서부원 |
그는 자신의 출세와 세속적 성공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시민들 앞에서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그의 사자후는 그에게 '민주화의 새벽 기관차'라는 별칭을 선사했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이름은 후세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비록 시대는 다를지언정 공동체를 위한 그의 헌신과 불꽃 같은 생애는 오로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했던 친일파들의 비루한 삶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이들은 '청년의 길'이 새겨진 열사의 동상 곁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인촌과 수당을 반면교사 삼으려는 뜻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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