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복 자결한 서울농대생 김상진 열사

김삼웅 2025. 8. 15. 22: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열전 19] "이 조국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바라옵나니"

[김삼웅 기자]

▲ 시사회 안병권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1975, 김상진'의 포스터 모습
ⓒ 김상진열사기념사업회
김상진 열사는 1949년 11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혜화초등학교를 거쳐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성고등학교에 이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과에 입학, 군에 입대하여 제대하고 1974년 2학기에 복학했다. 그리고 1975년 4월 11일 농과대학 교정에서 있었던 학생들의 자유성토대회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할복자결, 서울의대 병원으로 이송도중 절명하였다.

11시 조금 지나서 자유성토대회를 벌였다. 11시 20분경 김상진 열사가 성토대회 세 번째 연사로 등장했다. 열사는 이때 신사복 바지에 흰 샤쓰를 입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침착한 태도의 열사는 정열적인 어조로 학내외 문제를 설명한 뒤 죽음을 택하게 된 '양심선언문'을 읽어나갔다. (주석 1)

그의 사후 발견된 유품 속에서 총장과 학장에 보내는 유서에서 ① 구속학생의 조속한 석방 및 희생자 복귀 문제 ② 학원의 자유화 ③ 개정 학칙 문제, 이상 3개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학원 내의 불행한 사태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 하였다.

유품에는 또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이 있었다. "죽음으로서 바라옵나니, 이 조국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바라옵나니, 국민된 양심으로서 진실로 진실로 엎드려 바라옵나니, 더 이상의 혼란이 오지 않도록 숭고한 결단을 내려 주시길 바라옵니다." 라고 퇴진을 촉구했다.
▲ 시사회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열린 안병권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1975, 김상진'의 시사회에서 나온 김상진 열사의 육성 녹음이 실린 화면
ⓒ 김상진열사기념사업회
김상진 열사의 <양심선언문>이다.

양심선언문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두움이 짙게 덥힌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휴강의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우리들은 반응 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 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진의 결의로 진격하자. 민족사의 새날은 밝아오고 있다. 그 누가 이 날의 공포와 혼란에 노략질당하길 바라겠는가. 우리 대한 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후퇴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며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1975. 4. 11.
서울농대 축산과 4년.
김 상 진. (주석 2)

김상진 열사의 장례식은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거행되지 못하고, 1980년 민주의 봄이 왔을 때 수원 캠퍼스와 관악캠퍼스에서 유족과 선후배,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아아, 김상진'이라는 조시의 앞부분이다.

기인 겨울
얼음 뚫고 흐르는 맑은 한 줄기
시냇물 소리여
그대 죽음이여

여윈 나뭇가지 마다
눈보라에도 움트는 저 애잔한
푸르름이여
검은 총구에 꽂혀진
한 떨기 붉은 철쭉꽃의 눈부심이여

두려움에 얼어붙은 가슴을 찢어
선혈로 들끓게 함이여
돌이 된 피를 칼로 쳐
먼 하늘 말씀의 폭풍으로 가득히 채움이여
탄식마저 성난 파도 되어
잿빛 거리로 거리로 휩쓸어 오게 함이여
그대 죽음이여.

주석
1> 서울대 민주열사후보사업위원회 편, <산 자여 따르라>, '김상진 열사', 222쪽, 거름, 1984.
2> 앞의 책, 22~2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