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쪄 죽을라…양산 쓰는 ‘상남자’들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지유진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jyujin1115@korea.ac.kr), 박환희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phh1222@daum.net), 양유라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diddbfk1@naver.com) 2025. 8.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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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모두의 여름 필수품

# 직장인 김대안 씨(34)는 최근 양산을 하나 장만했다. 35도를 넘는 강렬한 더위와, 피부가 타들어갈 것 같은 햇빛을 피하려는 방편이다. 김 씨는 처음에 구입을 망설였다. 양산은 여성의 전유물이란 선입견이 컸기 때문. 꽃무늬에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쓰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니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고민이 커지자 김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주변에 의견을 구했다. ‘하남자냐’ ‘남자가 왜 양산을 쓰느냐’와 같은 답이 돌아올 것이란 예측과 달리 긍정 반응이 주를 이뤘다. 오히려 이미 쓰고 다닌다며 양산을 추천하는 이가 더 많았다. 양산 모습도 김 씨 생각과는 달랐다. 남성용 양산 대다수가 무채색 계열의 ‘튀지 않는’ 제품. 고민이 사라진 김 씨는 바로 양산을 사들였다.

중년 여성 전유물로 취급받던 양산의 입지가 달라졌다. 체감 온도 40도에 육박하는 극한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너도나도 찾는 여름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양산을 아예 찾지 않던 남성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양산을 찾기 시작한 게 달라진 트렌드다. ‘남자가 양산 쓰면 꼴불견’이라는 일부 사회적 인식에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유통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남성 취향에 맞춘 무채색 양산은 물론, 양산과 우산 기능을 모두 갖춘 ‘우양산’까지 선보이며 유행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양산’을 쓰는 남성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매일 이어지는 극한 폭염을 버티지 못한 이들이 양산을 대거 사들였다. (연합뉴스)
남성용 양산 검색량·거래액 폭증

더위 앞에 ‘남자 자존심’ 없다

양산의 인기는 숫자로 나타난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7월 1일부터 29일까지 양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3%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은 60%, 현대백화점은 47% 증가했다.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양산을 찾는 이가 많아진 덕분이다.

최근 양산의 인기를 견인하는 소비자층은 전통 양산 소비층인 여성이 아니다. 다름 아닌 ‘남성’이다. ‘남자가 양산을 쓰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인식 때문에 사용을 꺼리던 과거와 달리, 더위를 피해 양산을 쓰는 남성 숫자가 증가세를 띤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올해 7월 남성 고객의 양산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83% 급증했다. 남성 패션 플랫폼 ‘4910’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최근 2개월간(6월 1일~7월 29일) 양산 검색량과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467%, 954% 증가했다. 종합 쇼핑몰 LF몰에서 남성 양산 검색량은 전년보다 14배 늘어났다. 대표 제품인 ‘닥스 남성 우양산’의 경우 남성 구매량이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LF 관계자는 “양산이 더 이상 특정 연령대나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남녀노소가 즐겨 사용하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밝은색 계통 색깔과 레이스가 일색이던 양산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남성 구매자를 고려해 ‘깔끔한’ ‘남성용’ 등의 수식어를 사용한 제품이 늘었고, 캐릭터를 넣은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 29CM에선 6월 1일~7월 13일 동안 암막우산·경량양산·UV차단 양산 등 우양산 관련 실용 키워드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급증했다.

양산 수요 급증에 따라 유통가도 대응에 나섰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에서 팝업스토어를 통해 초경량 우양산 모델 20여종을 선보였다. 다이소는 ‘UV 차단용품 기획전’을 통해 다양한 우양산을 판매했으며 대부분 매장에서 품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LF가 운영하는 닥스 액세서리는 양산 디자인 스타일 수를 전년 대비 18% 늘렸다. 과거 레이스나 자수를 활용한 화려한 디자인의 양산을 선보였지만, 최근에는 귀여움을 강조한 닥스베어 그래픽, 고급스러운 ‘DD’ 패턴 등 다양한 연령대의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내세우고 있다.

남성 양산 인기 배경에는

극한 더위와 자기관리

한때 젊은 여성에게조차 외면받던 양산이 남성 사이서 ‘핫템’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극한 더위와 자기관리 열풍이 자리한다.

올해 여름 이상기후가 심해지면서 한국은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극한 폭염에 시달리는 중이다. 이례적인 더위 앞에서 자존심보다는 ‘생존’을 택한 남성들이 양산을 찾기 시작한 것. 실제로 양산은 체감 온도를 낮춰주는 효과가 상당하다. 서울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양산을 사용할 경우 체감 온도가 최대 10도 낮아진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양산은 직사광선을 차단해 체감 온도를 평균 7도가량 낮춰주고, 자외선 차단 지수(UPF)가 50 이상인 제품은 98% 이상의 자외선 차단율을 갖췄다고 안내한다.

‘피부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한몫했다. 그동안 양산의 주 기능인 자외선 차단은 여성 소비자만의 관심사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미백·노화 방지·잡티 예방 등 피부 관리에 대한 남성 관심이 증가하면서 양산을 찾는 남성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진단이다. CJ올리브영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자체 조사 결과, 남성 10명 중 9명이 “자기관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자기관리 지출 비용은 월평균 약 23만원인데 이 가운데 약 7만원을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성철 가톨릭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남성도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진 이후로 핸드백, 화장품, 립밤 등 과거 여성 전용으로 여겨졌던 제품을 남성들이 쓰기 시작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자외선 차단 목적으로 양산을 찾는 남성도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산 인기 계속될까

더위 꺾이지 않는 한 쭉

전문가들은 남성 소비자 사이서 양산의 인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한 폭염이 일상화된 데다, 자기관리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 숫자가 계속 증가하는 덕분이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인식은 사라지고, 남성이 양산을 쓰는 게 당연한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비 문화는 시대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35도가 넘는 더위가 일상화되고, 남성들의 피부 관리가 당연시되는 시대다. 남성 양산 사용은 일반적인 소비 문화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남성이 오프라인에서 양산을 구매할 때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구매가 가능해지면서 소비가 더욱 확대됐다. 과거 손 선풍기처럼 양산도 여름철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장성철 교수의 진단이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지유진·박환희·양유라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2호 (2025.08.13~08.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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