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모자 꼭 써야만 하나 [정현권의 감성골프]

새벽에 잠자는 아내를 깨우는 발칙한 도발을 범하지 않는 선에서 패션 점검이다. 최종 체크 포인트는 모자이다.
상하의 디자인∙컬러와 조화를 이루는지 매의 눈으로 훑어보고는 내 두상에 집중한다. 언제부턴가 자꾸 모자에 신경이 쓰인다. 여러 모자를 번갈아 쓰고 벗는다.
“골프장에서 모자를 꼭 써야만 하나?” 동반자가 티 샷을 날리고 모자를 벗더니 툭 내뱉었다.
덥다고 말하기에 같은 조건 아니냐며 동반자들이 내몰았다. 모자 쓰고 스윙 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부연 설명에도 설득력이 없었다.
얼굴형이 모자랑 안 어울리는 데다 내내 머리가 눌려 헤어 스타일을 망친다고 결국 실토했다. 모자가 그를 번뇌에 빠뜨린 주범이었다.
골프(특히 회원제)는 기본적으로 매너와 단정한 복장을 요구한다. 민소매 티, 런닝, 청바지,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 등은 곤란하다.

모자 착용이 필수는 아니지만 골프장마다 드레스 코드가 달라 일단 알아는 보고 가야 한다. 골프 모자 착용은 안전과 패션 때문이다.
모자는 직사광선 특히 자외선을 차단해 눈과 피부를 보호한다. 모자 챙은 눈을 가리는 파수꾼이다.
안전사고도 막아준다. 예측 불가능한 곳에서 날아드는 공이나 물체로부터 사고를 줄인다. 실제 얼굴 쪽에 날아드는 공이 모자 챙에 맞아 빗겨 나가기도 한다.
타구 사고에서 모자 미착용은 보험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본인으로선 최대한 안전을 도모했음을 주장해야 유리하다. 간혹 캐디가 모자를 벗더라도 진행 중에는 쓰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모자 하나로도 멋을 뽐낼 수 있다. 머리를 단순히 모자 쓰는 도구에 머물지 않고 자신감과 미적 감각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통로이다.
내면을 외부에 표출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머리 위 작은 챙이 그 아래 표정을 더욱 자유롭고 멋스럽게 완성해 평범한 하루를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승화시킨다.

페인 스튜어트는 전통 영국 의상에 베레모를 매치해 독특한 패션감각을 뽐냈다. 예스퍼 파네빅은 처음 그린 라인을 잘 읽으려고 모자 챙을 까뒤집어 썼다. 화제가 되자 아예 이런 스타일 모자가 나왔다.
반대로 긴 금발을 휘날린 전설적인 선수도 많다. 도쿄올림픽(2021년) 때에 로리 맥길로이는 모자 없이 플레이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머리 사이즈가 작아 나이키에서 맞춤형 모자를 제공받는다고 밝혔다. 일반 사이즈로 만든 팀 모자는 그에게 너무 컸다. 모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는데 프레지던츠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닉 팔도도 거의 모자 없이 경기했고 아놀드 파머는 투어 대부분을 모자 없이 보냈다. 필드의 악동 존 댈리도 초기에는 모자를 쓰지 않았다.
필 미켈슨도 마찬가지였지만 스폰서들이 오래 내버려두지 않았다. 프로 선수에게 모자는 엄청난 스폰서 계약금을 보장한다.
모자는 다양하지만 보통 햇(hat)으로 표현한다. 볼캡형이 가장 흔하다. 한국인 두상에 가장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만국 공통으로 통한다.
윗부분 헝겊이 두피를 둘러싸 자외선을 차단한다. 앞 챙은 직사광선은 물론 날아오는 공에서 눈을 보호한다. 간혹 사이즈 조절 장치가 없어 고를 때 유의해야 한다.
일명 벙거지 모자로 불리는 버킷햇형은 전체를 챙이 둘러싸기에 자외선과 비를 차단하는 데에 도움된다. 하지만 사이즈를 잘못 고르면 답답하거나 헐렁해 선택에 주의를 요한다.
썬캡형도 인기이다. 휴대하기 쉽고 윗부분이 뚫려 땀이나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한다. 단순하면서도 패션성이 있어 여성들이 선호한다. 직사광선이 정수리에 노출되는 약점이 있다.

일본 골프장 식당에서는 반드시 모자를 벗는다. 우리는 모자를 쓰고 자유롭게 식사하기도 하지만 일본에선 무례한 행동이다.
조용하고 단정한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모자는 걸이에 걸고 장갑도 식탁 위 대신 호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썬 글라스도 벗는다.
호주 골프장에서 모자로 인해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일행 중 대머리인 동반자가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모자를 쓰고 식사했다.
매니저가 다가와서 모자를 벗어 달라고 요청했다. 당사자는 주위에 혐오감을 준다며 항변했다. 이에 매니저는 규정에 따라 식당은 물론 야외 테라스에서도 남성은 모자를 벗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일행이 “미안하다(I’m Sorry)”라고 사과해 해프닝은 끝났다. 모자가 패션 장식으로서 여성에게는 허용된다는 매니저 설명도 있었다.
같은 모자를 두고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관점이 달라 의아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엄청 시끄러웠을 것이다.
모자는 골프 장비의 일부이면서 미적 도구이자 때론 의관으로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무엇보다 라운드 내내 위험에서 몸을 보호한다.
18홀을 마치고 모자를 벗어 정중하고 즐겁게 인사를 나눈 뒤 그린을 빠져 나온다. “모자에는 손을 빨리 대고 지갑에는 천천히 대라.”(서양 속담)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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