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은 왜 기생집에서 모였나? 대담했던 여인들
[조종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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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한 조선 기생들 |
| ⓒ <군산 해어화 100년> |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직업은 학생, 교사, 간호사, 회사원, 종교인, 기생, 이발업, 재봉업에서 평범한 주부까지 다양하다. 지난 2018년 3월 1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독립운동은 애국지사만이 아니라 상인들은 철시 운동을 벌였고, 나무꾼, 기생, 맹인, 광부들까지 앞장서 참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3.1운동 당시 많은 기생이 만세 시위에 앞장서 참여했다. 옥고를 치른 기생도 많았다. 그들은 국채보상운동 때(1907)도 패물을 내놓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독립단체 정보원으로 활동하거나 독립군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각종 출판물과 박물관, 기념관 등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군산에서 일어난 광복회원 '우리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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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회원 우리견(본명 '우재룡') 체포 소식 전하는 1921년 6월 11일 치 <동아일보> 기사 |
| ⓒ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 |
"장승원(張承遠)을 총살한 광복회원 우리견(光復會員 禹利見)
최근에 군산 지방에서 운동 중 4년만에 경기 경찰부에 체포" - (현대어로 수정)
1921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 제목이다. 기록에 따르면 '광복회'는 1915년 대구에서 창립된 '무장투쟁 항일결사체'였다. 회원은 200여 명. 그들은 친일파 처단, 일본 헌병대 공격, 현금 수송차 탈취, 일본인 금광 습격 등의 무장 투쟁을 펼쳤다. 1916년에는 각 도와 만주에까지 지부를 설치하는 등 전국에 조직망을 갖춰 3.1운동과 의열단 창단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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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재룡 선생 |
| ⓒ 대구경북연구원,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 도운 조선 기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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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광복회, 독립전쟁을 이끌다> 표지 |
| ⓒ 대구경북연구원,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
"광복회원으로, 유일한 여성 회원이지만 잊혀진 인물이 있다. 바로 경성(서울)의 어재하(魚在河)이다. 비록 기녀의 신분이지만 200여 명의 회원 가운데 나름의 역할로 일제 재판 기록에 등장한다.(중략) 어재하의 인사동 집과 어재하와 관련 있는 남대문 밖 남문여관은 광복회원들이 모이는 장소로 활용된 점은 예사롭지 않다.(중략)"
"어재하처럼 오송월(吳松月)과 강국향(姜菊香)도 기생이지만 광복회원의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한 여성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오송월 역시 어재하처럼 권영만의 예심신문 조서 등을 통해 등장한다. 경성의 종로통 청년회관 뒤의 오송월 집은 광복회원의 거처 겸 연락 장소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중략)"
기생 어재하는 1894년생으로 추정만 할 뿐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재판 기록과 증언, 단서 등을 통해 그의 광복회 활동은 평가 받을 만하다고 책에 적혀 있다. 1917년 9월(음력) 광복회 지휘장 우재룡이 박상진 총사령과 만주에서 온 손일민과 충청지부 소속 장두환 등이 모였음이 확인되는 등 서울 인사동 어재하의 집이 광복회원들의 활동 거점이었고 남문여관은 광복회원들이 모이는 비밀 장소로 사용됐다는 것.
어재하 집은 만주로 떠나는 백야 김좌진 장군의 송별 장소가 되기도 했다. 김재풍의 <호석수기>에는 "만주에 양병 학교를 건립하여 전사를 양성키로 백방으로 운동하던 중 동년(1917) 8월경 경성 남문 밖 남문여관 어재하 방에서 김좌진과 모임을 갖고 6만 원을 최준에게 의뢰하고, 여비 약간은 어재하가 제공하여 김좌진을 만주로 보내 양병학교 경영을 착수케 하고 전별시(餞別詩) 한 수씩을 지었다"라고 적혀 있다.
오송월 집에서도 광복회 박상진 총사령과 우재룡, 권영만 지휘장, 김동호 강원도 지부장 등 핵심 간부가 자주 모였단다. 이는 비밀 유지가 보장돼야 가능했을 것이니 이곳도 어재화의 집처럼 비밀 회합을 위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오송월도 광복회 회원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신변 안전과 비밀을 지킴으로써 그 집은 안전한 공간으로 애용됐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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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 강국향, 형사 최기배, 김병순 세 사람이 창평에 머물고 있던 우재룡을 택시에 태워 군산까지 안전하게 안내했다는 대목(붉은 줄) |
| ⓒ <우재룡 백산실기> 발췌 |
군산에 도착한 우재룡 일행은 한호예기조합에 근거를 두고 활동한다. 최기배와 김병순은 일제 경찰 신분으로 광복회에 포섭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에 도움을 준다. 두 경찰은 우재룡 일행이 지역 부호들을 만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가 하면 중국 상해에서 광복회로 전달되는 무기 반입을 돕는 등 회원들이 전북 지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강국향이 비밀 장소 제공과 연락 거점 역할, 고등계 형사와의 만남 주선 등 광복회 단원들의 독립자금 모금 활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일조했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재룡이 창평의 박홍주 집에 머물고 있을 때도 강국향은 최기배, 김병순 형사와 함께 차를 타고 달려가 우재룡을 태워 군산까지 안전하게 안내했다는 것.
우재룡의 <백산실기(白山實記)>에는 그가 3·1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를 시도할 때, 권영만, 이재환, 안종운, 소진형, 임계현 등과 군산에 도착, 한호예기조합 기생 강국향을 만난 사연이 적혀 있다. 강국향은 의(義)를 실천한 기생, 즉 한국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이자 의기(義妓)로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참고문헌]
<광복회, 독립전쟁을 이끌다>(2021), 디지털달성문화대전, 디지털군산문화대전,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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