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준으로 성장한 중국영화? 내실은 '민망'할 따름
김성호 평론가
한때 애정했던 무엇이 추해져가는 과정을 보는 건 씁쓸한 일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때로는 배우가, 때로는 감독이, 또 때로는 하나의 영화계가 몰락하고 추해진다. 흥하면 망하고 성하면 쇠하는 것이 인간사의 필연이라지만, 흥하고 성한 것을 기억하는 이에게 망하고 쇠한 모습은 애써 고개를 돌려 보지 않고 싶은 모습일 테다.
안타깝게도 희망은 늘 현실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불행히도 한때 잘 나갔던 이의 몰락을, 그 누추하고 비참한 현재를 수시로 목격한다. 누군가는 그 몰락을 잘 갈무리하지만, 또 누구는 몰락을 인정치 못하고 발버둥쳐 참담함을 더욱 키우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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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스 헌트 스틸컷 |
| ⓒ 다자인소프트 |
중국과 중국에 반환된 홍콩 영화계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홍콩영화계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할리우드에 잠식되지 않고 제 색깔을 피워낸 대표적인 사례로써 전성기를 맞이했다. 무술과 액션, 누아르 등이 대표주자로, 그에 힘입어 코미디, 로맨스,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이 제작돼 극장에 내걸렸다. 부족한 내수를 보충하는 수출 또한 활발해서 한국 등 주변국에 홍콩영화가 퍼져나가는 속도 또한 대단했다.
성룡, 이연걸, 주윤발, 장국영, 장만옥, 임청하, 왕조현, 유덕화, 주성치, 곽부성, 양조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세계적 스타가 즐비했던 것이 이 시절 홍콩영화다. 서극, 오우삼, 왕가위로 대표되는 감독 또한 대단한 수준이어서 사람들은 홍콩영화 전성시대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어왔던 터다. 그러나 오늘은? 홍콩영화는 할리우드에 비교우위를 아주 작은 곳에서도 갖지 못했다. 거장이라 부를 이도 더는 배출되지 않는다.
중국영화는 다소 흥미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있다. 적어도 외연적 측면에서 할리우드는 더는 세계 영화계의 독보적 강자가 아니다. 한때나마 유럽, 인도, 한국, 홍콩, 일본 등을 모두 간신히 생명만 붙어 있는 군소 영화판으로 여기게 했던 할리우드 작품군이 흥행기록면에선 중국 영화들과 치열하게 겨루는 모양새다. 이를테면 2021년 <장진호>는 9억 달러 넘는 매출로 세계 흥행순위 2위로 기록됐고, 올해엔 <너자2>가 일찌감치 3억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세계 흥행순위 1위로 독주하고 있다. 중국영화의 질주는 찰리우드(China+Hollywood)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영화산업에 있어 중국이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생태계를 구축하리란 기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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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스 헌트 스틸컷 |
| ⓒ 다자인소프트 |
<폭스헌트>는 중국, 또 홍콩영화의 오늘을 새삼 상기하게 한다. 상당한 자금을 들여 프랑스에서 현지 로케이션을 하고, 올가 쿠릴렌코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배우까지 캐스팅한 대작이란 점에서 이 시대 중국과 홍콩영화의 주목할 만한 도전이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엔 올가 쿠릴렌코 외에도 양조위가 출연하는데, 그는 앞에 언급한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홍콩영화계의 별이 아닌가. <중경삼림>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색, 계> <무간도> 시리즈 등 그가 출연한 명작이 수두룩하다.
영화는 한국의 <베를린>과 <공공의 적>, 나아가 <범죄도시> 시리즈가 쌓아올린 성취를 오늘의 중국영화가 총력을 기울여 따라잡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명성 높은 스타를 캐스팅하고 해외 로케이션에 아낌없이 자본을 투입한 게 그 시작이며, 영화의 형식 또한 정통 형사물과 범죄물의 외연을 갖고 있는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 영화계 내에서만큼은 스타라 불러도 좋을 단혁굉이 주연을 맡아 악역인 양조위, 올가 쿠릴렌코 등 해외, 또 옛 인물들에 대응토록 했다.
이야기는 중국 경제범죄수사대 특수작전팀 '폭스 헌트'가 유사수신행위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돈세탁해 프랑스로 빼돌린 다이이첸(양조위 분)을 쫓는 이야기다. 빼돌린 불법자금만도 174억8000만 위안, 한국돈으로 3조원이 넘는 액수라 과연 중국의 규모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으로 치자면 역대 최악의 사기범 조희팔의 피해 추산액 8조원과 그가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2조원이 비슷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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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스 헌트 스틸컷 |
| ⓒ 다자인소프트 |
문제는 <폭스 헌트>가 너무 착실하다는 데 있다. 범인을 쫓는 열혈경찰들과 프랑스 형사들이 처음엔 갈등을 빚다 마침내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부터,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마주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 선과 악을 나누는 명확하고 전형적인 경계까지가 하나하나 그렇다. 악당에겐 이유가 허용되지 않고 그저 파렴치한 악한으로 묘사된다. 수 틀리면 제게 충성하던 여자까지 잔혹하게 살해하는 악당은 겉모습만은 세련된 사업가처럼 포장하고 돌아다닌다. 그를 쫓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하나하나 예상 가능한 것들뿐인데, 돌아보자면 <폭스 헌트> 만의 특장점이고 승부수로 부를 만한 것이 부재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화가 시종 보여주는 중화제일의 세계관이다. 마치 나랏돈을 받아 찍은 공익광고처럼 영화는 경찰은 정의롭고 악당은 해로우며 위정자는 시민을 위하고 시민들은 국가를 신뢰한다는 시각을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속 처음 팀장이 다이이첸을 찾기 위한 핵심 정보원을 검거하는 과정부터가 그렇다. 총을 빼들고 여성 경찰을 인질로 잡은 범죄자 앞에 팀장이 다가서 제 핸드폰 화면을 내보이는 장면은 실소를 터뜨리게 할 정도다. 그가 꺼낸 전화기 화면 위엔 범죄자의 아내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녀의 애절한 울부짖음 위로 영화는 다분히 감상적이고 신파적인 음악을 깐다. 아내에 이어 아픈 노모의 모습까지 이어지는 영상에 범죄자는 마침내 총을 버리고 주저앉으니, 영화는 이를 코미디가 아닌 정극의 연출로써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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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스 헌트 포스터 |
| ⓒ 다자인소프트 |
마찬가지로 경찰이 회의를 하는 장면에서도 "이제 중국경찰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달라졌다"라거나 "기술발전과 국력 성장으로 해외로 도망간 범죄자들을 다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식의 홍보문구 못잖은 언급이 지속된다. 현실적이어야 장르적 재미가 커지는 영화 가운데서 이러한 대사는 보는 이를 절로 아연하게 한다. 무엇보다 지난 시대 홍콩영화가 도리어 현실 경찰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지적하고, 그 속에서도 업의 본질을 지켜나가는 영웅적 이들의 활약에 주목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진보가 아닌 퇴행이라 볼 밖에 없는 일이다.
<폭스 헌트>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기존 장르물의 문법을 답습하고 오늘의 중국 정부가 좋아할 법한 이야기만 거듭한다. 그 속에서 중국 영화만의 파격이며 오늘의 현실을 반영해 폐부를 찌르는 선택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거듭된 신파와 클리셰는 영화가 목표로 삼고 있는 관객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안이한지를 확인하게 한다.
<폭스 헌트>를 외연만으로 보자면 오늘날 중국의 인기배우 단혁굉이 양조위는 물론이고 올가 쿠릴렌코 같은 세계적 배우와 협업하는 자랑스런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겠다. 프랑스 파리를 가로지르며 추격전을 펼치고 세계 유수의 영화들과 마찬가지의 장르물을 비슷한 문법으로 해내는 모양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그 내실은 어디까지나 먼저 있었던 것을 비슷하게 베끼는 일이고, 오늘의 관객에게 그를 부끄럼 없이 내보이는 일이다. 시종 일관 시가를 물고 피우는 양조위의 모습 또한 전형적인데, 그가 마침내 검거돼 수갑을 찬 채 'CHINA'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힌 국적기 층계를 내려와 중국 본토로 돌아오는 장면은 지난 시대 홍콩영화에 종언을 고하고 오늘의 중화영화의 승리를 자축하는 상징적 모습처럼 읽히기까지 한다.
<폭스 헌트>는 근래 일단의 중국영화가 내수 흥행을 바탕으로 제작비를 쉽게 회수하고 큰 수익을 올리는 흐름에서 성공작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저 산업과 상품으로만 대우돼선 안 되는 예술과 작품의 측면이 여전히 강조돼야 하는 부문이 아닌가. <폭스 헌트>는 예술과 문화가 국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어떤 수준까지 격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 사례로써 기억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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