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인생사진 '핫플', 그 다리에서 수류탄 던졌던 이 사람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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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근환, 김구, 박열(왼쪽부터). 1948년 경교장에서 함께 한 모습이다. |
| ⓒ 독립기념관 |
AI가 내놓는 답이다.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인간적인 고뇌와 희생, 그리고 뜨거운 애국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이 말, 그만큼 많은 사람들 소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영화 <암살>을 통해 안옥윤 지사(전지현 역)의 삶과 마주했을 때 소감이 그랬다. 영화 <밀정>에서 격렬하게 총격전을 벌이는 그 장면으로 김상옥 지사(박희순 역)를 접했을 때도 역시 그랬다.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가 새로 내놓은 <항일로드 2000km>(필로소픽)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다. <임정로드 4000km>와 <약산로드 7000km>를 통해 중국 등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전한 바 있는 저자가 이번에 선택한 무대는 '하필', 일본이다. 앞서 중국을 무대로 했던 이야기와는 또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양근환 지사의 경우만 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일본 심장부에서 친일파를 처단한 이야기다. 양 지사와 민원식이 1921년 3월 25일 마주쳤던 그 장소, 도쿄역 호텔 2층 14호실은 202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은 지금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희미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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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근환 지사가 친일파를 처단한 도쿄역 호텔의 옛 모습. |
| ⓒ thetokyostationhotel.jp |
양 지사가 거사를 벌인 상황 역시 '훌륭한 영화 소재' 그 자체다. 자신을 유학생으로 소개하고 민원식(일제강점기에 시사신문 대표 등을 역임한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쿄역 호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양 지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독립을 부르짖는데 어떻게 국내가 평온할 수 있겠냐는 양 지사, 그 코앞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모두 폭도로 매도했다는 민원식. 거사 직전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논쟁이었다고 한다.
도쿄 한복판에서 의열단의 마지막 거사를 결행한 김지섭 지사의 삶도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책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천상 선생님의 그것. 보통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일본어를 익혀 재판소에서 일했다고 한다.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던 그 삶을 바꾼 것은 '직장 상사'가 남긴 한 장의 유서. <임꺽정> 작가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이 한일합병에 분개해 자결하면서 남긴 '여운'에 김 지사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그 후 의열단에 가입한 김 지사가 일왕 왕궁 앞에 도착한 것은 1924년 1월이었다. 일본인으로 위장했던 그의 품에는 폭탄(수류탄) 세 개가 있었다. 불심검문을 받자 폭탄 하나를 던졌다고 한다. 불발이었다. 김 지사는 왕궁 앞 이중교로 내달렸다고 한다. 다시 폭탄을 던졌지만 또 불발. 현장에서 붙잡힌 그의 법정싸움은 더 영화 같다. 김 지사는 "무죄를 선언하든지 사형에 처하든지 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실로 개나 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소. 이같은 사실은 일본 안에 있는 일반 일본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일이오. 나는 이것을 한 번 알려주고 싶었소... (중략) 다시는 (일본) 관리배들에게 속는 일 없이 우리 함께 손을 맞잡고, 세계평화를 위해 싸워주기를 기대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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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근환 지사가 친일파를 처단한 도쿄역 호텔의 현재 모습. |
| ⓒ 김종훈 |
그 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던 김 지사,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저자로서는 이중교를 마주하며 두 가지를 얻는다.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자, 동시에 그 아름다움의 역사적 여운까지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관광객이면서도, 이렇게 과거와 현재는 연결된다는 걸 경험하는 목격자도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매우 아쉬웠을지 모른다. 양근환 지사가 친일파를 처단한 도쿄역 호텔, 그 방에 머무르려 했지만 포기했기 때문이다.
"예약하기를 누르고 들어가는 순간 가격이 이렇게 나왔다. 세금 포함 355만 9784원. 그랬다. 도쿄역 호텔은 100여 년 전 그때나, 내가 답사를 진행한 2024년 세밑이나 최고급 호텔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급 호텔에 머무를 수 있는 이들은 한정적이다. 그런 곳에 친일파가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항일'의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독립운동가들이 싸운 상대는 적국이라는 추상이 아니라 최고권력자들이라는 실체였다는 걸 말이다. 숙박을 포기한 도쿄역 호텔 앞에 선 저자가 "그 날 양근환 의사는 어떤 마음으로 이 호텔에 들어간 것일까?"란 여운과 마주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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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정로드 4000km'와 '약산로드 7000km'의 저자 김종훈 기자가 새로 내놓은 책 '항일로드 2000km'. |
| ⓒ 필로소픽 |
"진짜 수학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즐거웠다."
하지만 책을 통해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엄숙함, 경건함 또는 비분강개 류의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편안함이다. 저자는 윤동주의 시비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지산 녹차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 보라고 권한다. 일본 전통 풍취를 즐길 수 있는 교쿠센안 카페나 나가사키 온천에서의 하루도 추천한다. "진짜 수학여행을 떠나자"는 프롤로그 제목, 그대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는 2000km에 이르는 여정에 대한 소감을 정리한 에필로그에도 이어진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 여행은 혼자 가도 좋고, 둘이 가도 좋고,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가면 더 귀하다"고 강조하는 정도다. 그저 "그곳에서 알고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과 잠시 마주치면 좋다는 것 뿐이다.
하나하나 '훌륭한 영화 소재'가 될 수 있는 그 삶은 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그래서 더 귀한 우리의 이야기니까.
이 책의 여운이 꽤 오래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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