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확성기 철거한 적 없어"…李정부에 "허망한 개꿈" 조롱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 조치를 “허망한 개꿈” “너절한 기만극”으로 폄하하며 남측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다시 일축했다. 김여정은 미국과도 “마주앉을 일이 없다”고 했는데, 한·미를 향한 적대적 전략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몸값 높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李정부긴장완화 조치 평가절하
앞서 군은 지난 4~5일 남측 최전방 24개소에 설치했던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고, 9일에는 북 측이 전방 일부 지역에서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는 활동이 식별됐다고 밝혔다. 이에 이 대통령도 "이렇게 상호적 조치를 통해 남북 간 대화와 소통이 조금씩 열려가길 바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북한은 9일 대남 확성기 2대만 철거했고, 그나마 1대는 곧바로 되돌려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김여정은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으며 또한 철거할 의향도 없다"며 군 당국의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가관은 군부의 발표를 받아물고 한국의 당국자들과 전문가라는 것들이 줄줄이 나서서 "화답 조치"라느니, "변화감지"라느니, "긍정적 호응"이라느니 하는 평을 달고 있는 것"이라며 "무근거한 일방적 억측이고 여론조작 놀음"이라고 주장했다.
김여정은 정부가 한·미 을지자유의방패(UFS) 연합연습을 일부 분산 조정한 것에 대해서도 "합동군사훈련 문제 역시 조정이니, 연기이니 하면서 긴장 완화에 왼심이나 쓰는 것 같이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그것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러한 잔꾀는 허망한 개꿈에 불과하며 전혀 우리의 관심을 사지 못한다"며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너절한 기만극은 이제 더는 인기가 없다"면서다.
이재명 정부가 선제적 신뢰회복 조치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꾀하려 하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 역할을 하는 김여정이 나서 대화 가능성을 차단하고 기존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노선을 재확인한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실상 국면적 화해 조치나 남북 대화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영구화하겠다는 기존 전략적 기조 재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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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적(主敵)으로 헌법 명기 예고
남북 간 관계 단절을 아예 헌법으로 명문화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김여정은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데 대해 여러 차례 밝혀왔다"며 "이 결론적인 입장과 견해는 앞으로 우리의 헌법에 고착될 것이고 그것은 매우 정당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적대적 국가로 명문화하는 이유로 ▶흡수통일 망상 헌법 명문화 ▶한·미 핵협의그룹(NCG)·정례 군사훈련 ▶북한 핵보유국 불가 주장 등을 꼽으면서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 그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적대적인 위협세력으로 표현되고 영구고착 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처럼 한국을 주적으로 명시하는 이유에 한·미 동맹과 확장억제 강화 등을 포함한 건 실제로는 미국을 향해 대화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여정은 오는 15일 미·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의 의중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은 "허황한 꿈"이라며 "우리는 미국과 마주앉을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어 "나는 이미 조미 수뇌들사이의 개인적 친분관계가 정책에 반영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과 미국이 낡은 시대의 사고방식에만 집착한다면 수뇌들사이의 만남도 미국 측의 '희망'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하여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한 건 사실상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비핵화 논의를 전제로 하는 미국과의 대화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도 미국이 비핵화 관련 입장을 바꾼다면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핵보유국 인정, 한·미 군사훈련 중단, NCG 해체와 같은 남북·북미 대화 재개의 조건을 더욱 명확하게 밝힌 담화"라며 "올해 남은 기간 북·러 동맹 강화에 집중하면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행사와 9차 당대회 준비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여정의 담화에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오늘 북 고위당국자의 담화를 통해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높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북측은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고 긴장을 낮추는 작은 행동들이 쌓여야 큰 평화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적 비난은 자제했지만 "유념하라"는 표현은 김여정이 이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데 대한 불쾌감도 묻어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실무 부처에서는 유화조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보다 분명히 밝혔다. 국방부는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축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실효적인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들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남 확성기 관련 동향은 지속적으로 확인하겠다"고 북측이 호응할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도 "지난 3년간 '강 대 강'의 남북관계를 '선 대 선'의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의연하고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며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 모두의 성의 있는 자세와 지속적인 행동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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