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끌어안은 극우, 누가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나
[김대성 기자]
|
|
| ▲ 대학생 극우단체 ‘자유대학’이 도보 행진 집회가 열린 이날 서울은 35.1도까지 치솟았다. |
| ⓒ 김대성 |
전상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음모론을 "고통을 설명하는 이론"이라 정의한다. 과거 종교는 우리가 겪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했고, 정치는 그 고통을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 종교도 정치도 사실상 그 기능을 잃었다. 그 빈자리를 음모론이 채우고 있다는 것이 전 교수의 분석이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일부 커뮤니티에 갇혀 있던 말들이 마치 정당성을 갖춘 듯 자유를 얻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악마화, 부정선거 음모론, 반북·반중·반공을 중심으로 하는 혐오 정서,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 같은 극우 담론은 더 이상 주변부의 소리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체제 수호라는 미명 아래, 국민의힘 인사 일부는 이들의 음모론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음모론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던 순간이다. 이 현상의 함의는 무엇일까. 지난 6일 전상진 교수를 만났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 우경화 생태계를 들여다보면서 제도 정치 전략으로 활용되는 음모론을 짚어본다.
|
|
| ▲ 국민의힘 8·22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윤석열 탄핵 찬성 후보가 정견발표를 시작하자, 전한길 씨는 “배신자”라고 외치며 당원들로부터 항의를 이끌어냈다. 일부 당원들은 이에 동조하며 구호를 따라 외쳤다. |
| ⓒ MBC |
"부정선거 음모론이 사실이라는 건 전한길 선생님 유튜브로 확인했어요. 전한길 선생님은 틀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전한길 선생님을 비판하는 국민의힘 사람들은 가짜 보수예요."
한국사 강사였던 전한길씨는 12·3 내란 사태 이후, '윤어게인' 스피커를 자처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에 입당했지만, 전당대회를 앞둔 당내에서는 출당 요구가 나왔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전상진 교수는 전씨와 같은 극우 유튜버의 영향력을 제도형 종교와 주술형 종교의 차이로 설명했다.
"제도형 종교는 신이 나보다 위에 있다고 인식합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라도 신이 주는 것이라면 의미를 부여하고, 그 고통을 다스릴 방법을 찾죠. 반면, 주술형 종교는 내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봅니다. 고통을 받아들이기보다 부적을 쓰고, 점을 보고, 굿을 벌이고, 치성을 들이는 등 수단이나 의례로 고통을 없애려 하죠. 내가 겪는 고통을 주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위치로 자신을 올리려는 겁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전하는 뉴스는 고통의 원인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인내해야 한다'는 인식을 줍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작당모의를 해서 자신들을 해치려 한다는 식으로 현실을 해석하거든요. 그러면 결국 그 '적'을 찾아내 제거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극우 유튜버에 빠진 사람들은 이런 주술형 종교의 심리 구조에 빠져 있다고 보여요."
|
|
| ▲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강제연행' 광우병 위협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을 든 지 1년이 되는 2009년 5월2일, 서울시내는 '계엄령'을 방불케했다. 그리고 경찰의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강제연행'으로 얼룩졌다. 이날 하루 연행자만 112명에 달했다. |
| ⓒ 최윤석 |
전상진 교수의 저서 <음모론의 시대>(2014)는 이런 배경 속에서 출간됐다. 그는 음모론 연구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2008년 대규모로 열린 촛불집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보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여권 일각에서는 촛불집회의 배후로 북한이 있다는 '배후설'을 주장한 바 있다. 전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음모론 작동 방식은 두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권력자가 통치를 위해 음모론을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에 해당해요. 둘째는 시민이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음모론을 활용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국민 먹거리에 대해 무신경하고 무책임하다고 느낄 때, 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음모론이 도구로 쓰이는 것입니다. 사회 엘리트의 조직적 무책임과 시민들의 지속적인 고통이라는 기름진 토양 위에서, 음모론이 배양되는 거죠."
공공영역이 좌절과 실망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할 때, 시민들은 스스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낀다. 그 순간, 음모론은 그들의 귀를 사로잡는 것이다.
2020년 총선 직후, 민경욱 전 의원은 트럼프 당시 미국 대선 후보의 'STOP THE STEAL' 구호를 차용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했다. 당시만 해도 그를 따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파면된 전 대통령 윤석열씨가 비상계엄 선포 배경을 부정선거 의혹으로 꼽은 이후, 이를 진실로 믿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전 교수는 이같이 평가했다.
"음모론은 패자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승리해 대통령이 됐음에도 음모론을 띄웠어요. 각종 스캔들로 수세에 몰리자,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음모론을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음모론자는 그 동기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념 윤리를 바탕으로 한 '신념형 음모론자', 그리고 음모를 통해 얻는 이익이 동기가 되는 '기회주의형 음모론자'입니다. 성공을 위해서, 좋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에 따라 음모론을 꺼내는 거죠. 윤 전 대통령은 후자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됩니다."
|
|
| ▲ 전광훈 씨는 헌법재판소가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며, 때려 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
| ⓒ MBC |
"피의자 전광훈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당직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법원을 상대로 폭력을 수반한 위력 행사를 하도록 미리 지시·명령했다."
경찰이 전씨를 폭력 사태의 배후로 의심하는 이유는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에 있었다. 영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피의자 전광훈은 사랑제일교회 청교도신학원 1기, 2기를 이수한 이OO, 윤OO을 특임전도사로 임명했다. 이후 종교적 신앙심을 이용한 가스라이팅과 금전적 지원을 통해, 자신의 말과 뜻을 맹목적으로 따르도록 심리적으로 지배했다."
이에 대해 전상진 교수는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이들은 매니키안(Manichaean)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매니키안은 세상을 명과 암, 선과 악으로 나누고 이를 아마겟돈의 전쟁처럼 여깁니다. '정권을 빼앗기면 저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거죠. 그렇게 믿어버리면, 죽임을 피하기 위한 명분에 의해 모든 폭력이 정당화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아마겟돈을 벌이고 있는 거죠."

이 설교를 듣는 신도의 상당수는 초·중·고 학생들이다. 반공주의의 망령이 극우 개신교를 통해 재생산되고, 청소년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며 사회 분열을 키우는 셈이다. 이러한 극우 개신교를 보며 전상진 교수는 이와 같이 설명했다.
"신도들 눈에는 이들이 카리스마 있는 목회자로 보이겠죠. '누구를 죽여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을 얻고요. 하지만 사역자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세상을 설명하려면 특정한 선호가 없어야 하죠. 신도들을 천당으로 인도하는 게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길을 내가 막아주겠다는 식의 전도인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겪지 않는 고통을, 마치 실제로 겪는 것처럼 느끼게 세뇌하는 것이죠."
|
|
| ▲ 김문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극우 유튜버들이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서 “이재명은 주적”이라는 발언을 했다. |
| ⓒ 유튜브 고성국TV |
이같은 미국·유럽의 극우 약진 현상에 대해 전상진 교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 <레트로토피아>를 인용하며 이렇게 분석했다.
"<레트로토피아>라는 제목에 세계 우경화의 핵심이 담겨 있어요. 우경화하는 나라들은 과거를 유토피아로 봅니다. 유럽과 미국은 19~20세기에 쌓아왔던 헤게모니의 '청구서'를 지금 받고 있는 셈입니다. 과거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들로부터 난민이 유입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과거에 느꼈던 안정감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 원인을 이민자와 이주민에게 돌립니다. 결국 '청구서를 받지 않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비전이 대중에게 먹히는 겁니다. 우리나라 정당의 우경화는 양상이 다릅니다. 국민의힘의 우경화는 정치적 산술에 따른 결과로 보여서, 퇴행하는 모습입니다."
|
|
| ▲ 집회 참가자 중 한 명은 “민주당 퇴출”을 외쳤다. |
| ⓒ 김대성 |
"정치에는 두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해 시민을 앞으로 이끄는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를 설정해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입니다. '저 악마가 설치면 우리는 끔찍한 상황에 빠질 거야'라며 악마로 지목한 타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동시에, 그 악마를 제대로 징치하지 못한 시민에게도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죠. 지금 국민의힘을 보세요.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슬로건 하나뿐입니다. '우리 가게에 오시면 맛있고 건강한 먹거리가 있습니다'가 아니라, '저 가게에서 사면 큰일 나는데, 그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한다'는 식입니다. 이런 정치가 먹히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되기 직전까지 수차례의 사법 위기를 넘겼다. 이쯤 되면 '사법리스크가 해소된 인물'로 받아들여질 법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국민의힘 인사들과 극우 스피커들은 여전히 '이재명만은 안 된다'는 정서를 끊임없이 확산시켰고, 그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피습까지 당했다.
"사실 그들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 나쁜 인물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자신들이 느끼는 고통을 쏟아낼 창구가 필요했던 거죠."
|
|
| ▲ 전상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연구실. 전 교수의 저서 <음모론의 시대>는 12·3 내란 사태 후 4쇄를 찍었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학자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시민으로서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
| ⓒ 김대성 |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게끔 해줘야 할 문화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고통스러운 이야기만 던지니까요. 과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황금기로 우리를 이끌겠다고만 하니까."
이어 전상진 교수는 "자신의 고통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찾아보라"고 권했다.
"지난 6·3 대선에서 20대 남성 74%, 30대 남성 60%가 이준석·김문수 후보를 뽑았잖아요. 이준석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 시절 들고 나온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희생양을 만들어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정치가 여전히 2030 남성들한테 통하고 있다는 겁니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면 자신이 겪는 고통의 본질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
|
| ▲ 전상진 교수의 저서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은 각각 2014년, 2018년에 출간됐다. 두 권엔 2025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
| ⓒ 문학과지성사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국의 마지막 발악, 우리가 쫄 이유 없다"... 장하준의 조언
- 물러난 특검, 당사로 집결한 국민의힘 "500만 당원 개인 정보 지킬 것"
- 권성동이 쏘아올린 '윤석열 당선무효'
- 한남동 대사관 옥상에 '붕붕'...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 "주말 집회 윤석열·김건희 비판, 전직 교사 백금렬에 무죄를"
- "김건희는 우리의 리스크가 아니라 축복" 다시 보는 충북지사의 말말말
- [단독] 윤석열 안보실, HID 있던 대북정보팀에 무인기 대원도 배치했다
- '거뒀는데 안 쓰는 세금, 지자체에 25조 있다'는 청년 의원들
- [오마이포토2025] 인사하는 전한길-김문수
- '윤석열 검찰'의 문재인 정권 수사... 결국 무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