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대 경찰관이 교제 폭력 현장서 든 생각, '제발 피해자가...'

박승일 2025. 8. 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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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가해자 처벌 강화만으론 부족, 일상 회복 위한 다양한 피해자 보호책도 필요

[박승일 기자]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교제폭력 범죄 관련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먼저 나는 심리상담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남성이자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사람의 경찰관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자살 예방에 대한 강의를 5년째 꾸준히 하고 있어 다른 경찰관보다는 신고 현장에서 피해자와 대화하는 데 조금은 나은 편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범죄는 어떤 게 있을까요. 연인 간의 교제 폭력과 집안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사건들은 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피해의 정도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 경찰청에서는 교제 폭력 선제 대응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 중 한 가지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스토킹 처벌법 등을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장에서 즉시 효력이 있는 접근금지 등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입니다.

교제 폭력에서 단순한 폭행만 있었다면 형법 제260조 1항은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입니다. 쉽게 말해 피해자의 명시적 처벌불원 의사가 있을 때는 처벌할 수 없고 면제되는 범죄라는 뜻입니다.

10명 중 9명이 화해... 경찰은 손 놓고 있을 수밖에

감히 말하겠습니다. 교제 폭력으로 현장에서 입건되어 정식으로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며칠 시간이 지난 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전에 10명 중의 9명 가까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화해를 했다", "요즘은 너무 잘해준다", "상대방이 많이 반성하고 있다", "계속 만나고 싶다"라는 등의 이유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그럼, 경찰은 어떠한 처벌도 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피해자가 다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는 스토킹처벌법이나 특수폭행 등으로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주장의 바탕에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최선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최근에도 교제 폭력 신고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당시 현장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폭행이 있었다고 상호 간에 인정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무엇일까요. 나는 피해자가 '제발 강력한 처벌을 해주세요'라고 하길 바랐습니다.

어떤 신고 현장에 출동하더라도 경찰관이 관련자들의 이야기도 듣기 전부터 무조건적인 처벌을 생각하며 가면 안 된다고 봅니다. 최소한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교제 폭력 현장에는 솔직히 무조건 처벌을 원했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마땅치 않습니다.

지난달 가정폭력 현장에서의 일입니다. 서울에서 꽤 고가의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부부간에 발생한 폭행 신고였습니다. 결혼한 지도 35년도 더 된 오래된 가정이었습니다. 경찰관들이 도착했을 때도 남편은 거실에 있는 물건을, 아내를 향해 던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경찰서로 인계되었고 신고자인 아내는 친척 집으로 갔습니다. 그때 60대 피해자 여성한테서 들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을 왜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창피해서 자식들한테도 말을 안 하고 숨겨왔는데, 이제 더는 못 참겠어요. 내가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는지 후회가 막심합니다. 그게 당연하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사실 그분에게 말은 못 했지만 '제발 이혼하세요. 저런 분이라면 앞으로도 평생 그럴 겁니다'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남성은 아내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듯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큰소리로 "무슨 말씀이세요, 어떻게 부인이 어르신 물건입니까"라며 말했었습니다. 그만큼 남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때 한참 동안 피해자인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지배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딸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전문가의 심리상담을 받은 뒤에 용기를 내서 신고했다고 했습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교제 폭력이나 가정폭력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처벌이 곧 피해자를 완전히 회복시켜 준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일선 현장에서 교제 폭력으로 가해자가 입건 되면 주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관련 내용이 보고됩니다. 그리고 교제 폭력 담당자가 피해자에 대해서 사후 모니터링을 실시합니다.

물론 정식으로 사건 접수를 안 했을 때도 담당자는 사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면 수사가 진행되는 사건과 똑같이 진행합니다. 담당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나서 어려움은 없는지 듣기도 하고 전문 심리상담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전문 상담 기관을 찾는 피해자가 극히 적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가해자 처벌만큼 피해자를 지원할 수는 없을까요?

교제 폭력 현장에 출동했을 때 여성들은 막연한 공포심과 불안감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 친구가 보복하면 어떻게 해요", "평소에는 너무도 착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 남자가 아직 좋아요"라는 말을 현장에서 많이 듣습니다. 그때 전문가의 상담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하지 못합니다. 현장 경찰관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찰서 담당자가 사후에 모니터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전문 상담 한 번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어떨까요.

최근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착된 좋은 제도가 하나 있습니다. 자살이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조치입니다. 자치단체별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주도적으로 실시하는 '행정입원'이 그 제도입니다. 국가에서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경찰에서 72시간 응급입원을 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큽니다. 먼저 지원하는 기간이 최소 3개월 정도입니다. 저는 이런 제도가 교제 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있었으면 합니다.

어떤 범죄라도 가해자를 엄하게만 처벌한다고 해서 피해자가 온전히 회복된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가해자는 경찰에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피해자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물론 그 부분을 경찰이 온전히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도 인력도 한계가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피해자 지원은 처벌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정책 축이 되어야 합니다. 상담, 법률지원, 주거, 생계 대책을 장기간 보장할 수 있고 이를 어느정도 강제로라도 연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초기 상담이 다소 강제력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피해자가 스스로 회복과 자립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봅니다.

앞으로 국회나 여성가족부 등에서도 관련해서 많은 논의가 있을 듯합니다. 부디 가해자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진짜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현장에서 만나보는 피해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마음을 다치고 아픈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보호'라는 말이 공허한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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