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3대가 의병 나간 가문이 있다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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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산동면 목동 마을 수용대 |
| ⓒ 이완우 |
섬진강의 지류인 전북 남원 요천의 상류는 백두대간과 천황지맥을 울타리 삼아 수계를 형성한다. 수많은 골짜기의 물이 요천으로 모인다. 요천의 상류는 서쪽 울타리인 천황지맥과 거의 나란히 북동에서 남서로 방향을 잡아 내려온다. 천황지맥의 동편 산기슭과 골짜기에서는 요천 건너 운봉고원을 형성하는 백두대간을 볼 수 있고, 그 너머에 지리산 주능선이 남동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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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산동면 목동 마을 풍곡에서 본 지리산 연봉 |
| ⓒ 이완우 |
지난 8일 남원 산동면 목동 마을의 역사 문화를 찾아 탐방하였다. 풍곡은 요천 가까운 목동 마을에서 북쪽으로 3km 가까이 깊은 계곡을 이루었다. 이 계곡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한때는 송이버섯이 많이 나왔다. 이 계곡에 있었다는 풍곡사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목동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임도로 2.6km 지점에 풍곡재가 있고, 충경공 김익복의 신도비와 일문칠절현인숭모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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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목동마을 수용대 단애 |
| ⓒ 이완우 |
김익복의 둘째 아들 김화(1571~1645)는 20세 무렵에 이곳 풍곡의 수용대에 누각을 세웠다. 그는 학문에 전념하여 사마 양시에 급제하고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1624년, 이괄(1587~1624)의 난 때는 의병으로 출전하였다.
이곳 수용대는 단애 아래를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줄기가 너럭바위를 돌아서 바위틈을 급한 여울로 폭포처럼 떨어져 내린다. 여울물 소리가 계곡을 가득 채운다. 무성한 소나무 숲 아래의 단애에는 수용정(水舂亭), 사마대(司馬臺)와 추모대(追慕坮)의 암각서가 있고, 너러바위에는 세이암(洗耳岩)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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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목동마을 수용대 절경 |
| ⓒ 이완우 |
풍곡의 수용대에서 바라보이는 목동 마을의 높은 곳에 요계서원 터가 있다. 이 서원은 약 300년 전 숙종 때에 이 지역 유림에서 김화, 이상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이상형(1627~1645)은 남원 둔덕방 출신으로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몽진하는 어가를 호위하였고, 남한산성에서 싸움을 독려하며 항전하였다. 이곳 요계서원에는 충경공 김익복의 손자인 김지순과 김지백을 추가 배향하였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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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목동마을 풍곡의 충경공 신도비와 일문칠절현인숭모비 |
| ⓒ 김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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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목동마을수용대재간당 |
| ⓒ 이완우 |
이곳 목동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충경공 김익복의 후손들은 향촌 사회를 교화하며 산동방과 목동방을 넘어 남원부의 정신이 될 수 있었다. 기자도 이곳 목동 마을을 방문하여 일문칠절현인숭모비를 보고 놀랐다. 이제까지 이런 장소를 몰라서 부끄럽기도 하였다. 남원 목동 마을 풍곡의 수용대 재간당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옛 선비들의 학문 정진과 충의로운 삶을 다시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 ▲ 남원목동마을수용대물결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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