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현의 어쩌다 문화] 쇼맨

“그런 거 하나 있지 않나요? 끝이 안 좋아도, 나쁜 게 섞여 있어도 너무 소중해서 버릴 수 없는 기억.”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사진)는 트럼펫 독주로 문을 연다. “때로는 당당하고 때로는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악기”(이선영 작곡가)라고 하는 트럼펫처럼 이 작품의 주인공 네블라는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성실함 끝에 결국 독재에 부역했다는 괴로움도 떨쳐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네블라는 마트에서 일하는 한국계 입양아 ‘수아’를 사진작가로 착각해 촬영을 부탁한다. 수아는 꽤 많은 돈을 건네는 네블라를 보며 대강 찍고 공돈을 벌 생각이다.
촬영이 진행되며 네블라는 무명 배우에서 독재자 대역 배우로 살아온 자신의 여정을 차곡차곡 털어놓는다. 열심히, 진심으로 살아온 삶이다. 그런데 네블라 자신은 없다. 연기자로서 네블라는 자신의 연기를 한 적이 없다. 가장 자신 있는 것은 다른 배우의 연기를 흉내 내는 것이다.
그런 삶도 ‘소중한 기억’이라는 네블라를 수아는 경멸한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보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입양한 양부모에 ‘굿걸(good girl)’ 연기를 하고, 마트에서는 자리를 비운 점장 대행 행세를 하는 수아는 네블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보기 드물게 시종일관 진지하다. 최근 뮤지컬 중에 이렇게 객석이 조용한 작품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은 2022년 초연, 2023년 재연 당시 호평을 받았고 이달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시즌 역시 매회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무대 속 네블라와 수아의 모습이 씁쓸하지만 우리네 이야기여서 아닐까.
하남현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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