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선생이 매미 박사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박성호 기자]
조선 시대 여름은 매미 소리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 기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 매미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었다(관련 기사 : 시끄럽게 우는 줄만 알았는데... 조선 선비들이 달리 본 곤충)https://omn.kr/2ercb.
맑은 이슬만 먹는 청결한 모습으로 외형적 매력을 인정받으며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선비들은 매미를 '오덕(五德)'을 지닌 덕스러운 생물로 경외했다. 그런 정서를 지닌 이들이 남긴 문학작품 속에서 매미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조선시대 시문학을 통해 조선 매미의 생태를 탐구한 결과 매미의 울음소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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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미를 관찰하고 있는 정약용 선생 AI생성 이미지 |
| ⓒ 박성호 |
어부사시가로 유명한 조선 문인 윤선도(1587~1671) 역시 매미 소리에 매료된 작가였다. 그의 <고산유고>에 실린 '칠월 초사흘날에 매미 소리를 듣고'에서 "이슬 마시니 욕심 없겠구나 / 가을을 알리니 애닯아라 / 초목은 시드니 서럽도다 / 저녁 맑은 바람도 반기지 않네"라며 해남 유배 중 자신의 감정을 매미 소리에 투영했다. 이슬만 먹는 매미의 청렴함을 통해 유배지의 쓸쓸함을 표현한 것이다.
조선 후기 문신 강재항(1689~1766)은 보은 현감 시절 "고을 관아 뜰 고요한 한낮 / 가을 매미가 기둥을 끌어 안고 울고 / 시끄럽게 울며 오랫동안 떠나지 않네 / 마치 슬프고 원통한 마음을 하소연하듯"이라며 매미의 지속적인 울음을 가을 초입의 여름 잔향으로 묘사했다.
조선 말 규수 시인 정일당 강씨(1772~1832)는 <정일당유고>의 '가을 매미 소리를 들으며'에서 "모든 나무가 가을 기운을 받는데 / 매미 소리 저녁 해질 무렵 어지럽게 들리네 / 제철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 숲 아래 홀로 헤매이네"라며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에 매미가 우는 모습을 여름의 끝에 대한 아쉬움으로 해석했다.
매미를 그토록 칭송해 자신의 시에 매미 울음소리에 대한 표현을 담았지만, 결국 여름의 상징성에만 치중했다. 매미의 발성 메커니즘 등 생태학적 정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의 시는 달랐다.
정약용, 조선 최고의 매미 울음소리 전문가
백성의 삶을 과학과 개혁으로 풀어내려 했던 실학의 대가 정약용(1762~1836)은 다른 차원의 접근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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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유당전서>에 실려있는 정약용의 <선음삼십절구> 원문 강진 유배시절 매미울음소리를 소재로 지은 <선음삽십절구>는 매미의 생태를 치밀하게 관찰한 결과들을 엿볼 수 있다 |
| ⓒ 한국고전DB |
인터넷에서 선음삼십절구를 소개하는 블로그들을 통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 직역 수준의 풀이 외에는 세세한 해설을 찾기 어려웠다. 필자의 매미에 대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30절구 중 매미 생태와 관련된 것을 추려, 5개의 생성형 AI(챗GPT, GROK, 제미나이, 딥시크, 퍼플렉시티)를 통해 직역 결과를 매미의 생태학 정보와 매칭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직역본을 읽으며 놀랐지만, 최종 결과는 더 놀라웠다. 한마디로 정약용 선생은 매미 박사였다. 매미 생태를 묘사한 구절 중에서 일단 매미 울음 소리에 대한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매미 발성 원리의 과학적 탐구 결과인 듯한 제2수에서 정약용은 매미의 소리 생성 원리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만 가지 변화의 오묘한 원리를 한 가지 법칙으로 평가하니 / 백 가지 곤충 중 오직 입으로 소리를 낸다. / 빽빽이 봉해진 곳을 살펴보라 / 어떤 구멍으로 소리가 뒤섞여 각기 맑은 곡조를 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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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미의 발성기관 구조 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감독 박성호, 98분, 2016>가 보여주는 매미의 발성기관 구조. 진동막이 떨리면서 소리가 나면 텅빈 배에 공명되어 배판을 통해 바깥으로 소리가 나가게 된다. |
| ⓒ 박성호 |
"동쪽 가지에서 한 번 노래가 흐르니 / 서쪽 나무에서는 시끄럽게 목을 가다듬네. / 육률과 오음이 모두 응답하니 / 숲 가득 바람이 일며 소리가 퍼진다"(6수)
"한 마리가 새 곡조를 시작하면 / 곁의 또 한 마리가 바쁘게 따라하네. / 서로 경쟁하듯 쫓으며 쉬지 않고"(12수)
이렇듯 한 마리의 울음이 주변 매미들을 자극하여 합창으로 이어지는 행태를 포착했다. 이는 현대 생태학에서 확인되는 말매미의 집단적 발성과 참매미 수컷들의 경쟁적 울음 행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발성 기관의 구조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도 엿보인다. 제7수에서는 매미 발성 기관의 구조를 더욱 상세하게 탐구한다.
"허리에 두른 북이 두 번 울리고 / 슬픈 실과 분노한 대나무가 소리를 합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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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매미의 울음소리 리듬 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에서 설명하는 종마다 다른 리듬을 만드는 방식, 배속에 진동근의 소리가 공명될때 매미는 매의 움직임으로 리듬을 만들어 낸다. |
| ⓒ 박성호 |
<선음삼십절구>는 송파수작에 실려 있어 1829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30절구의 내용이 다년간 관찰에 기반하므로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강진에 유배되었던 시기(1801~1818년)의 관찰 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약용의 통찰은 실학자적 면모에서 비롯된다. 실학은 조선 후기 실증적·실용적 지식을 추구한 사상이다. 그는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통해 사회 개혁을 모색하면서도 천문, 지리, 의학, 생태학 등 자연 과학을 깊이 파고든 인물이었다.
형 정약전이 <자산어보>로 해양 생물을 탐구했듯, 정약용은 매미 관찰을 통해 독자적인 생태 연구를 시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선음삼십절구>는 시문학의 한계에도 경험적 관찰의 결실로, 조선 매미 생태의 과학적 기록이다. 현대 생태학은 매미의 소리가 복부의 진동막에서 발생하며, 공명실에서 증폭되어 90~120데시벨의 강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본다. 정약용은 관찰을 통해 이와 유사한 원리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프랑스 파브르가 프로방스 매미를 관찰한 업적과 견줄 만하다. 매미 울음의 패턴, 지속성, 발성 기관, 종별 차이를 예리하게 담아내며 조선 최고의 매미 생태 전문가 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매미 소리 외에도 조선 매미의 일반 생태와 서식지에 대한 관찰이 포함되어 있어 더 깊은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1. 독립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98분, 감독 박성호, 2016)
2. 다음 카페 <용두열 칼럼, 수필> '<한시산책> 가는 여름 붇잡는 매미 소리' 작성자 박영우
3. 다산학술재단 사이트
4. 한국고전DB (한국고전번역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맨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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