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의 시시각각] 정청래와 윤석열의 닮은꼴 정치

정권 교체로부터 2개월여가 지났다. 처지가 바뀐 여야의 입장 돌변을 지켜보자니 매일 정신이 혼미하다.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랄까. 장관 인선 때가 특히 그랬다. 지난 정권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인선 파문 때마다 망치와 몽둥이로 응징에 나섰던 더불어민주당이 확 달라졌다. 많은 의원이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감싸고 또 감쌌다. 낙마를 거부하다간 정권 전체가 휘청댈 위기에 몰려서야 겨우 태도를 바꿨다.
국민의힘도 우습다. 4년 전 당직자의 정강이를 걷어차 탈당까지 했던 이가 최전선에서 장관 후보자의 갑질을 비판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3년 전 국민의힘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에서 폭우 피해 대응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을 끔찍하게 엄호했다. 그러나 이번엔 "물 폭탄이 예고됐는데 왜 여름휴가를 가느냐"며 이재명 대통령을 닦달한다. 요지경 세상이지만 이 정도는 아직 애교 수준이다. 더 심각한 내로남불은 따로 있다.

"그건 아니제, 정치는 그런 게 아니제, 아무리 망가져도 정치의 본령은 대화와 타협, 상대를 인정하는 것인디 말이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주름잡았던 동교동계 원로들과 지난주 오찬을 함께 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모진 박해를 당하고도 '용서의 정치'를 외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에게서 정치를 배운 측근들이다. 이들 백전노장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가로젓는 대목이 있었다.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정청래식 정치에 대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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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만 악수하겠다는 정 대표
'피의자와의 영수회담' 거부한 윤
"정치의 본령은 대화" 잊지 말길
」
원로들의 전성기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을 위시한 정치 9단들이 천하를 호령했던 때였다. 서로의 숨통을 끊을 듯 겨누다가도 극적으로 타협하고, 결정적인 순간 동업자 정신을 잃지 않았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런 정치는 이제 '라떼'의 추억으로 사라지고 있다. 낭만과 배려의 정치 공간은 얼치기 팬덤과 막무가내식 증오가 점령했다. 이런 현실을 원로들은 어이없어 했다. 상대 당을 '사람 아닌 짐승'으로 몰아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실제 정 대표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다. "사과와 반성 없이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란 이례적인 대야 선전포고에 이어 "그런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국민의힘은 열 번, 백 번 해산시켜야 한다"며 파상 공세를 이어갔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보수 정당엔 의례적인 취임 인사조차 거부했다. 열성 지지층의 강경론에 힘입어 전당대회에서 뜻밖의 압승을 거둔 그가 초장부터 거세게 야당을 몰아치는 모양새다. 하지만 야당의 약점을 고리로 대화 상대의 자격을 부정하는 태도, 어디서 자주 본 듯한 광경 아닌가.
"저희가 오다 보니까 (여의도에서) 한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용산 대통령실) 오는 데 한 700일이 걸렸다.” 지난해 4월 29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당시 대통령 앞에서 A4용지를 꺼내며 했던 이 말을 기억하시는지. 윤 전 대통령은 과반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도 회담을 마다했다. 누구도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영수회담 거부는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이 대표와의 대면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게 불편한 진실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총선에서 역사적 참패를 당한 뒤에야 마음이 없는 손을 억지로 내밀었다. 범죄 피의자와는 얼굴조차 마주할 수 없다는 무한 적대감의 결말은 여러분이 아시는 그대로다. 망상적 비상계엄과 파면으로 이어져 보수 세력 전체를 공중분해 위기로 몰아넣었다. 요즘 구치소에서 보여주는 눈꼴사나운 행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극과 극은 통한다 했나. 서로 욕하면서 닮는다 했나. 악수는 사람과만 하겠다는 정 대표, 범죄 피의자와는 대면하지 않겠다는 윤 전 대통령 두 사람의 섬뜩하고 기괴한 데칼코마니. 한국 정치는 왜 자꾸 뒤로만 가는 느낌일까.
서승욱 디지털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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