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 걷다가 "사이좋게 지내" 말하게 되는 구간 [은퇴하고 산티아고]
김상희 2025. 8. 11. 17:09
갈리시아의 길목,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
2025년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산티아고 길 걷기를 다녀왔습니다. 중년 한국인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산티아고 길은 열풍을 넘어 '산티아고 현상'이 되었음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 길 위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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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시야(Mansilla de las Mulas) 길, '메세타의 참맛' 인내심 테스트 구간 |
| ⓒ 김상희 |
메세타는 길었다. 순례길 초반의 아름다운 구릉과 포도밭은 간데 없고 가도 가도 밋밋한 밀밭과 보리밭뿐이다. 나무가 없으니 숲길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일부 순례자들은 부르고스에서 레온 구간을 버스로 건너뛰기도 한다고 한다. 한 줌 흙길만 길게 이어지거나 종일 차 소음에 시달려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풍경이 심심하니 사진이라곤 길 표시판뿐이다. 행정지명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글자가 온전한 표지판이 없다. 카스티야만 있거나 레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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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스티야 지역을 지날 때. '카스티야 만세! 자유!' 표지판 |
| ⓒ 김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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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온 지역으로 오니 '레온'만 남았다. |
| ⓒ 김상희 |
짐작하건데 두 지역을 합쳤겠지.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쳐 '경상전라도'가 되었다고 치자. 경상도를 통과할 때는 '전라'가 지워져 있고 전라도에 가면 '경상'이 지워진다. 하나의 행정 주로 묶어 놓아도 카스티야 왕국과 레온 왕국 시절 반목하던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게 뻔하다.
"카스티야야, 레온아! 사이좋게 지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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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처럼 발견했다, 사이좋은 카스티야와 레온 |
| ⓒ 김상희 |
갈리시아의 길목, 오세브레이로를 향해
메세타의 끝이 보인다. 화려한 교향곡으로 들어선다. 가파른 계곡 꼭대기에 세워진 아스토르가는 프랑스길 카미노와, 세비야에서 로마로 향하는 은을 수송하는 길이 만나는 교차점 도시였다고 한다. 가우디 주교궁 등 웅장한 건축물이 도시의 격을 말해 주었다. 아스토르가는 교향곡의 전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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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토르가의 다리, 다리 앞 공터는 15세기에 마상창술 시합이 열린 곳 |
| ⓒ 김상희 |
열흘간 200km에 이어졌던 메세타에서 보지 못한 숲이 나오면서 경치가 개성 있어지기 시작했다. 이쯤 오면 여행자들은 스페인의 지명과 싸운다. 포세바돈, 폰페라다, 비야프랑카... '어제 어디 묵었나'를 물으면 지명을 대답 못한다. 나에게, 지명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포세바돈 가는 길에서 서귀포에서 온 아빠와 아들을 만났다. 수다에 취하니 걸음 진도가 쑥쑥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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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을 넘고 넘어, 폰페라다 가는 길 |
| ⓒ 김상희 |
폰페라다까지 산을 몇 개나 넘었는지 모르겠다. 노란 꽃무지들이 지친 순례자를 달래주었다. 고갯길과 가파른 돌길 내리막이 반복되어 땅만 보고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폰페라다는 교향곡의 화려한 메인 테마가 '템플 기사단의 성(Castillo de los Templarios)'을 타고 흐르는 곳이었다. 당장이라도 중세식 전투가 벌어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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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순례자를 추모하는 조형물, 폰페라다 가는 길에서 |
| ⓒ 김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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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페라다는 템플 기사단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도심의 템플기사단의 성 |
| ⓒ 김상희 |
프랑스 길에서 통과한 마을은 100여 개가 넘는다. 이 중 최고를 꼽으라면 비야프랑카(Villafranca del Bierzo)다. 첩첩산중에 숨겨둔 진주였다. 우리나라 TV프로그램을 촬영했다는 수도원 숙소에 묵었는데 이런 곳을 촬영지로 찾아냈다는 게 'K-예능'의 역량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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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야프랑카 가는 길, 포도밭을 지나며 |
| ⓒ 김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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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찍었다는 비야프랑카의 수도원을 개조한 숙소 |
| ⓒ 김상희 |
이제 교향곡은 클라이맥스, 오세브레이(O Cebreiro)로 향한다. 순례길 코스 35개 통틀어 피레네 넘기만큼 힘들다는 코스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초집중해서 다중 화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긴장감 있게 오르내리는 길이 몇 개 나오더니 마지막 가파른 길 끝에 산상마을,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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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브레이로로 가는 산길에서 |
| ⓒ 김상희 |
오세브레이로는 상징성에 비해 숙소가 적었다. 같이 걷던 시애틀 남자와 쿤밍 여자들, 베이징 부부 팀은 오세브레이로에 못 가서 라구나(Laguna de Castilla)에서 묵는다고 했다.
마을을 둘러보니, 우리나라 초가집처럼 이엉을 이은 집, 파요사(Palloza)가 눈길을 끌었다. 바람 저항을 고려한 탓인지 담이 낮고 원형 가옥이다. 로마시대 이전 켈트 사회의 주거 건축물이라고 한다. 기적을 품어 성스러움을 더한 산타 마리아(Iglesia de Santa Maria) 성당에도 들렀다. 최후의 만찬 때 쓴 성배가 있었고, 성배 안의 포도주가 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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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가 이엉집, 파요사(Palloza). 로마 시대 이전 켈트 사회 주거 건축물이라고 한다. |
| ⓒ 김상희 |
오세브레이로는 특별하다. 갈리시아로 넘어가는 고개의 정점이다. 중후반 코스 중에서 육체적 난이도가 가장 높은 길이다. 그래서인지 감동도 다르고 산타 마리아 성당의 기도도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순례자에게는 메세타의 인내와 산악 지역의 단련을 다 통과했음을 인증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이 레온을 다 거쳐왔다. 이제 성 야고보를 향해 성큼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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