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하는 삶과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삶 사이 고민

정호갑 2025. 8. 11. 15:4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갑이네 시골살이 41] 망가진 정원을 가꾸며 드는 생각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호갑 기자]

5개월 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주말마다 이웃이 사진을 찍어 보내준 마당과 정원을 보며 낯선 곳에서 느끼는 그리움을 달랬다. 2년 6개월 동안 손길이 닿은 정원의 꽃과 나무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여름이 다가오면서부터 '잡초가 장난이 아니니 단단히 각오하라'는 말도 덧붙여 보내준다.

대문에 들어서니 이웃의 말이 실감이 난다. 들어오는 마당에 내 키보다 큰 이름 모를 풀들이 여기저기 곳곳에 마구잡이로 솟아나 있다. 앞을 보며 발걸음을 조심해 내디딘다. 혹시 뱀이 있을까 봐.
 잡초로 길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 장호갑
짐을 정리하고 한국에 있는 3주 동안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본다. 풀을 뽑고, 정원을 다듬고, 잔디도 깎고, 나뭇가지도 정리하고, 사람도 만나고 등등. 있을 동안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처럼 해놓고 지내고 싶다. 하루 두 차례, 6시부터 8시, 18시부터 19시까지 아내와 매일 풀을 뽑는다. 풀을 뽑다 바닥에 보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 하늘을 쳐다보면 맑다. 떨어진 것은 비가 아니라 땀방울이다.
언제 이런 땀을 흘려보았을까? 안 썼던 근육을 모처럼 써서 그런지 허벅지와 팔 근육이 땅기고, 손가락 마디가 뻑뻑하다. 그래도 차츰차츰 지난해의 모습을 찾아가는 정원과 마당을 보며 힘듦을 잊는다. 풀을 뽑다 보면 풀에 가려져 있던 꽃들이 온전히 드러내며 '나 여기 있었지' 하며 활짝 웃는 모습에 피곤함을 잊는다.
 잡초와 달리아가 뒤섞인 정원.
ⓒ 정호갑
지난가을에 심었던 묘목들이 보이질 않는다. 죽은 줄 알았는데 풀에 가려져 있었다.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성장이 더디다. 그래도 굳건히 살아 있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잡초를 정리하고 나니 모습을 드러내는 달리아.
ⓒ 정호갑
세상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다 보면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 욕심은 내려놓고 베풀 나이가 되었음을 되새긴다. 주위의 어려움에, 올바름에 눈길을 주고, 그에 맞는 행동도 해야 함을 깨닫는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 무겁게 와닿는다. 언제쯤, 이 말을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풀을 뽑으면서 나의 무지를 거듭 확인한다. '내가 그 풀의 가치를 아직 알지 못하면서 잡초'라며 마구잡이 뽑는다. 안 뽑히겠다고 버티면 호미로 파면서 뿌리째 뽑는다. 그러면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이리저리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제발 그만 좀 해라' 외치는 듯하다.
 잔디마당을 정리하고자 하니 제발 그만 좀 해라고 외치는 방아깨비.
ⓒ 정호갑
녀석들의 처지에서는 지금껏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을 빼라고 하니 날뛸 만도 하다. 내 욕심에, 내 좋아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은 없는지, 무지로 함부로 사람을, 세상을 재단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본다. 자연과 함께하려 시골살이하였는데 아직은 내 중심으로 살고 있다. 아니, 자연의 혜택만 누리고자 한다. 맑은 공기,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의 숨결,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예쁜 산 등등.

만나는 사람마다 캄보디아에서 살만하였냐고 묻는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나 역시 애국자가 된 양 사람 살기 가장 좋은 곳이 대한민국이라고 엉뚱한 답을 한다. 안전하지, 필요한 것 구하기 쉽지, 인터넷 잘 터져 세상 돌아가는 것 빨리 알지, 깨끗하지, 여가 시간 즐길 곳 많지.

시골집으로 돌아온 첫날, 이제 막 도착하였으니 먹을 것이 전혀 없을 텐데 하면서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와 밑반찬을 아랫집에서 가져다준다. 열대지역이라 건강이 걱정된다며 한의사인 벗은 정성을 다하며 다린 한약을 보내준다. 몇 개월 동안 정성을 다하며 한올 한올 그린 민화를 액자에 담아 보내준다. 가만히 보니 다른 민화와 달리 전통 민화에 수채화풍이 더해 한결 더 멋스럽다. 그 명화를 우리 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곳에 걸어 둔다. 집의 품격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아랫집에서 밑반찬과 방금 수확한 상추와 고추, 양파, 감자를 한아름 보내줍니다.
ⓒ 정호갑
 벗이 정성을 다해 그려 보내준 민화. 다른 민화와 달리 전통 민화에 수채화풍이 더해 한결 더 멋스럽다.
ⓒ 정호갑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웃의 정이, 무엇보다 자기 시간을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벗이 있는 대한민국,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낯선 땅으로 갔지만 자연의 오감을 찾아 이곳에 왔었는데 언제까지 시골집을 비워두고 호기심으로 떠돌 것인가? 땀을 흘리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삶을 두고 고민에 고민이 거듭된다.

그런데 호기심과 마땅함이 충돌하면 항상 호기심이 이긴다. 이제 마땅함이 이겨도 되는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아직 젊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모르는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다. 시골살이를 선택하고서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 그것을 가꾸는 법을 배우는 재미가 나를 살아있게 한다. 낯선 곳의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나를 설레게 한다.

퇴임하고 나는 두 가지를 경험했다. 지금까지 전혀 알지도 해보지도 않은 시골살이했다. 그리고 한 번도 가르쳐 보지 않은 중학생을 가르쳤다. 내가 이것을 하고자 할 때 지인들은 '대단하다'라며 격려하는 동시에 '과연 잘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나 역시 첫걸음은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내며 나름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다른 사람은 나와 같거나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남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뛰어난 사람들 곁으로 가기 위해 나는 '인일기십(人一己十 남이 하나를 할 때 나는 열을 한다)'이라는 말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왔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다른 능력은 없는데 성실함은 우리 부모님이 남겨 준 것 같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결석, 지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36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맹장 수술할 때를 제외하고 아프거나, 다른 일로 인해 결근, 지각, 조퇴를 한 적이 없다.

남들처럼 능력이 없을지라도 성실함만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실(誠實)이란 낱말을 나는 이렇게 풀이한다. 자기가 한 말(言)이나 품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成) 결과(實)가 기다리고 있다.

'성실'이 우리 사회의 주요 덕목에서 밀려난 현실이 매우 아쉽다. 창의성이 빛을 발하고, 한 건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창의성 또한 성실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창의성은 한순간의 기발함이 아니다. 창의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창의성은 성실의 결과물이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남보다 앞서갈 수 없다. 쓸데없는 욕심부리지 말고 그래도 내가 지닌 성실함에 나이에 맞는 넉넉한 인품이 더해졌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처럼 마당에 나가 풀을 뽑는다. 내일 아침도 그럴 것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