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만 남은 성곽 찾아가다 떠올린 75년 전 8월의 아버지
[이승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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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와 평화를 지키다 숨진 넋들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들의 충혼을 여기에 새기어 민족 앞에 자랑하노라 - 위수령항동위령탑 비문에서 발췌 |
| ⓒ 이승숙 |
물밀 듯이 쳐내려온 인민군에게 서울은 물론이고 충청도며 전라도까지 다 빼앗겼다. 남은 것은 대구 인근과 경남, 부산뿐이었다. 경북 청도군은 전쟁과는 떨어져 있었다. 전쟁이 났다는 소문은 들렸지만 전쟁과는 무관한 듯 일상이 흘러갔다. 그래도 청년들은 자위대를 조직해서 마을을 돌봤다. 낮에는 논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조를 짜서 차가 다니는 큰 길을 지켰다. 21살 아버지는 그렇게 지내다 전장으로 갔다.
더리미 마을 뒷산에 있는 가리산돈대를 찾아간 지난 7일은 매우 더웠다.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 땡볕을 받으며 걷노라니 아버지의 그해 여름이 떠올랐다. 더구나 돈대 근처에 있는 '위수령항동위령탑'을 보자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위령탑이 전쟁 때 돌아가신 분들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위령탑에서 읽는 비극의 시대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 우리나라는 좌우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죽였다. 강화도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발발 며칠 뒤 강화도는 인민군에게 점령 당했다. 그들은 우익 인사들을 체포하고 구금했다. 그해 9월 10일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강화도의 인민군은 철수했다. 철수하던 인민군은 우익 인사들을 연행해서 학살했다.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해변가 산기슭에서 73명의 우익 인사들이 무참히 학살 당했다.
10월부터는 한국군과 민주청년반공돌격대 등의 우익 자경단이 강화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민군에 부역한 인사들을 체포, 구금했다. 강화향토방위특공대라는 이름으로 자경단을 만든 우익단체는 한국군과 미군의 비호를 받으며 만행을 저질렀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1.4후퇴를 하기까지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하는데, 15일 동안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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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치된 강화 위수령항동위령탑, 키 높이로 자란 풀들만이 왕성하다. |
| ⓒ 이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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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수령항동위령탑의 추모비들. |
| ⓒ 이승숙 |
그러나 지금 위령탑은 버려져 있다시피 하다. 잡초가 허리 높이까지 우거지고 칡넝쿨이 뻗어나가 그 일대를 다 집어삼키고 있는 지경이다. 이렇게 큰 비석과 조형물들을 세웠을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그들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화합과 연대의 시대다. 위령탑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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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가리산돈대. |
| ⓒ 문화재청 |
이 정도 규모의 성곽을 쌓자면 얼마나 많은 물자가 들어갔을 것이며, 인력 또한 얼마나 많이 투입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큰 돈대를 한 개도 아니고 48개나 한꺼번에 만들었다. 그것도 80여 일 만에 완성했으니, 그 노고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더리미 마을의 가리산돈대
가리산 돈대는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더리미 마을에 있다. 염하 방향으로 튀어나온 언덕의 꼭대기에있는 이 돈대는 1999년 육군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할 때 전방후원형(前方後圓형)의 형태로 파악되었다. 즉 앞은 네모꼴이고 뒤는 둥근 형태의 돈대였다. 그러나 해안도로를 낼 때 포좌가 있었을 돈대 전면 부분이 잘려 나갔고 또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상태로는 돈대의 정확한 형태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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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리산돈대의 돈문 터 |
| ⓒ 이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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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단석 일부가 남아 있다. |
| ⓒ 이승숙 |
영원한 것은 없다
바닷가 높은 언덕에 위치한 가리산돈대는 조선시대 숙종 5년(1679)에 만들어져 조선 후기 무렵까지 제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망하자 돈대 역시 유명무실해졌다.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돈대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성벽을 쌓을 때 쓰였던 그 큰 돌들도 다 사라졌다. 빈 터만 남아있는 가리산 돈대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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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리산돈대의 빈 터에는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 |
| ⓒ 이승숙 |
돈대 터 한쪽에 둥글 넓적한 돌 하나가 놓여 있다. 판판하게 다듬은 그 돌 위에는 깨진 기와조각이며 그릇 쪼가리들이 얹혀 있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지만 나름의 질서가 보이는 듯하다. 돈대를 찾아왔으나 아무 것도 없어 아쉬웠던 사람들이 성벽 돌로 쓰였을 돌과 깨진 기와 조각이 보이자 그렇게 하나하나 놓았으리라.
터만 남은 가리산돈대에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생각한다. 그 큰 돈대마저 사라졌는데 사상이며 이념인들 영원할까. 모든 것들은 다 한때다. 돈대도 또 위령탑도 만들어지고, 성하다가 무너졌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8월 한낮의 가리산돈대가 말해주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화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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