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 백자를 낳은 스승, 박영신 선생님

하성환 2025. 8. 1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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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환 기자]

▲ 백자 2025 콘서트 장면 <압도적 승리로 내란 세력 청산하자>는 관객의 손팻말이 백자의 지나온 삶을 웅변하듯이 인상적이다.
ⓒ 하성환
민중가수 백자(본명 백재길)는 김건희-윤석열 파렴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 한 축을 감당한 인물이다. 응징 언론 『서울의 소리』 유튜브 사회자로 출연해 김태형 심리학자와 윤석열 정권의 부패와 무능의 실체를 낱낱이 폭로했다. 김건희-윤석열 정권 첫해부터 '퇴진이 답이다'를 노래하다 2023년도부턴 탄핵 캐럴 송 '탄핵이 답이다'를 열창하며 일찌감치 '2024~2025 빛 혁명'의 포문을 열었다.
▲ 89년 6월 박영신 선생님 투쟁 당시 모습 1989년 5월 전교조 창립 이후 노태우 군부정권은 전교조를 해체시키려 전방위적으로 탄압하였다. 노태우 군부정권의 탄압에 맞서 머리띠를 두른 채 항의농성 중인 박영신 선생님! 그는 1991년 강혜원 선생님과 함께 <교실 밖 국어여행>을 펴내 스테디 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2022년 5월에 발간된 <전교조 해직교사 백서> 개인열전에서 “돌이켜보면 나의 일생에서 가장 현명하고도 자랑스러운 선택은 전교조에 가입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 박영신
백자는 자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한 것이 고교 시절인 1989년 전교조 집회였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줄임말)는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짓뭉갠 4·19 교원노조를 28년 만에 부활시킨 자주적인 교사노동조합이다. 당시 노태우 군부정권은 교사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교사들을 100명이나 구속했다. 그리고 교사노동조합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1,600명 교사들을 파면, 해임했다. 교육 대학살이 자행된 그 순간, 민중가수 백자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지키기 위해 한 몸이 되었다.
당시 중고교 학생회는 대부분 직선제 선출이 아니었다. 1984년 전두환 군부정권이 학생운동에 밀려 정치적 유화 국면에 접어들자, 대학가는 학생회장을 직선제로 선출하기 시작했다. 늦은 곳은 1986년도에 가서 직선제를 쟁취한 대학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민주화된 도시 서울지역 고등학교에서 직선제를 가장 먼저 쟁취한 곳이 1987년 석관고등학교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의 영향으로 이후 중고교에서도 하나둘 직선제 학생회를 쟁취해 나가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전교조가 창립되고 그해 6~8월 전교조 탄압이 집중되는 와중에 서울 신목고를 비롯해 직선제 학생회 쟁취 움직임이 일기도 했던 게 당시 학교 풍경이다.
▲ 촌지거부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 대회> 장면 1989년 10월 28일 전교조가 주최한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 대회>에 전국 45개 지역에서 교사, 시민, 학부모 4만 명이 참여하였다.
ⓒ 전교조
자양고에서도 전교조 교사들이 노태우 정권-교육부-학교 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그 와중에 다른 학교들처럼 학생회가 주도한 조직적인 항의 집회나 시위가 없었다. 그러나 백자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전교조 교사들을 쫓아내려는 부당한 권력에 항거했다. '우리는 전교조 선생님을 존경해요', '선생님을 사랑해요'를 외치며 항의 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학교는 일상에서 촌지가 오가는 부패한 공간이었다. 20~30대 젊은 교사들이 주축이 된 전교조는 학부모 '촌지(뇌물) 거부'를 내걸고 제대로 된 참교육을 실천하려 분투했다.

당시 박영신 선생님은 자양고등학교 전교조 분회장이었다. 박영신 선생님 기억엔 백자를 담임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백자는 한때 박영신 선생님을 담임 선생님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만큼 박영신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랐다. 백자는 2020년 스승의 날 페북에서 박영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스승의 날을 맞아 고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셨고 전교조 결성 당시 해직되셨던, 지금은 페친이신 박영신 선생님께 끝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찾아뵙지도 못하고 늘 죄송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선생님의 제자라서 참 행복합니다.
▲ 2025 백자콘서트에서 제자를 응원하며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한 박영신 선생님 2025년 5월 백자 콘서트에 참석해 제자를 응원한 박영신 선생님. 민중가수 백자는 한국 사회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민중가수 백자는 교육부가 선정한 좋은 학교, 행복한 학교인 대안학교 <전인고등학교> 교가를 만들었다.
ⓒ 하성환
올곧은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는 민중가수 백자는 1990년 대학 노래패의 일원으로 교내 시위 당시 무대에 서서 열창했다. 1991년 분신 정국에선 매주 집회에 참석해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에 앞장섰다. 바로 그 백자를 길러낸 분이 89년 전교조 창립 직후 교사 십계명을 남긴 박영신 선생님이다. 21세기 오늘날 사표(師表)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겠기에 여기에 옮긴다.

교사 십계명

1. 하루에 몇 번이든 학생들과 인사하라. 한 마디의 인사가 스승과 제자 사이를 탁 트이게 한다.
2.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라. 밝고 다정한 선생으로 호감을 줄 것이다
3.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라.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누구에게나 가장 감미로운 음악이다.
4. 친절하고 돕는 교사가 되라. 학생들과 우호적 관계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친절하라.
5. 학생들을 성의껏 대하라.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즐거이 말하고 행동하되 다만 신중할 것을 잊지 말라.
6.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라. 내가 노력한다면 거의 누구든지 좋아할 수 있다.
7. 칭찬을 아끼지 말라. 그리고 가능한 한 비판을 삼가라.
8. 항상 내 앞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라. 서로 입장이 다를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세 편이 있음을 기억하라. 그것은 '나의 입장', '학생의 입장' 그리고 '올바른 입장'이다.
9. 봉사를 머뭇거리지 말라. 교사의 삶에서 가장 가치로운 것은 학생을 위해 사는 것이다.
10. 이상의 것에 깊넓은 실력과 멋있는 유머와 인내, 약간의 겸손을 더하라.

그러면 교사가 하루를 후회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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