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악마화, 이제는 멈춰야 할 때
고교학점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고교학점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백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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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교학점제, 현장 부담 완화를 위한 개선안 만든다. 교육부는 2025년 7월 17일 고교학점제 현장 부담 완화를 위해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듣고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
| ⓒ 교육부 공식 블로그 |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종종 고교학점제가 지닌 본래 취지와 학생 맞춤형 학습과 책임교육을 강화하려는 국제 교육 흐름보다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단기적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고교학점제는 '악마'가 아니다. 필자 역시 2017년, 고교학점제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는 다른 교육정책들처럼 정권 말기에 악마화되어 폐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여러 해 동안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업무를 맡고,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며 평가와 기록을 수행하고, 연구부장으로서 성취평가제와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업무를 담당하고, 고교학점제 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현상학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고교학점제는 우리 교육을 둘러싼 환경을 보았을 때 완전한 정책은 아니지만, 우리 교육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라는 것이다.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고, 성취 기준을 충족해야 학점을 취득하는 구조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미래형 교육 체제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윤석열 정부는 전면 시행을 위한 실행 기반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고, 이전 문재인 정부 역시 '정책 어그러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방향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정교한 지원 방안이다. 교육과정 운영, 평가, 인프라, 교원 수급까지 전 영역에서 고교학점제가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시행 초기의 불완전함만을 부각하며 제도를 '실패작'으로 낙인찍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제도의 개선 가능성을 차단하고, 오히려 현장의 피로감과 혼란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승-전-고교학점제, 고교 교육의 폐해는 고교학점제 탓이다?
현장을 더욱 피로하게 하는 것은, 폐지 명분을 쌓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악마화'하는 주장들이다(해당기사: 고교학점제로 '좀비' 돼가는 고등학교. https://omn.kr/2eulf). 불과 한 학기 만에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평가는 과도하다. 전면 시행 첫해의 혼란은 어느 교육 제도나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도기 현상이며, 이를 근거로 제도의 실패를 단정하는 것은 교육 정책의 특성과 실행 과정을 몰이해한 판단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과 학교를 비롯해 이미 많은 학교와 지역에서 고교학점제 안착의 긍정적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시행 초기의 문제는 폐지 사유가 아니라, 보완과 조정을 통해 개선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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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8학년도 서울대학교 전공 연계 과목 선택 안내 중 일부 2025년 6월 30일 서울대학교 입학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2028학년도 전공 연계 과목 선택'에 대해 안내했다. 첫머리에 ' 학생의 과목 선택권의 폭을 넓히고, 전공 탐색 및 융합 교육을 지향하는 대학 교육의 취지를 살려 최소한의 권장과목을 제시함'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 ⓒ 서울대학교 입학본부 |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최성보)가 실효성이 없고 교사 업무만 늘린다는 비판은 사실과 다르다. 최성보는 성취 미달 학생에게 보충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학습 안전망'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수 국가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한국교육개발원·교육정책네트워크, 2023).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의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 고교학점제의 본래 취지다(교육부, 2021). 이를 감안하면 학점 취득 기준은 단순한 출석 여부가 아니라 과목 성취를 중심에 두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단위제로 되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학점 이수 기준으로 최소 성취율(성취율 만점 100% 중 40% 미도달)을 설정하는 것은 내신 절대평가(성취평가제)로 전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홍원표, 2025).
소규모 학교에서 교사의 담당 과목이 늘고 전공 외 수업을 맡는 현상은 2015 개정 교육과정 시행 과정에서 과목 선택·개설의 주체가 교사에서 학생으로 이동하면서 강화된 것이며, 이를 고교학점제의 결과로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에는 공동교육과정, 온라인 수업, 지역교육청 순회 교·강사제 등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소규모 학교에 대한 지원과 보완이 더욱 강화되었다(조인자·이재진, 2023).
교육부, 현장 목소리 반영한 '고교학점제 종합 지원 계획' 시급히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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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교학점제 교원 3단체 기자회견 교사노조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교원 3단체는 강경숙, 백승아, 정성국 의원실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고교학점제로 인한 학교 현장의 혼란을 해결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 ⓒ 연합뉴스 |
둘째, 미이수제와 최성보는 행정 부담과 수업 왜곡을 낳고 있어 폐지 또는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며, 국가가 책임지는 기초학력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셋째, 교과별 출결 확인제는 담임과 교과교사의 업무를 이중화하고 오류를 늘리므로 폐지하고, 담임 중심의 통합 출결 관리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넷째, 과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 분량이 폭증해 수업보다 기록이 우선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글자 수 축소와 학기 단위 마감 폐지 등 기록 부담 완화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현장의 혼란을 해결할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학교 중심의 실행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국회의원 강경숙 보도자료-강경숙·백승아·정성국 의원, 교원 3단체 "고교학점제 혼란 해결하라", 2025. 8. 5.).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과 함께 폐지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교육부는 교원단체가 전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동시에 해외 주요국의 문제 해결 사례와 고교학점제 연구·준비학교 운영에서 확인된 공교육 회복 사례와 난점 극복 경험을 면밀히 검토해, 다층적·체계적 종합 지원 방안을 신속히 마련·발표해야 한다.
종합 지원 방안은 단순한 보완책이 아니라 고교학점제의 실행 동력을 회복하는 핵심 전략이어야 한다. 우선 성취평가제 확대와 연계해 내신 절대평가 전환 로드맵을 조기에 확정해 학교가 장기적인 교육계획을 세울 수 있는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교원 배치는 학생 수뿐 아니라 개설 과목·학급 수를 반영하는 다중 기준으로 산정하고, 필요 시 교원을 충원해 선택과목 개설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학습 부진이나 위기 상황에 놓인 학생을 위한 정서·심리 지원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
성취 기준 달성에 실패한 학생을 위해서는 재이수·대체이수 제도를 온라인 수업, 공동교육과정, 계절학기 등 다양한 경로로 설계해, 낙인 없이 학업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은 권역별 책임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해 학교 간 협력과 자원 공유를 활성화하고, 컨설팅·행정 지원을 상시 제공하는 전담 기구로서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행정 부담 완화도 필수적이다. 출결·시간표·이동수업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1학년 공통과목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학년말에 일괄 기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최성보 운영 지침은 간소화해 학교 자율성을 높이고, 교육청에 재구성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여기에 튜터·멘토링 인력을 확충해 학생 개개인에게 맞춤형 학습 지원을 제공한다면, 고교학점제의 핵심 가치인 '선택과 책임'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고교학점제가 미래 교육으로 가는 '열린 문'이 되려면
고교학점제는 '악마'도 아니지만 단순한 제도 변경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한국 고등학교 교육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구조적 전환의 관문이다. 시행 첫해의 혼란과 피로감은 불가피한 과도기적 현상이며, 이를 근거로 고교학점제를 '실패작'으로 단정하는 것은 교육개혁의 역사와 본질을 오해한 판단이다.
물론 '고교 체제 서열 구조의 지속', '내신 상대평가 등급 병기', '2028 대입 수능 개편' 등 제도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고교학점제의 작동 여건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축적된 준비와 인프라를 고려하면, 이는 곧 고교학점제의 무력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입 전형, 학생평가, 학교 교육과정의 정합성을 회복해 '선택 교육과정의 실질적 작동', '내신 및 수능 경쟁 완화', '포용적 책임 교육 환경 조성'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홍원표, 2025). 이를 위해 교육당국과 현장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고교학점제가 우리 교육을 경쟁적 대입 제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학생이 교실 수업과 교육과정의 주체로 서며, 학교가 학생의 학업과 진로 결정 과정을 책임 있게 뒷받침하는 미래 교육으로 가는 '열린 문'이 되게 하는 길이다.참고문헌
교육부. (2021).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 계획. 세종: 교육부.
교육부 보도자료. (2025). "고교학점제, 현장 부담 완화를 위한 개선안 만든다."
서울대학교 입학 본부. (2025. 6. 30.). 보도자료 - 2028학년도 전공 연계 과목 선택 안내
한국교육개발원·교육정책네트워크. (2023). 고등학교의 미이수 과목에 대한 재이수 제도 현황. 해외교육동향 기획기사, 수탁연구자료 CRM 2023-37
국회의원 강경숙 보도자료. (2025. 8. 5.). 강경숙·백승아·정성국 의원, 교원 3단체 "고교학점제 혼란 해결하라"
임광국. (2017). 고교학점제 운영의 해외사례. 교육비평,(40), 166-215.
조인자 , 이재진 (2023). 고교학점제 과목선택권 확보를 위한 일반고 교육과정과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운영 사례 분석 -강원도 소규모 일반고 사례를 중심으로-. 초등교육연구논총, 39(1), 177 – 202.
홍원표. (2025). 2025년, 고교학점제: 변경된 실행 조건과 다시 찾는 가능성. 교육과정연구, 43(1), 1‑23.
오마이뉴스. (2025. 8. 8.). "고교학점제로 '좀비' 돼가는 고등학교 - [주장] 고교학점제 원점 재검토해야... '매몰 비용' 따질 때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듀프레스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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