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그 집에 그 주인, 안동 임청각

1세대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1858~1932)은 53세인 1911년 만주로 망명해 독립단체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숱한 독립투사를 양성했다. 그는 경북 안동 임청각의 종손으로 “가문보다 조국이 우선”이라는 대의를 지키며, 종가마저 처분한 막대한 전 재산을 독립 자금으로 쾌척했다.
독립운동의 성소 임청각은 한옥 건축으로도 더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낙동강변 경치 좋은 언덕에 자리해 임청(臨淸)이라 이름지었다. 1519년 고성 이씨 이명이 창건했으니 500년 넘는 가장 오래된 한옥이고, 원래 120여 칸 규모로 가장 큰 주택이었다. 1941년 일제는 의도적으로 중앙선 철도를 집 앞에 부설하면서 50여 칸의 외행랑과 부속채를 훼철해 70여 칸만 남았다.

비록 조선 초에 지었으나 이 집은 고려 주택의 유풍을 보존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더욱 중요하다. 안채, 중채, 사랑채, 행랑채 등 여러 건물이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된 특이한 구조다. 전체로 보면 용(用)자형으로 마당만도 5개나 된다. 더욱 큰 특징은 정식 2층 방이 20여 칸이나 되는 2층 한옥이라는 점이다. 지형의 높이차까지 더해져 어떤 부분은 3개 층이 공존하기도 한다. 현존 한옥은 거의 조선 후기 것으로 여러 건물이 분산된 단층집 일색이다. 이처럼 집약적이고 중층적인 구성은 사라진 고려 한옥의 전통이다.
사랑 마당에 우물이 있었다. 남자 주인들은 별당인 군자정(君子亭)으로 거처를 옮기고 사랑채를 여주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이곳의 우물방에서 9명의 독립 유공자들이 태어났다. 집과 주인은 서로 닮는다. 임청각은 오래된 전통을 유지하면서 작은 혁신을 거듭해왔다. 정통 유림인 석주 가문이 혁신의 선봉에 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별당 이름대로 시대가 요구했던 군자, 바로 독립투사가 되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철도 이설 등 복원 작업을 마무리하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 전시회도 열린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홈캠 설치후 '이 설정' 안 바꿨더니…해커가 보여준 충격 장면 | 중앙일보
- 키는 유전이라고? 천만에…1년에 10㎝ 훌쩍 큰 아이 비밀 | 중앙일보
- 금기 깨고 "박정희면 어떻나"…화제의 李연설, 윤 팀장 작품 [이재명의 사람들⑲] | 중앙일보
- 결혼까지 생각했는데…그녀의 아홉살 딸 성추행한 50대 결국 | 중앙일보
- '美 식당 비매너 논란' 이시영, 결국 "죄송하다"…무슨 일 | 중앙일보
- 잠든 아내 절친에 몹쓸 짓한 남편…"이어폰 찾다가" 황당 변명 | 중앙일보
- "원정서 이런 환영 처음" 손흥민도 놀랐다…'미국 정복' 시동 | 중앙일보
- 돈만 주면 섹스·마약·외출…낙원의 섬에 숨은 악명의 교도소 | 중앙일보
- 전한길에 난장판 된 野전대…그 뒤엔 '큰손' 보수유튜브 카르텔 | 중앙일보
- 화장실, 지독한 선택이었다…어느 50대 남녀 '기이한 죽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