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사진만 10만 장... 기록에 미친 엄마, 닮아가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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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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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나 |
| ⓒ 송연정 |
핸드폰 사진만 10만 장이다. 책상에는 2테라바이트(TB)짜리 외장하드 10여 개가 있다. 우리 집은 '구글 드라이브' 그 자체다. 왜 모으는지 모르겠지만, 영수증도 모은다. 내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리려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걸로 영수증 일기를 써야 한다며.
거실은 이미 도서관이 됐다. '아카이빙 자료'라고 하는데 엄마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말 다 알고 있는 걸까. 그걸로도 부족해 기록 창고도 만든다. 정말 대단하다. 아키비스트 엄마와 같이 산다는 것은 '미니멀리스트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엄마는 기록에 집착한다.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움을 느끼고, 꼭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계속.
엄마는 사라져가는 마을을 기록하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4박 5일 출장을 간다. 동시에 출판사의 편집 일을 외주로 받고, 개인의 기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 또 달려간다. 맨날 눈은 시뻘겋고 손목에는 염증이 생겨 책 하나 드는 것도 힘들어하지만,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늘 재밌고 하고 싶은 일만 해. 이게 힐링이야."
엄마 닮아가는 나, 기록의 DNA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 온 지 21년째, 어느덧 나도 친구들이 이별하면 "물건 버리지 말고 나 줘"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비상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인가 보다. 어떻게 미친 짓의 방식마저 엄마와 닮을 수 있을까. 그제야 엄마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지 물었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흔적을 남긴다. 누군가는 그 흔적을 기록으로 만들어 분류하고 보관한다. 사서가 책을 분류해 관리한다면, 기록 전문가는 흔적을 보관한다. 공공기관, 도서관, 기업, 연구소 등 집단도 비슷하다. 조직의 흔적을 노하우와 집단 지성으로 바꾼 일도 아키비스트의 일이다. 사실 엄마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슬픔' 때문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때였다. 엄마는 살면서 목격했던 참사 중 세월호 참사가 가장 생생했다고 말한다. 세월호가 침몰하자마자 많은 작가와 기록학자들이 죽음을 생생한 기록으로 바꾸었다. 뉴스에서 사실과 다르게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할 때, 그들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기록했다.
"언젠가 TV를 보는데 세월호 현장에 있던 아키비스트들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그 화면 제일 아래에 '기록학자 김익한(명지대 기록학과 교수)' 이렇게 뜨는 거야."
엄마는 기록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다. 이후 엄마는 자석마냥 기록과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엄마가 다니던 출판사는 꿈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보다 좀 더 실질적인 것을 다뤘어. 실제로 아이들이 한 말이나 선생님의 교실 이야기 같은 거. 도감을 만들어도 실제 문밖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동물과 식물을 그림으로 그렸고, 자꾸 안 써서 사라지는 우리말을 기록하는 책도 만들었어. 편집자로 일할 때부터 사실을 담는 콘텐츠들을 다룬 거야."
편집자로서 만났던 기록은 대개 개인적이고, 특정 관심사를 가진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기록해 준 이들 덕분에 기록이 지닌 공공 가치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엄마는 하던 일을 다 때려치우고 명지대 기록학 석사에 도전했다. 그때 엄마 나이 마흔이었다.
엄마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자원봉사자, 잠수사 등 100명의 이야기를 담은 4·16 구술증언록 '그날을 말하다'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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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구술증언록 '그날을 말하다' 1~50권 |
| ⓒ 4.16기억저장소 |
엄마가 맡은 첫 구술은 선체가 막 올라올 당시의 유가족들의 증언이었다. 선체 조사위로 활동하던 희생자의 아버지는 "건져 올려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했고, 기억 저장소 소장이던 또 다른 희생자의 어머니는 "깨끗이 닦아 방부처리한 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둘은 '진상규명'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지만, 입장은 달랐다. 엄마는 당시 상황을 두고 '너무 벙쪘다'고 말했다. '입장이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해야 기록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하고 고민했다.
"100명의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야. 꾸미고 정리해서 바꾸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자기 얘기를 하는 거지. 그게 모이니까 첨예해지고 다방면으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어."
기록은 특정한 해석을 부여하지 않는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각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세월호 참사는 11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오래, 더 정확히 기록하고 더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이 참사를 사회의 지속적인 현안으로 남게 한 힘은 기록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할 당시, 엄마는 개인과 공공의 기록이 중첩되는 순간을 살고 있었다.
다양한 기록 현장으로 달려가는 엄마
엄마는 세월호 참사 기록을 기점으로 공공기록, 민간기록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달려간다.
노동자가 노동권을 행사하거나 집회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현실을 다룬 '손배가압류 소송기록 아카이브', 정치·언론·교육·체육 전반에서 활동한 선각자 몽양 여운형의 사상을 현대에 전하는 '몽양 여운형아카이브', 서울옛길을 기록한 '서울기록원 아카이빙북' 제작 등 공공기록을 다뤘다. 흥미로운 개인 기록들도 잔뜩 있다.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도 못 한 때, 아버지를 떠나보낸 분이 있었어.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너무나 살아있는 사람의 집인 거야. 물건을 다 정리해야 되는데 그 큰 집의 살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몇 달을 못 치운 거지.
결국 자식들이 아버지 물건 중에 챙겨가거나 추억할 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그냥 싹 버려버린 거야. 근데 그때 그분이 아버지의 물건을 더 잘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 그래서 이제 엄마가 달려가서 의미 있는 기록들은 사진 찍고 목록으로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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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추향 아키비스트가 보관하고 있는 닭집 단골손님명단1 |
| ⓒ 썬데이아카이브 |
예를 들면 '1234 - 꼬리 잘린 개가 있는 집', '5678 - 항상 닭똥집에 맥주 2개 시키는 집' 이런 식으로. 그거를 매번 새로운 단골이 생길 때마다 손으로 다시 새로 쓴 거야. 순서대로 찾아볼 수 있게. 그 기록이 너무 소중해서 여기 보존했어."
이 기록들은 디지털로 보존되고 비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통해 공유된다. 아카이빙 사례와 기록의 힘을 전하는 팟캐스트도 함께 운영 중이다.
기록이 준 위로와 치유
엄마에게도 그냥 죽었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엄마가 끄적여뒀던 글을 본 출판사에서 책을 써보자고 연락이 왔고, 그렇게 몇 년 만에 엄마는 죽었던 때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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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 이가 나온 나(딸)의 모습 |
| ⓒ 송추향 |
엄마가 느낀 기록의 기쁨을 딸도 언젠가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엄마는 미소 지었다.
"엄마는 좀 이성보다 감성이 더 발달해 있어서 어떤 것을 정확하게 기록할 때 한계도 있었고 그걸 많이 채워야 했어. 근데 네가 기록을 한다고 하니까 안심이 돼. 어떤 일을 정확하게 보고 똑 부러지게 판단해서 명확한 기록들이 잘 남겨질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겨."
나는 엄마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유난히 다정해 보인다는 말도 자주 들어왔고, 티격태격해도 베스트프렌드 마냥 가까웠다. 그래서 그동안 엄마가 하는 일은 바보같이 엄마의 몸만 상하게 하는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에야 깨닫는다. 엄마는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이고, 즐겁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사람이며,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해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엄마는 커서 뭐 될 거야?"
우리 엄마는 나보다 더 빨리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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