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일상 벗어나 찾은 부석사, 천 리 길 달려온 보람 있네
[김종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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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극락이 따로 없습니다. |
| ⓒ 김종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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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로 가는 은행나무길 |
| ⓒ 김종신 |
산세가 봉황을 닮아 이름 지어진 봉황산(鳳凰山)을 주산(主山)으로 태백산(太白山)에서 구룡산-옥돌봉-선달산-소백산으로 서진하던 백두대간이 선달산에서 작은 산줄기 하나를 남으로 내려보낸 게 봉황산입니다. 부석사가 자리한 모양새를 풍수가들은 서봉포란형(瑞鳳抱卵形)이라고 합니다. 봉황의 좌우 날개가 청룡 백호인데 현재 과수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진리의 꽃이 활짝 핀 부석사
일주문 뒤편에는 해동 화엄 종찰(海東華嚴宗刹)이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화엄(華嚴)'은 부처의 깨달은 마음을 비유한 진리의 꽃, 진리의 장엄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부처이며 일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서로 관계 속에 있어 어느 하나도 혼자 있거나 홀로 일어나는 게 없이 서로가 원인으로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합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성(姓)은 김씨(金氏)이며, 아버지는 한신(韓信)입니다. 의상대사는 625년(진평왕 47년) 경주에서 태어나, 644년(선덕여왕 13년)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해 승려가 되었습니다.
원효(元曉)대사와 함께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기 위해 중국의 당(唐)나라로 유학을 떠나려 했으나, 원효대사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해골바가지' 일화처럼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유학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의상대사 혼자 유학을 떠나 중국 화엄종 2대 조사(祖師)인 지엄(智儼, 602∼668)에게 화엄(華嚴) 사상을 배워 돌아왔습니다. 52세에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는 26년간 이곳에서 머물며 702년 열반에 들기 전까지 화엄 교학을 전파하고 제자를 길렀습니다.
일주문을 지나자, 하늘 향해 솟은 돌기둥 두 개가 옆으로 보입니다. 절에서 큰 행사할 때 괘불(掛佛) 등의 깃대를 걸었던 지줏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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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천왕문을 지나면 또 다른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의 연속인 듯합니다. 크고 작은 돌을 섞어 쌓은 석단이 3단으로 석단은 3단으로 극락세계의 구품연화대를 상징하듯 부석사 전체 구도는 극락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
| ⓒ 김종신 |
천왕문을 지나면 또 다른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의 연속인 듯합니다. 크고 작은 돌을 섞어 쌓은 석단이 3단으로 석단은 3단으로 극락세계의 구품연화대를 상징하듯 부석사 전체 구도는 극락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꽃 화(華)자 모양새라고 합니다. 천왕문에서 무량수전까지 이어지는 돌계단은 9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왕문에서 범종각 앞마당까지가 하 3단이고 범종각부터 안양루 앞마당까지가 중3 단, 안양루에서 무량수전까지가 상 3단입니다.
극락으로 가는 계단 길
극락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계단 오르는 수고가 덜 힘듭니다. 지나온 문을 돌아보니 고운 풍경들이 따라옵니다.
부석사 삼층 석탑이 좌우에서 자리한 뜨락에서 범종루를 바라보는 풍광이 아늑합니다. 범종루를 지납니다. 범종루에는 종이 없습니다. 종은 따로 종각을 세워 있고 여기에는 목어와 북이 있습니다.
범종루를 지나면 또 다른 뜨락이 나옵니다. 저만치에 안양루와 너머로 무량수전이 설핏 보입니다. 뜨락에 있는 장서각을 지나 안양루(安養樓) 앞에 섭니다. 안양정토(安養淨土)의 줄임말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뜻합니다. 덕분에 극락에 이른 듯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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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범종루 |
| ⓒ 김종신 |
석등은 중앙에서 왼쪽으로 약 5cm가량 치우쳐 있습니다. 무량수전을 정면에서 가리지 않으려는 의도와 무량수전에 모셔진 아미타불이 앉아 계신 왼쪽으로 찾아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발걸음과 시선을 옮기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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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석등 |
| ⓒ 김종신 |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중략). 무량수전은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건물임에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중략).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위에 또 산, 그 뒤 위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그를 따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자 덩달아 저의 출렁이는 뱃살도 함께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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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석탑 |
| ⓒ 김종신 |
방랑시인로 유명한 김삿갓(金炳淵, 1807~1863)의 '부석사(浮石寺)'가 떠오릅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는구나! /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 온 듯 /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처럼 헤엄치네 /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있네! //"
마치 이제야 찾은 배 나온 중년을 나무라는 듯합니다. 배 나온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서 서서 주위 풍광을 두 눈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산의 능선들이 겹쳐서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집니다. 잔잔한 평화가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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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창건 설화가 깃든 <부석> |
| ⓒ 김종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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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숙집 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처럼 애절한 전설이 깃든 경북 영주 부석사 |
| ⓒ 부석사 |
하숙집 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선묘각 벽에는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의 설화를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이른바 하숙집 주인 딸과 같은 선묘 낭자가 당나라로 유학 온 의상대사를 혼자 사모했다고 합니다. 그때 의상대사는 37세, 선묘 낭자는 16세. 21살의 나이 차를 떠나 의상대사는 불도에 정진합니다.
결국 의상대사가 신라가 귀국하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나자, 선묘 낭자는 바다에 빠져 용이 되어 스님을 호위했다고 합니다. 선묘 낭자는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해 무량수전 뜰 아래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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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조사당 가는 길 |
| ⓒ 김종신 |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으로 시작해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으로 끝나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찾아 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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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뜨락에서 바라본 풍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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